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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는 자연 경관에 어울리는 고가 고속도로가 있다.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는 자연 경관에 어울리는 고가 고속도로가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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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지냈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를 떠나 호키티카(Hokitika)로 숙소를 옮긴다. 서해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동네다. 크라이스트처지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기에 한국 식당을 비롯해 식품점도 있었지만 당분간 한국 식품점이 있는 동네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해 한국 식품점에 들러 기본적인 반찬을 구입해 차에 싣는다.

목적지까지는 320여km 정도 운전해야 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가는 길에 아서즈 패스(Arthur's Pass)라는 유명한 국립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주위 풍경을 즐기며 여유 있게 운전한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에 들어선다. 주위 경치가 일품이다. 가끔 긴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다리 아래로는 너른 자갈이 펼쳐져 있다. 돌밭 한 귀퉁이로는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른다. 비가 많이 오면 드넓은 자갈밭이 물에 잠길 것이다.

높은 산등성이를 돌아서니 멀리 호수가 보인다. 경치가 좋다는 뉴질랜드에 왔음을 실감한다. 호수 주변에 시선을 빼앗기며 운전해 내려갔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호수가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이 정도의 풍경은 뉴질랜드에서는 흔한 것일까, 주차장에는 예상 외로 사람이 없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중국인 커플만 보일 뿐이다.

 
각가지 특이한 모습을 자랑하는 자연이 만든 조각품.
 각가지 특이한 모습을 자랑하는 자연이 만든 조각품.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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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떠나 산과 물이 어우러진 도로를 다시 운전한다. 얼마 운전하지 않았는데 주차장에 많은 차가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자동차에서 내리니 멀리 기암괴석이 널려있다. 바위와 돌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가 지나칠 수 없다. 기암괴석이 있는 곳으로 수많은 관광객과 하나가 되어 걷는다.

믿기 어려운, 흔히 표현하는 '신의 조각품'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바위들이 널려 있다. 거대한 석회암을 비와 바람이 오랜 세월 깎아 만든 작품들이다. 절묘하게 큼지막한 바위를 또 다른 바위에 올려놓았다. 바위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기도 했다.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다. 외계인이 지구에 왔었다는 이야기가 황당하게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의 조각품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아서즈 패스라는 동네에 가까워지면서 높은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름이지만 높은 산에는 눈이 쌓여 있다. 동네에 들어서니 캠핑카 혹은 렌터카를 타고 온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다른 관광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 많은 관광객보다는 등산복 차림의 젊은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기차역 주변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기차역이다. 큰 통나무를 실은 대형 트럭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숲이 우거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라 산림 산업이 활발하다는 추측을 해본다.

동네 정보를 얻으려고 여행 안내소를 찾았다. 여행 안내소를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등산 코스가 어지럽게 그려진 대형 지도다. 탐험가들이 초창기에 사용하던 오래된 스키를 비롯해 동네 역사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동네가 생기 이후로 대형 지진이 세 번이나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당시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안내소 직원들은 붐비는 등산객에게 산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느라 바쁘다.

물건을 파는 곳에는 등산에 필요한 비옷과 지팡이를 비롯해 비상식량도 팔고 있다. 영어를 쓰지 않는 등산객이 많다.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에게 유명한 곳이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다. 며칠은 아니더라도 하루 정도 산행을 하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짧은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아담한 폭포가 가녀린 물줄기를 흘리며 관광객을 유혹한다.
 아담한 폭포가 가녀린 물줄기를 흘리며 관광객을 유혹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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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산책로 입구는 우리와 같이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의 발걸음으로 붐빈다. 산책로에 들어서니 백여 미터 정도 되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 아래로는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차가울 것 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 공해라는 단어는 생각할 수도 없는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물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초목도 싱싱한 초록빛을 발하고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산 중턱에는 폭포가 있다. 많은 양의 물이 100m 이상은 훌쩍 넘을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깊은 계곡에 들어온 느낌이다. 원주민은 '천을 짜는 폭포'라고 불렀다는 안내판이 있다. 며칠씩 산행을 하다보면 이러한 폭포를 많이 만날 것이다. 비상식량까지 준비하고 고생하면서 등산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한 산책을 끝내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깊은 계곡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 들른다. 전망대에는 대형 버스를 타고 온 중국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중국 관광객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동차도로가 계곡 사이로 끝없이 달려간다. 계곡과 계곡 사이를 연결하는 긴 고가도로도 인상적이다. 높은 산들은 중턱까지만 숲이 우거져 있고 정상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자갈로 뒤덮여 있다.

처음 만난 뉴질랜드 풍경에 잠시 넋을 잃는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주민은 관광객처럼 풍경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새롭다고 느끼지 않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80년도 중반, 호주에 이민 왔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야자수가 줄지어 있는 공원과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에 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가슴 두근거리던 설렘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일상의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다.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매 순간 다가오는 새로움을 알아채며 지내는 삶을 생각해 본다. 설렘으로 가득한 삶이 될 것이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인물을 만들어 놓고 손님을 유혹하는 카페
 해리 포터에 나오는 인물을 만들어 놓고 손님을 유혹하는 카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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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뉴질랜드, #ARTHUR'S PASS, #남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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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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