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모니터를 앞에 둔 남자가 깨알 같은 글씨로 처리할 일과 지출 내역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앞에는 시리얼 그릇이 놓여있다. 고개를 들어 잠시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는 커플 매칭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미모의 여성을 화면에 띄우고는 '윙크' 아이콘을 클릭할까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영화는 채 몇 분 되지도 않는 짧은 시간 안에 그가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남자는 필시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을 터였다. 그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시간도 돈도 부족할 것이다. 그의 빡빡한 상황은 호감을 느끼는 이성에게 구애하는 것을 망설이게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이름은 월터(벤 스틸러 분)이다.

이 남자는 주인공 월터로 잡지 <라이프(Life)>의 필름 책임자이다. 커플 매칭 사이트 가입 프로필에 쓸 인상적인 사건 하나 없는 그의 삶은 무미건조, 그 자체이다. 때로 월터는 잠시나마 책임과 의무에 짓눌린 현실과 맘에 드는 일 하나 없는 무료한 일상에서 도피한다.

그의 취미는 공상이다. 멍한 그를 한대 때리듯, 회사는 정리 해고를 발표한다. 자리가 위태로운 월터는 설상가상으로 폐간호 표지에 쓰일 사진의 필름을 잃어버린다. 급박해진 월터는 필름을 보낸 사진사 숀 오코넬(숀 펜 분)을 찾아 나선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포스터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포스터 ⓒ 글뫼

 
모험, 일상을 배반하는 고난

지루한 일상을 탈출한 월터. 그가 그토록 꿈꾸던 모험에서 만난 것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누군가의 일상이었다. 그린란드의 헬기 조종사는 반복된 생활이 동반하는 지루함에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사진 속 반지 낀 손가락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주민 수를 말하는 그의 어조에 실린 것은 월터가 평소에 느끼던 '핵노잼'이었다. 화산의 위험을 자각하지 못한 월터를 걱정하며 구조하러 온 마을 주민은 우리가 모험이라 여기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일부임을 드러낸다.

영화 속 모험이 전해주는 것은 짜릿한 스릴도 아찔한 서스펜스도 아니었다.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월터가 전해주는 것은 극한의 공포였다. 화산재가 뿌옇게 쌓인 자동차에서 내리는 월터의 표정이 전달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의 얼빠짐이었다. 물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런 장면들을 무겁지 않게 다소 희극적으로 극화하고 있다. 그러나, 월터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험의 실현이 결코 카타르시스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님을 깨우치게 한다.

월터가 찾던 모험은 실은 누군가의 일상에 동반된 위협이자 고난이었다. 모험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던 사람들에게는 난데없는 월터의 등장이 모험이었다. 누군가는 월터의 등장으로 무전기를 여전히 고칠 수 없었으며, 화산이 터지기 직전 위험을 무릅쓰고 월터를 구해내야 했다. 모험은 낭만이란 요란스러운 장신구를 치장한 현실이었다. 누군가가 마주한 현실의 숱한 위기와 고난들은 극복되어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치열한 과정은 낙관적인 결말에 압도되어 모험이란 이름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글뫼

 
이러한 모험의 실체를 목격하기 전에 월터는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가장이 된 월터는 그가 해야 할 모험을 미처 해보기도 전에 의무가 가득한 성인의 삶으로 던져졌다. 채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른이 된 소년 월터에게 모험은 필요했다. 일상을 배반하는 모험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쳐야 했다.

타인의 삶, 부각된 순간일 뿐

숀도 사진도 찾지 못한 월터는 결국 해고를 당한다. 상심한 월터는 집 안을 정리하던 중 숀을 찾을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다. 월터는 무작정 떠났던 이전과 달리 준비를 하고 생전의 아버지가 사준 여행 수첩을 챙겨들고 다시 한번 숀을 찾아 나선다. 이미 해고 당한 월터의 이번 여행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오직 월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한 순수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기 직전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며 계획했던 여행의 실현이었다. 월터는 뒤늦게 성인식을 치르는 셈이다.

이 여행에서 월터는 고산 지대 사람들을 만나며 다른 세계의 일상과 다시금 조우한다. 월터의 일상은 어머니의 케이크를 나누며 그들의 일상과 공유된다. 마침내, 월터는 눈표범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이던 숀과 마주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숀과 월터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어떻게 특별한 무언가로 변주되는지 고찰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사용되는 것은 잡지라는 매체이다(SNS 등 현재 사용되는 주된 방법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양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 다수의 눈에 들고 싶어하는 매체의 속성과 무언가를 특별하게 조망하는 매체의 특성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을 낭만적으로 포장한다. 매체의 전달자가 사실적 전달에 힘을 쏟아 굳이 포장을 하지 않더라도 전체가 아닌 순간으로 조망되는 타인의 삶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잡지의 표지처럼 타인의 삶은 어딘가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의 삶은 순간일 뿐이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누군가의 입을 통한 것이든,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처럼 온전하게 인식하기는 불가능하다. 타인의 삶은 타일을 떼어내듯 어느 순간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부각된 어느 순간으로 타인의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상 편집된 무수한 일상들이 타인의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시간들일 터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글뫼

 
눈표범이 나타나자 숀은 카메라 앵글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응시한다. 숀이 응시하는 것은 시간 속에 오롯한 눈표범 존재 자체이다. 숀과 월터가 그러하듯 눈표범은 자신의 삶을 그저 살아가고 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눈표범은 촬영과 인화 과정을 거쳐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앵글에 담기는 순간의 조망은 우리의 범상한 일상과 비교되어 특별하게 치부된다. 무수한 일상 중 선택되어 조각난 채 보여지는 누군가의 시간을 특별한 삶인 듯 자신의 삶보다 가치있는 삶인 듯,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그 조망이 생략한 다른 이야기들에 포함된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감지하지 못한다.

월터는 아버지가 죽은 후 처음 일을 시작했던 '파파존스'를 고산의 눈 속에서 만난다. 셰릴(크리스틴 위그 분)에게 이 사실을 말하는 월터의 모습은 모험으로 가득해 보였던 타인의 삶과 그의 삶이 별반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한다. 조각난 타인의 순간이 아닌 타인의 일상을 경험한 월터는 이제 특별한 삶을 동경하기보다는 일상을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는 자신과 삶을 특별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특별해 보이던 그들 삶에서 월터가 확인한 것은 평범한 자신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월터는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다. 'e-하모니 프로필'에 올려진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수많은 윙크를 받게 하고, 커플 매니저 테드의 경탄을 불러온다. 그러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실제로 도운 것은 월터의 모험이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터와 테드가 시도한 수 번의 일상적인 통화였다. 공항에 구금되기까지 했던 월터의 모험을 듣고 테드는 경외하지만, 월터는 그저 월터일 뿐이다. 잡지사에서 해고된,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한 그 월터 말이다.

잃어버린 월터를 찾아서

월터는 그토록 찾아 헤맨 숀의 필름을 마침내 찾아낸다. 월터는 필름과 함께 상상으로나 가능했던 말들을 당당하게 해고 담당자에게 전해준다. 질려 버린 얼굴로 위축되어 있던 월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험의 끝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월터는 모험을 통해 자신을 찾았다. 현실의 욕구 불만을 상상으로 만족시키던 월터는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드 보드를 타던 모험이 두렵지 않던 소년 시절의 용기를 되찾아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글뫼

 
월터의 모험담은 월터 자신을 찾는 여정이었다. 우리의 삶이 돌고 돌아 이르는 곳이 결국 자신이었다. 월터는 숀의 지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듯 자신을 쓰레기 같은 존재로 치부했었다. 월터는 엄마와 여동생을 외면할 수 없는 착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다소의 돈이 들지만 아빠의 추억이 담긴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월터의 이런 경향을 잘 드러낸다. 만약, 이와 다르게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월터는 지금보다 더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월터는 자신과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월터는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타인의 삶을 동경하며 자신을 잊고 활력을 잃었다. 자신의 욕구와 소망을 무시하고 엄마와 여동생을 돌보듯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자신의 노고에 고마워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지갑, 하지만 쓰레기통 속에 던져진 그 지갑이 맞이한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번째 여행 이후 모험의 실체를 파악하고 다른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거품을 거두어냈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숀과 함께 눈표범을 마주한 두 번째 여행을 통해 월터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다. 사진 편집자였기에 늘 특별해 보이는 타인의 순간을 마주했던 월터였다. 그러나 카메라 앵글 속에 갇히지 않은 눈표범을 응시하며 월터는 삶의 길 위에 서있는 그 자신을 발견한다.

삶은 늘 녹록지 않다. 많은 이들이 퍽퍽하고 고된 삶 속에서,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 활력을 잃어가며 무기력해진다.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삶과 비교해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삶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견뎌내고 극복하며 어쩌면 모험보다 더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지치고 좌절한 자신을 안아주지 않으며 멋진 프레임 안에 담기지 못하는 자신을 못났다 질책하기 일쑤이다. 그렇게 '나'는 버려진다.

영화는 관객들이 외면한 '나'와 '나의 삶'을 돌아보기를 소망한다. 타인의 삶을 지향하면서 '나'의 삶은 홀대되고 그 안의 '나'는 어느덧 사라진다. 삶은 특별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채워진다. 이에 반해 타인의 삶은 흥미진진하고 화려하며 뭔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삶은 서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누구의 삶이든 특별한 것이었다. 모험의 실체를 파악하고 타인의 일상을 함께하며 월터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제 월터는 타인을 향한 곁눈질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본다. 월터가 찾아 헤매던 특별한 무엇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때문에 월터는 마침내 찾아낸, 숀이 선물한 지갑 속의 '삶의 본질'이라 명명된 필름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삶의 본질'은 자신과 자신의 삶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동화 <파랑새>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삶은 곧 '나'라는 교훈을 던진다. 잃어버린 '삶의 정수'는 월터 자신이었다.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월터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다. 월터가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은 퍽퍽한 현실의 무게에 지쳐 있을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 장면 ⓒ 글뫼

  
<라이프>지와 동행했던 월터의 삶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참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월터가 그토록 바라던 모험이 시작되었다. 실업이란 고난은 상어나 화산보다 현실적이다. 월터는 두렵겠지만 헤쳐 나갈 것이다. 그의 인생은 아직 끝이 아니며 그는 여전히 시간 속을 걷고 있다.

삶은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이다. 힘든 일은 다 지나간다지만,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지나가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또 찾아온다. 때론 감내하고 때론 이겨내며 우리는 고군분투한다. 늘 진행 중인 모험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더없이 특별하다. 삶이라는 잡지의 표지 모델은 자신이며, 내 삶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상상리뷰 월터의상상분석 나를찾는모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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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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