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현역 최고의 왼손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드디어 시즌 첫 등판을 치렀다. 스프링 캠프 도중 부상으로 인해 시즌 시작이 늦어졌지만, 커쇼는 다저스의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던 재키 로빈슨 데이 경기에서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4월 16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타디움에서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로빈슨이 데뷔한 1947년 4월 15일을 기념하여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42번을 모든 선수가 달고 뛰는 유일한 날이며, 로빈슨의 소속 팀이었던 다저스(당시 뉴욕 브루클린 연고)에게는 더욱 특별한 날이다.

공교롭게 2019년의 재키 로빈슨 데이 경기는 다저스의 에이스 커쇼가 시즌 첫 등판을 치르게 되면서 큰 관심을 끌게 됐다. 커쇼를 대신하여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던 류현진이 사타구니에 가벼운 부상 징후를 느끼며 선발 로테이션을 한 바퀴 거르고 있던 상황이라 커쇼의 호투가 절실한 다저스였다.

상대 팀 레즈, 다저스 출신 5명 라인업 포진하여 상대
 
 커쇼는 16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커쇼는 16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 AP/연합뉴스

 
그러나 커쇼가 상대할 신시내티 레즈는 올 시즌 성적과는 별개로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지난 겨울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맷 켐프, 야시엘 푸이그(이상 외야수), 알렉스 우드(선발투수), 카일 파머(포수) 등이 레즈로 대거 이적했으며 이들은 커쇼의 투구 스타일을 간파하고 있던 선수들이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호세 페라자(내야수), 스캇 쉐블러(외야수) 등도 과거 다저스에서 뛰던 이력이 있던 선수들로, 이 날 경기에만 다저스 출신 선수들이 무려 5명이나 선발 라인업에 포진했다. 다저스에게 중요한 재키 로빈슨 데이였지만 상대 팀 레즈 역시 절대 질 수 없다는 자세였다.

그래서였는지 커쇼는 1회에 잠시 고전했다. 첫 타자 커트 카살리는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지만, 에우제니오 수아레즈에게 우중간 안타를 허용한 상태에서 3번타자 푸이그를 만났다. 다저스 관중들의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등장한 푸이그를 상대하던 커쇼는 시속 142km 짜리 슬라이더를 던졌다가 2점 홈런을 헌납했다(0-2).

지난 해까지 커쇼의 빠른 공 속도는 시속 150km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서 빠른 공의 최고 속도는 시속 147km에 불과했다. 1988년생으로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커쇼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부상으로 갈수록 빠른 공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커쇼의 위기는 1회가 전부였다. 안정감을 찾은 커쇼는 푸이그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고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으며 7회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5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2실점에 탈삼진 6개를 기록했다(84구). 특히 6회에는 아웃 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는 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이 느려지는 커쇼, 위기 관리 능력은 여전

커쇼의 통산 땅볼/뜬공 비율은 1.19로 땅볼 비율이 그리 압도적이진 않다. 대신 9이닝 당 탈삼진 비율이 9.76개로 상당히 높은 편이며, 탈삼진/볼넷 비율이 4.26으로 제구력도 좋은 편이다. 특히 탈삼진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9이닝 당 탈삼진 비율은 10개 이상이었다(2015년 시즌 301탈삼진).

그러나 커쇼는 2014년 부상자 명단 첫 등재를 시작으로 2016년부터는 매년 1차례 이상 부상자 명단을 방문하게 됐다. 특히 2016년에 있었던 추간판 탈출증 발견으로 인해 커쇼는 이제 건강하게 풀 타임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커쇼는 기존의 투구 방식에서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9이닝 당 탈삼진 비율이 2013년(8.85개)과 비슷한 8.65개로 줄어든 것이다. 스스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잦은 부상으로 인해 투구 스타일을 바꿔가기 시작한 것이다. 빠른 공의 속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슬라이더와 커브의 각도는 여전히 예리했다.

이 날 경기에서 커쇼는 7이닝을 던졌지만 투구수는 84구에 불과했다. 이닝 당 평균 12구 밖에 던지지 않았을 만큼 경제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볼넷이 하나도 없었으며, 삼진에 집착하지 않고 빠른 카운트에서 타자들과 승부를 본 덕분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이 날 경기만 봤을 때 커쇼의 땅볼/뜬공 비율은 3.33이다. 아직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기에 커쇼가 시즌 첫 등판인 이 날 경기에서만 평소의 패턴과는 다르게 경기를 진행했을 수도 있다.

커쇼가 이 날 경기에서만 투구 패턴을 바꾼 것인지, 장기적으로 타자들을 맞혀잡는 방식으로 바꿔나가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경기 이후를 지켜봐야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8회에도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부상 이후 첫 등판이었던 만큼 보호 차원에서 커쇼는 마운드를 일찍 내려가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부상 복귀 첫 경기 승리는 실패, 9회말 끝내기 역전승

커쇼는 8회말 2-2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페드로 바에즈에게 넘기며 이 날 최소한의 역할은 다 했다. 일단 이 날은 몸에 특별한 이상 없이 경기를 마쳤다는 것이 커쇼가 보여준 가장 큰 성과였다.

다저스는 하마터면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인 재키 로빈슨 데이에 경기를 패할 뻔했다. 9회초 동점 상황에서 올라왔던 마무리투수 켄리 잰슨이 선두 타자 출루를 허용하면서 불안 요소를 노출했고, 결국 2사 3루 상황에서 실점하면서 패전 위기에 몰렸다(2-3).

그러나 9회말 다저스는 대타로 나왔던 데이비드 프리즈가 출루에 성공했고, 다음 타자인 작 피더슨이 끝내기 2점 홈런을 날리며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4-3). 같은 날 패했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승차는 1경기로 좁혀졌다.

승리는 했지만 다저스는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다저스 타선의 주축 중 하나인 코디 벨린저가 두 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투수 루이스 카스티요가 던진 공이 무릎에 맞았던 것이다. 벨린저는 일단 1루까지 걸어 나갔으나 결국 다음 이닝 때 대수비 알렉스 버두고로 교체됐다.

20일에 복귀하는 류현진, 완전체 준비하는 다저스

한편 이날 경기에 앞서 류현진은 불펜에서 공을 던지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10일 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며 선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르는 상황이라 평지와 불펜에서 각각 공을 던지며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원래 시즌 개막 로테이션은 류현진(좌), 로스 스트리플링(우), 훌리오 유리아스(좌), 워커 뷸러(우) 그리고 마에다 겐타(우) 등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커쇼가 복귀하면 유리아스가 불펜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류현진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계획이 잠시 틀어졌던 상황이었다.

일단 커쇼가 돌아왔고, 류현진은 부상자 명단 해제가 가능한 20일 밀워키 브루어스 원정 경기 일정에 맞춰 복귀할 예정이다. 이 때 유리아스가 불펜으로 돌아가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던 힐은 18일에 싱글A 란초 쿠카몽가에서 재활 등판을 치를 예정이다. 4월 말에 힐이 복귀하면 스트리플링이 불펜으로 이동한다.

이 밖에 토니 싱그라니는 어깨 문제로 개막 일정부터 팀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다저스 불펜이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황이라 1명이라도 더 복귀하면 좋은 상황인데 3월 말 리햅 이후 아직 소식이 없다. 베테랑 포수 러셀 마틴 역시 류현진이 부상자 명단에 오른 다음 날 등 문제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아직 복귀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류현진과 힐이 복귀하면 다저스는 최소 선발진에서는 완전체를 이루게 된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후보 0순위로 예상되던 다저스지만, 아직 서부지구에서 치고 나가지 못하는 만큼 이들의 복귀가 추진력을 얻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다저스에 큰 의미가 있는 재키 로빈슨 데이에 커쇼가 만족스러운 복귀전을 치른 것은 다저스가 앞으로 순위 경쟁에서 우위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부상 선수들이 하나 둘 복귀를 준비하는 다저스가 앞으로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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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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