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8 15:00최종 업데이트 19.04.18 15:19

현지 시각 15일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길에 휩싸였다. ⓒ 연합뉴스/AP


4월 15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진압되겠지 하던 생각은 성당 위에 피어오른 불길이 화면 속에서 계속 춤추는 걸 보면서 멈춰 섰다. 날씨가 유난히도 건조하더라니...

순식간에 불길은 첨탑을 삼켰다. 첨탑이 추락하는 장면을 본 순간부턴 이 성당이 다 타들어 간대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단 한 번 들어가 봤고, 수백 번 그 앞을 지나면서도 딱히 눈길 준 적 없는 성당이었다. 그런 곳이 불에 타는데 내 마음도 같이 타고 있었다. 


아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학교에 다녀와 이 소식을 들은 후, 유튜브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테마음악인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édrales)를 찾아 듣고 난 후였다. 시골에 가 있던 전투적 무신론자인 남편과 같은 성향의 아이 고모도 흔들리는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마치 가족이 당한 사고인양 누구든 붙잡고 울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손가락을 바쁘게 놀려, 트위터로 화재 진압에 훈수 두는 장면까지 목격하면서, 인류가 함께 슬퍼하는 비극이 발생하였음을 실감했다.

원래 그날 저녁 8시엔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가열되어온 노란조끼의 저항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며 정부가 주도했던 대토론 끝에 내린 국정의 새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마크롱은 불길이 잡히지 않자 대국민 담화를 걷어치우고 성당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850년의 역사가 타들어 가는 현장을 무력하게 보며 서 있었다. 

밤 11시가 돼서야 그는 소방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온 국민과 슬픔을 공유하며, 성당의 재건을 약속한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예정되어 있던 그의 담화는 공중으로 증발했고, 국민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긴 대성당 복원이라는 막중한 과제가 그에게 주어졌다. 5월 유럽의회 선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로 예측불허의 상황을 맞을 거란 관측들이 쏟아졌다.

잃은 것과 구한 것
 

현지 시각 16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에 전날 발생한 화재로 인한 잔해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 연합뉴스/EPA


이튿날 새벽 3시 반, 마침내 화재가 진압되었단 소식이 날아왔다. 모두 재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멈추자 프랑스 사람들은 화마 속에서 우리가 잃은 것과 지킨 것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세느강변은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을 확인하러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체적 외관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수공사를 위해 쌓아놓은 철골 구조물이 타 휘어졌고, 유리창들이 검게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보수공사를 통해 제 모습을 되찾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오랜 파리지엔이신 듯한 할머니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 별 일 아니다. 천천히 다시 복원하면 된다." 상처 앞에선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소방관들이 탄 보트가 세느강을 힘차게 가르자,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화재 진압은 생각보다 더뎠지만, 그들이 최선을 다했으리란 사실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보수공사 과정에서의 안전 수칙 미비와 이 거대한 성당이 지닌 역사적 무게에 비하여, 그것이 맞을 위험에 대비하지 않은 행정당국의 안일함을 꾸짖을 뿐.

잃은 것은 명확했다. 일단,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무너졌다. 1789년 혁명을 즈음하여 소실된 뒤 1860년에 새로 세워진 첨탑이었다. 1789년 혁명 시민들은 그들을 억압하던 지배세력들에게 가차 없는 응징을 가했다. 교회는 절대군주,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겐 가혹한 착취 세력이었을 뿐.

노트르담 성당은 파괴되고 방치된 채 19세기를 맞았고, 한때 철거가 결정되기도 하였으나, 이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불멸의 영혼을 선사한 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였다. 위고의 소설이 거둔 폭발적 성공은 파리시민들을 노트르담 대성당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고, 위고가 볼 수 있었던 성당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했다. 이는 1844~1864년 대보수공사로 이어져 성당을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첨탑에 이어, 800년 된 참나무들로 만들어진 약 1000m² 면적의 지붕 2/3가 잿더미가 되어 성당 바닥에 주저앉았다. 8천 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초대형 파이프 오르간은 불의 피해는 입지 않았으나, 그 불을 끄려고 뿌린 물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아직 그 복원 가능성은 또렷하지 않다. 장미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첨탑을 장식하던 16개의 조각상들도 닷새 전에 이전된 상태였다. 

첨탑 꼭대기에 있던 청동수탉은 첨탑이 붕괴되며 함께 소실된 듯하였으나,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로 잿더미에서 발견되었다. 성당 내 피에타상도, 황금십자가도 무사했고, 가장 중요한 보물이었던 황금 가시면류관도 화를 피했다. 대부분의 성당 내 귀중품들은 화재 중 소방관들과 성당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안전한 곳에 옮겨졌다. 인명 피해도, 부상자도 없었다. 세계 곳곳으로부터 빗발치는 뜨거운 연대를 확인했다. 

반면 마크롱은 다시 한 번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그가 발표하려던 모든 정치스케줄은 혼미한 안개 속에 놓였다. 지금 그는 850년간 지켜오던 역사적 유산을 심각하게 훼손한 죄 앞에 섰다. 노트르담 성당은 국가의 소유며 그 관리는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범법자들의 자비
 

화재 다음날 노트르담 대성당의 측면 화재로 전소된 첨탑과, 지붕의 부재를 볼 수 있다. ⓒ 목수정

 
화재 다음 날, 프랑스인들은 의아한 뉴스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다수 소유한 피노(Pinault) 가문과 세계 최대 명품 회사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 그리고 아르노가(Arnault), 베탕쿠르가(Bettancourt) 등이 각각 1억 유로(약 1280억), 2억 유로(약 2570억)씩을 노트르담 성당 복구 기금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이었다. 조세도피처 명단에서 만나는 데 더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특히 피노는 미술품 수집가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가문이다. 그들이 1억 유로를 최초로 투척하자 재계 랭킹 1위인 아르노가 2억 유로를 내놨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베탕쿠르가를 향했다. 만인의 시선을 받은 베탕쿠르가 역시 예상대로 동수의 수표 2억 유로를 꺼내놨다. 가장 먼저 내긴 했으나 숫자에서 밀린 피노는 "우린 어떤 세제 감면 혜택도 받지 않은 순수한 1억 유로를 낼 것"이라 덧붙이며 이 경쟁에서 순순히 질 순 없음을 피력했다. 

뒤이어, 좀 더 사이즈 작은 부호들이 그 다음 계단을 채워갔다. 국가 자산에 대한 후원에는 세제 혜택이 따른다는 설명들이 이들의 선심 행렬을 보도하는 기사에 덧붙여졌다. 이 경쟁적 거액 성금 행렬은 하루 종일 이어져 거의 8억8천만 유로(약 1조1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사업에 드는 비용을 대략 10억 유로(약 1조2800억 원) 선으로 점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천국행 티켓이라도 된다고 믿은 걸까? 부호들의 거액 투척 행렬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복구 자금이 쉽게 모여드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겠지만, 하루 만에 모인 거금 앞에서 프랑스인들이 보인 반응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선 지난 한 해에만 566명이 거리에서 죽어나갔다. 수도 파리에서만 3600명이 노숙자로 살고 있으며, 10년 새 그 숫자는 두배나 증가했다. 그런 사회에서, 또 지붕 없는 사람들에게 지붕을 가져다주는 일의 예산을 깎는 나라에서, 지붕 잃은 성당에 지붕을 다시 씌우는 일을 위해 1조 원 넘는 돈이 부자들 주머니에서 간단히 나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고마움 표하기보다 경악했다. 노숙인을 돕는 '피에르 신부 재단'은 노트르담 성당 재건을 위해 거금을 희사한 거부들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트위터로 전하기도 했다. 

"노트르담 성당을 위해 거금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삐에르 신부의 장례식이 행해졌던 그 장소(노트르담)에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해온 싸움에 더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성당을 위해 기부한 돈의 1%만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부해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노트르담 성당 바로 옆에는 10세기에 세워진 공공병원 호텔 디유(hotel dieu)가 정부의 예산 지원의 부족으로 폐쇄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의료·교육 공공서비스를 축소해가고, 문화영역에도 필요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오늘의 피해를 만들었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마크롱이 없애버린 최상류층 부유세(ISF)만 복원해도, 혹은 이들이 세금도피처에 은닉한 재산만 털어도 해결될 일이다. 

그 모든 방법을 배제하고, 저 범법자들이 베푸는 자비에 세상이 빚진 듯한 광경을 왜 만들어 내는지 사람들은 묻고 있다. 그럭저럭 삶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제 생존조차 불안해진 트랙으로 내몰려 거리에서 싸운 지 6개월이다. "왜 그들의 절규는 외면하고, 노트르담 성당이 입은 상처에만 그토록 신속히 화답하는가. 그렇다면, 우린 학교와 병원에 불이라도 질려야 하느냐." 화재와 그것에 화답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며 이곳 사람들은 날카로운 실존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가 한 일

오래된 성당 하나(물론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평범하지 않은 성당이다)에 화재가 발생했건만, 이 화재가 야기한 피해상황이 세상 곳곳으로 시시각각 보도된다. 화재 다음날 세느강변엔 세계 각국의 방송 기자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었다. 프랑스에는 노트르담 성당에 버금가는 역사와 규모를 가진 성당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노트르담이 아닌 다른 성당에 화재가 났다면 같은 광경이 펼쳐졌을까? 세계 각국 정상들이 성당의 복원을 돕겠다며 줄지어 나섰을까? 이 현상은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빅토르 위고. 유효한 한 가지 답은 그것이다. 그의 혜안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소설을 통해 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소설로 다시 태어난 노트르담은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계속 옷을 갈아입고, 온 세상을 돌아다녔다. 노래와 영상이,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슬픈 사랑이, 불타는 노트르담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서사를 공유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노트르담은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내 가족이 사고를 당한 듯, 사람들은 아파하고, 허탈해 했던 것이다. 

화재가 진행 중이던 날 밤, 사람들은 위고가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묘사한 화재 장면을 연신 SNS에 올렸다. 하루 만에 아마존 책 코너에서 1·3·4·5·7·8위를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석권했다. 저작권이 만료되어,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낼 수 있던 탓이다. 위고는 소설을 빚어 노트르담을 살려냈고, 노트르담은 그의 소설처럼 불에 타오르며, 세상에 다시 위고를 소환한다. 사형제 폐지를 위해 싸우고, 전쟁이 멈춘 평화로운 유럽에 대해 그려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상에 던질 수 있는 울림을 19세기에 말했던 사람, 그 생각으로 21세기 사람들까지 움직이게 하는 한 사람. 사람들은 그의 눈을 빌려 난세의 불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 혹은 예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신은 왜...
 

현지 시각 15일 화재가 발생한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인근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립 총리와 미셸 오페 띠 파리 대주교가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신은 왜 마크롱의 입을 막았을까?"

프랑스 한 칼럼니스트가 던진 질문이자, 많은 사람들이 화재를 보며 던진 질문이다. 왜 신은 마크롱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대신 불이 성당을 삼키는 장면을 보게 한 것인가? 성당이 타올랐던 것처럼, 학교도, 병원도, 그가 기를 쓰고 민영화를 시도하는 샤를 드골 공항도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려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가 2017년 12월 국민들 앞에서 "지붕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붕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던 말을 지붕을 잃어가는 노트르담 앞에서 상기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무수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불 속에 무너져 내리는 첨탑을 보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무너져가는 것들부터 보듬어 살피라'는 경고음을 들었다. 화재로 취소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의 첫 내용은 "노란조끼가 요구해온 부유세 복원은 하지 않겠다"였다고 한다. 대략 알 것 같다. 신이 막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