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

포토뉴스

 
탈시설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부부가 되기로 결심한 상우씨와 영은씨. 영은씨는 5월의 신부가 된다. 서로 누가 더 좋아하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눈빛교환을 하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이희훈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오빠가 제주도에 한 번도 못 가봤다고 해서요. 오랫동안 계획을 했어요." (영은)
"그런데 여행코스를 아직 안 정했어요." (상우)


이상우(38)와 최영은(29)은 서로를 마주보면서 티없이 밝게 웃는다. 눈만 마주쳐도 좋다는 두 사람이 오는 5월 6일 결혼을 한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가기로 약속했다. 영은은 "예비 신랑과 여기저기 여행을 같이 할 계획"이라고 했다. 상우가 "나도 같다"고 영은의 말을 거들었다.

결혼 후 각자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둘은 이내 스마트폰 자판으로 눈을 돌려 바삐 손을 움직인다.

"자기는 어디 가고 싶어?" (상우)
"오빠가 먼저 말해." (영은)


영은이 가고 싶은 곳은 경주 불국사와 여수 바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무덤. 상우가 가고 싶은 곳은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 그리고 마라도다. 모두 다 다른 곳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탈시설'한 중증장애인들, 결혼하다
 
지하철 승강기 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마주하던 두 사람. 볼을 콕콕 찌르며 애정행각을 벌였다. 꿀이 떨어지는 순간이 목격 되었다. ⓒ 이희훈
   
한 이불 속 영은씨와 상우씨.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안먹고 안쓰며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 그래서 서울 창동역 인근 아파트에 따뜻한 이불을 덮을 수 있는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 이희훈
 
"(결혼하는 게) 꿈만 같아요."

중증장애인으로 뇌병변 장애가 있는 영은과 상우가 스마트폰 자판에 한글자씩 꾹꾹 누르고 '말하기' 버튼을 누르자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꿈.만.같.아.요." 영은의 어조도 말투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기계음이었지만 영은의 부푼 마음은 스마트폰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들은 '진소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비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는 애플리케이션을 쓰기 보다 직접 말한다. 서로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상우의 활동지원사는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집에 오면 그렇게들 떠들어요. 두 사람은 서로 다 알아들어요"라면서 웃었다.

"결혼식 준비는 좀 힘들지만 기분이 좋아요. 사실 웨딩 촬영이 가장 힘들었어요. 하루종일 장소 옮겨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했어요." (상우)
"결혼식 비용 마련이 가장 힘들었어요." (영은)
"결혼식 예식장 마련 비용 때문에 싸웠어요." (상우)

  
영은씨와 상우씨의 '커플템' 두 사람의 전동 휠체어 조종기에 똑같은 골프공으로 커플 아이템을 달았다. 누가봐도 커플이다. ⓒ 이희훈
 
16일 오후 영은, 상우와 함께 그들이 신혼집으로 정한 창동역 근처의 주공아파트로 향했다. 이들은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월 60만 원씩 적금을 넣어가면서 수급비를 모아 지난 2018년 7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희망의집에서 만났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곳이다. 영은은 다섯살 때 아버지가 꽃동네에 업고 가 포대기에 싼 채로 놓고갔던 걸 아직 기억한다. 상우는 집 형편이 어려워져 일곱살쯤 꽃동네에 와야 했다. 이들은 꽃동네에서만 20~30년이 넘게 살았다. 하지만 꽃동네가 워낙 넓은 탓에 서로의 존재를 잘 모르고 지내다가 꽃동네에 있는 희망의집이라는 곳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2015년 희망의집에서 같이 나와 살기로 선택했다. 영은은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장애인 시설에서 나왔다고 했다. 영은의 바람대로 그는 탈시설한 이후 상우와 연애를 시작했다. 상우의 나이 34, 영은의 나이 25의 일이었다.

"원래 시설에 있을 때 잠깐 왕래했는데 연애하면 원장실로 끌려가서 혼날까봐 오빠를 마음에만 두고 있었어요." (영은)

종로에 있는 자립생활주택 평원재라는 곳으로 간 이들은 가슴 설레는 첫키스도 이곳 평원재에서 나누었다. 영은은 평원재 1층에 상우는 2층에 살던 때였다. 고백은 상우가 영은에게 먼저 했다.

"상우 오빠가 먼저 고백했어요. 저를 좋아한다고 그랬어요." (영은)
 
승강기는 두 사람의 애정을 표현하는 장소 같아 보였다. 얼굴만 봐도 좋은지 미소가 한가득 하다. ⓒ 이희훈
  
상우씨와 영은씨의 연애하던 시절의 모습의 사진 액자. ⓒ 이희훈
 
만남을 지속하던 두 사람은 평원재를 나와 같이 살기로 마음 먹는다. 영은은 상우가 자신이 먹는 음식을 세심하게 살피는 면모에 반해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은은 같이 동거하면서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영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우는 배시시 웃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같이 청첩장을 돌리러 자기들이 자랐던 음성 꽃동네에 갔다. 상우는 꽃동네에 사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탈시설해 자립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단다.

"오랜만에 갔는데 아직도 변한 게 없더라고요." (영은)

꽃동네에는 청첩장을 돌리러 간 것도 있지만 다른 중증장애인들 역시 여기서 나와 자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상우와 영은이 만난 희망의집 수녀님은 이들에게 '꽃동네에서 나와 결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상우와 영은의 얼굴에 뿌듯함이 번졌다. 이들은 꽃동네 출신 부부 1호였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들
 
상우씨와 영은씨가 함께 지내는 서울의 보금자리. ⓒ 이희훈
  
영은씨는 가족계획을 묻는 질문에 "갖고 싶은데 장애가 있다보니 합의하여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 이희훈
  
영은씨 손을 꼭 잡은 상우씨의 손. ⓒ 이희훈
 
얼마 전 상우와 영은은 가족계획을 새로 수립했다. 아이를 안 낳기로 한 것이다.

"아이를 갖고는 싶은데 제가 장애가 있다 보니 합의해서 안 낳기로 했어요." (영은)

영은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를 만일 낳는다면 시설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가정까지 염두에 뒀다는 이야기다.

가족 계획이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지만 상우는 "아이를 안 낳기로 했다"고 잘라 대답한 반면 영은은 아쉬움이 남는 눈치다. 

중증장애인인 두 사람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한다.
 
상우씨와 영은씨는 장애인 인권 운동 활동가로도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영은씨와 상우씨의 주 이동 수단은 지하철이다.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이 열차 두 칸에 나누어 탔다. 두 열차 사이의 작은 창가로 눈이 마주치자 영은씨는 손을 흔들었다. 상우씨는 그에 미소로 화답했다. ⓒ 이희훈
  
영은씨와 상우씨는 지하철을 타면 주로 떨어져 탑승한다. 전동 휠체어 부피가 커 함께 타는일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짧지 않은 이동시간은 '강제 이별'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 이희훈
 
무엇보다 매서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휠체어 두 대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눈이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 쏠린다.

간혹 운이 좋지 않게 이들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도 만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한 사람은 손을 들어 상우와 영은이 보이지 않게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리자 가렸던 손을 다시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홀로 타거나 겨우 껴서 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느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대신 이들은 익숙하다는듯 서로 휠체어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른다. 지하철에서도 서로 다른 칸에 타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해도 이들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교육 기관인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장애인 기본권을 위해 투쟁하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 것이라고 했다.
 
집 앞에 활짝 핀 벚꽃 아래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을 남기는 상우씨와 영은씨. ⓒ 이희훈
 
"전국에 있는 시설들이 다 폐쇄되고 장애인들이 나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결혼식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사회의 일원이 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상우)
태그:#탈시설 장애인, #결혼, #노들장애인야학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