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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월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월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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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후 3개월 가까이 흘렀는데도, '사법농단' 재판이 좀처럼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재판부가 변호인단이 소송지휘에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을 두고 "굉장히 당황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15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3월 25일 첫 준비기일을 연 지 3주일 만이다. 출석 의무가 없어 세 피고인은 모두 불참했지만 검찰에서 14명, 변호인 10명이 출석해 소송관계인들 자리는 꽉 채워졌다.

재판부는 이날도 공소사실과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 방법을 확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공소장에 나오는 보고서 이름, 공소사실의 법리 구성 등 작은 부분 하나도 공방을 주고받으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양쪽 의견을 귀담아 듣던 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는 공소사실 관련 의견 교환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증거조사를 언급했다.

'소송 지연'과 '방어권' 사이

"지난번 공판 기일에 조속히 증거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촉구 드렸고, 피고인 측에서 오늘까지 제출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얘기한 것과 너무 다르게 돼 있어서 도저히 제가 계획했던 대로는 (진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의견서를 받고서 제가 굉장히 당황했고... 그때 그렇게 얘기할 때 나 혼자 착각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재판부 예상과 너무 다른 의견서들이 나와 있었다."

박 부장판사는 차분한 말투로 얘기를 꺼냈지만, '당황'과 '착각'이라는 단어로 난감함과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이어 채희만 검사가 "피고인들은 4월 11일에 이르러서야 쟁점 및 증거인부(동의 여부)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은 피고인들의 태도를 보면 신속한 심리에 협조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들은 계속 준비기일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반복 주장한 내용이나 재판에 임하는 태도를 볼 때 추가 기일을 지정해도 재판부의 심리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재판부에 빠른 진행을 거듭 요청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24일 구속, 2월 11일 기소됐다. 형사소송법상 1심에서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기 때문에 검찰로선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한 만료로 풀려나기 전 심리가 원활히 이뤄져 1심 판결까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재판부에 4월 19일 또는 그 다음주에는 1차 공판을 진행하고, 이후 주 3회 기일을 잡아달라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단은 '충실한 방어권 보장'을 강조하며 소송 지연은 검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상원 변호사는 "증거인부의 전제 중 하나는 변호인이 판단자료를  충분히 얻어야 가능하다"며 "현재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최종 수사목록을 받지 못했다"며 "(검찰이 제공한 수사기록에는) 양승태 피고인의 5회 피의자 신문조서도 빠져 있고 이규진 업무수첩 등도 중요한데 (검찰이) 열람·등사를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단성한 검사는 "팩트와 다른 말씀"이라며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수사목록은 초기에 제공했고 법원행정처 자체 진상조사기록은 별첨기록이라 세부목록을 작성하지 않았을 뿐 다 열람등사해드렸다"며 "이규진 업무수첩 등도 증거로 다 제공했고 원본 컬러복사 신청만 개인 사생활 문제 등이 있어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또 "저희는 다 제공했다, 어떤 게 안 됐다는 건지 말해달라"며 "(변호인은 검찰 쪽에 증거가) 더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상원 변호사는 "검사님이 다 제공했다고 하니까 오늘 공판조서에 지금 제출된 증거목록이 공소사실과 관련한 검찰의 최종적인 입장이고, 거기 기재되지 않은 유죄증거는 제출 안 하겠다고 남겨달라"고 했다. 검찰이 현재 법원에 내고 변호인단의 열람·등사를 허용한 수사기록 외에 추가 증거를 제출하는 일은 재판부가 막아달라는 주장이었다.

난감한 재판부 "앞으로 해야 될 일 너무 많은데..."

박 부장판사는 또 다시 난감해했다. 그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변호인은 '증거에 관한 의견을 완전하게 제출 못하는 책임이 우리한테만 있진 않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그 원인을 우리가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히면 되겠다"고 정리했다.

다만 '검찰 설명이 부족해 동의 여부를 밝히기 어렵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에는 "입증취지는 증거 요지만 기록하는 것인데, 그걸 보고 증거 의견 진술을 못할 정도인지는 생각해보라"고 지적했다. 또 "다음 기일에 전체 증거의견을 내기 힘들다면 적어도 이번주 금요일(19일)까지 (공소사실을 분류한) 5가지 주제 중 1~3번 주제 관련 증인이라도 확정할 수 있도록 의견서를 제출하길 다시 한 번 촉구 드린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 피고인 쌍방 다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고 있지만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좀더 노력해야 될 것 같다"며 거듭 신속한 진행 협조를 부탁했다. 재판부는 4월 22일 3차 준비기일을 열어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는 대로 정식 재판을 시작할 계획이다.

태그:#양승태, #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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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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