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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은 관련 보고서, 영화, 책,  노란 리본 등으로 그날의 기억을 붙들고 진실을 밝히려는 싸움을 이어왔다. 가족 중에는 여전히 세월호 관련 된 책이나 영화 등 기록물을 보기 힘들어 못 본다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호 관련 모든 기록이 아픔이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육성을 담은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세월호 관련 그 어떤 책보다 절절했고 아팠다.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 가족들이 살아낸 지난 5년간의 삶과 그들의 생각이 담긴 생생한 육성 기록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세월호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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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의 육성기록인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희생 학생 가족, 생존 학생 가족, 희생교사 가족 등 총 57명의 세월호 가족 육성을 5명이 나눠 인터뷰하고 기록한 글이다. 세월호 진실규명과 희생자 수습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겪게된 개인과 가족의 고통, 사회에 눈 떠가는 과정, 희생자 가족들로 구성한 416연대, 앞으로의 바람까지를 6개의 장에 담아냈다.

쉰여섯 명이 풀어 놓은 이야기에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대한민국 사회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세월호 희생 가족이 되기 전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내 가족이 편안하게 잘 먹고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돈 벌어 자식 뒷바라지 하는 것이 전부였던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 취약 계층이나 미혼모를 돌봐주고 몇 몇 단체에 매월 회비를 내는 것으로 보람있고 의식있는 삶을 산다고 믿었던 이들이, 세월호를 통해 사회 전반의 부조리한 구조적 문제에 눈 뜨게 된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 구조, 가족 이기주의, 물질 만능주의,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했던 개인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전국민에게 상처를 입힌 사건이다. 철저하게 언론이 통제된 상태에서 벌어진 5.18 학살 행위와 달리, 세월호는 전 국민이 그 죽음의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세월호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그 누구도 세월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됐다.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가야 할 이정표는 분명해졌지만, 그 길을 가기 위한  길닦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판을 갈아 근본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엄마가 겪은 두 가지 상반된 사례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우리 사회 인식의 현 주소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머니, 저도 준영이에요"라는 말에 무너진 세월호 한 어머니
 
2014년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청와대에 가려는데 그쪽으로 넘어가지를 못했잖아요. 광화문에서부터 막혀서 전경이랑 싸우고 그랬죠. 어느 날은 제가 어떤 전경의 멱살을 잡은 것 같아요. 옷을 딱 잡았는데 그 전경이 "어머니, 저도 준영이에요" 하는 거예요.

제가 가슴에다 오준영 우리 아들 명찰을 달고 갔는데, 자기도 김준영이라고 울먹이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도 스무살인데 이러시면 저도 다치고 어머니도 다친다고. 제발 물러서시라고. 우리도 시켜서 어쩔 수 없어 하는 거니까 좀 물러나시라고. 전경들은 전부 다 방패에 진압봉을 들고 있고 우리는 뚫고 나가겠다고 버티고 서 있으니까 밀고 밀치다 다칠 것 같았나봐요. 그런데 그게 머리를 쳤다고나 할까?

제가 그 말을 듣고 딱 굳어버렸어요. 오준영은 아니지만, 김준영을 그렇게 알게 된 거잖아요. 그 아이 얼굴은 생각이 안 나요. 그런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울먹울먹하면서 "다쳐요, 다쳐요, 다쳐요" 했던 눈망울은 눈에 선해요. 그 말이 우리 준영이가 '엄마 다쳐요. 거기까지 가지 마세요'하는 것 같은 거예요. 나는 엄마니까 가야 되는데, 자식 키우는 준영이 엄마는 못 가겠는 거예요.

그때 걔 가슴속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보며 자기 엄마를 떠올렸을 거잖아요? 또 걔네 엄마는 TV에서 세월호 집회를 보면서 자기 아들 걱정에 얼마나 힘들까. 아이를 하늘에 보낸 오준영 엄마가 청와대로 가겠다며 김준영의 멱살을 잡았을 때 그 엄마는... 전경들을 뚫어야지 청와대로 가는데 전경들이 모두 준영이 같은 거예요. 온통 준영이가 서 있는 것 같고 그 뒤에 준영이 엄마들이 서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 126쪽 / 임영애(오준영 엄마)
 
2014년 세월호 집회가 끝나면 유가족이 행진의 맨 앞에 서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자식 명찰을 가슴에 달고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러 청와대로 가려 했다. 경찰들은 광화문에서부터 차량과 차벽, 방패와 진압봉으로 무장한 전경을 동원해 청와대 가는 길을 막았다. 집회가 있는 날은 효자동 근처로 운행하는 버스 안까지 들어와 검문을 하곤 했다.

심지어 노란 리본을 달기만 해도 효자로 근처 길을 가지 못했다. 다행히 효자동 근처까지 가도 경찰이 길 가는 시민들을 일일이 세워 주민증을 확인하고 근처 주민들만 길을 터주곤 했다. 계엄령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계엄 치하와 다를 바 없었다. 집회에 참가했다가 행진을 하게 되면 수시로 유가족, 학생, 시민들이 연행됐다. 야만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겪은 또 한 엄마의 증언이다.

'아, 이게 대한민국이구나. 진상규명이 돼도 나는 이 나라에서 못 살겠구나...'
 
살면서 그렇게 당한 건 처음이었어요. 1주기 때 광화문에서 집회 선두에 섰는데 꼼짝 못 하게 하더니 캡사이신을 쏘는 거예요. 쏘고 난 뒤에도 내가 안 물러나니까 내 머리카락을 확 잡더니 자기들 장갑에 캡사이신을 뿌려서 내 눈에 비볐어요. 나도 상대방 경찰 머리를 잡아 모자 벗겨내고 싸우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은 거예요. 경찰은 저를 떼어내려는데 제가 꽉 잡고 안 놔주니까 결국 난리가 났죠. 경찰들이 달려들어 저를 범죄자 체포하듯이 양쪽에서 끌어내면서 무릎을 팍 치는 거예요.

중심이 무너지고 무릎이 바닥에 꿇려지면서 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박았어요. 그랬는데도 팔을 확 꺾어서 끌고 가는데, 하아... "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다만 내 새끼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는 건데 이게 대한민국 경찰이냐" 그랬어요. 그리고 경찰 버스에 가서도 난리를 치며 싸웠어요. 전경들이 나한테 막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그랬죠. "넌 집에 가면 엄마 없냐?" 없대요. 그러고는 욕을 하는 거예요. '아, 이게 대한민국이구나. 진상규명이 돼도 나는 이 나라에서 못 살겠구나...' - 129쪽 / 이지성(김도언 엄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또 다른 상실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유가족에게 극한의 말과 행동으로 모욕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시체팔이'라는 막말을 하는 국회의원,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런다는 동네 사람들, 유가족 단식 현장에 와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폭식을 하던 일베 집단들, 모든 것을 돈으로 셈하는 이들 앞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상처받고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안산을 떠나고 혹은 안산에서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마주쳐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절망과 실망감을 극복하기 힘들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단절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난 2014년은 잔인했고 아팠다. 나도 2014년 4월부터 서명 받기, 피켓 시위, 리본 만들기, 집회에 머리수 보태기, 단식, 행진 등으로 대한문, 광화문, 효자동, 홍대 앞, 국회, 진도 팽목항, 안산 등을 수시로 오갔다. 그 중에서 특히 청와대 근처 효자동사무소 앞에서 노숙하던 세월호 엄마들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2014년 지난한 투쟁 끝에 세월호 가족들이 청와대 근처 효자동 동사무소 앞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경찰차와 폴리스 라인, 겹겹이 경찰로 둘러싸인 채 땡볕에 가림막도 없이 버티던 가족들은 아이스 박스에 얼음을 넣고 물병을 가득 채워 두곤 했다. 한여름 뙤약볕 갈증을 달래는 생수였다.

그런데 하교 시간이 되면 엄마들이 얼려둔 물병을 들고 폴리스 라인에 나란히 선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덥지? 이거 시원한 물이야' 하면서 학생들 손에 시원한 물병을  하나씩 건네주기 위해서다. 물병을 건네주곤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던 엄마들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그랬다. 그때는 나도 때론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재잘대며 지나가는 학생들 모습이 보이면 얼음이 되곤 했다. 학생들만 보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물병과 핀 버튼을 건네주곤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던 엄마들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말이다.
  
구조 활동 대신 방해한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다.
▲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피켓 시위 구조 활동 대신 방해한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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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상규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이 따로 있는 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은 없어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죠. ... (중략) ... 우리가 박근혜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참사 당시에 뭘 했는지 알려주면 돼. 어떤 행동들을 했고 어떤 명령체계가 있었고 어떤 지시가 내려왔고 어떤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는지. 그 당시에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왜 구하지 않았고, 왜 해경들중에는 배에 들어간 놈이 한 명도 없는지. 그런데 마치 우리가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심 있는 것처럼 호도해버리니까 많이 당황스러웠죠. 설명 없이 막기만 하니까 폭발하는 거죠. 진실을 가리니까 여태까지 싸워온 거죠. - 362쪽 / 장훈(장준형 아빠)

동시대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물어야 할 것들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조문객 가득 찬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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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엄기호는 책의 말미에 시대에서 사라졌던 동시대인의 귀환으로 세월호 가족을 꼽는다. 동시대인 의식을 처음으로 자각하고 동시대인으로 살려 했던 이가 전태일 열사지만, 그는 저항의 방법으로 산화했다. 동시대 정신은 운동권이 사라지며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세월호 가족은 두 번째 동시대인이 된 사람들이자 첫 번째 동시대인으로서 귀환한 존재라는 점에서 시대의 변환점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엄기호의  말에 따르면, 독재에 저항한 이들이 정치적 죽음을 당했다면 세월호, 용산 참사, 김용균씨 가족 등은 '사회적 참사'를 겪으면서 시대의 어둠을 뚫어보고 동시대 정신을 자각하고 실천하게 됐다.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다. 세월호는 분명 대한민국이 새롭게 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했다. 우리가 세월호 가족과 동시대인임을 자각하고 동시대인의 시대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를 붙들고 우리는 끊임없이 유가족에게 묻고 답하며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살아갈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이 시대에 첫 번째로 동시대인이 된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 말할 수 있다. 계속 말할 수 있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직 동시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자는 이들에게 묻고 응답하며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그들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듣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참사 이후 '오늘도 지속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무엇을 묻고 있고, 무엇을 듣고 있는가? 여기에 한국사회의 실력이, 심연이 존재한다.  - 389쪽(엄기호)
  

덧붙이는 글 |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창비/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씀/16,000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2019)


태그:#세월호 가족, #진실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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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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