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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라는 수식어로도 어딘가 부족해 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근작 <라스트 미션>(Last Mission)'을 봤다. 그의 35번째 감독작이고 22번째 감독겸 출연작이라 한다. 이제와 새삼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건 아니다. 개봉한 지 꽤 지났기도 하거니와 비전공자 주제에 그의 작품을 감히 평한다는 건 결례를 넘어 불경이라고까지 여겨져서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과 충만한 인생의 궤적은 한번쯤 되새겨 볼 만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 그가 몸소 보여주는 고군분투는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큼직한 힌트가 될 수 있겠다고도 여겨졌다.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 이미지.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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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제는 'The Mule'이다. 우리말로 '노새' 또는 '마약 운반자'란 뜻이다. 이게 우리나라에 수입되면서 라스트 미션으로 바뀌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제목 한번 잘 지었네' 하며 무릎을 쳤다.

88세 할아버지가 돈벌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마약 운반에 나선다는 영화 속 설정도 그렇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현재 나이를 감안해도 '마지막 임무'라는 번안 제목은 참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30년생, 우리나이로 올해 91세다. 현재의 내 건강상태 그대로 그 나이가 된다면 과연 똑바로 서 있을 수나 있을까 싶은 나이다. 그런데도 그는 현장에서 영화를 찍고, 연기까지 했다. 참 대단한 양반이다.

사실 몇 년 전 그가 감독겸 주연으로 출연한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년)를 볼 때만 하더라도 그게 마지막이겠거니 했었다. 더 이상은 무리로 보였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에 작은 몸동작에도 얼굴이 벌게지고, 주먹 한방 날리고는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며 왠지 짠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그만 쉬실 때가 됐구나 하며 진정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보란 듯 또 해냈다.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전편보다 더 했다. 주름살은 한결 더 쪼글쪼글해졌고, M자 탈모는 더 깊어졌다. 체중도 확 빠져 보였고, 어깨마저 꾸부정해진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표정에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제 나이에 한 살이 더해진다는 우리말 표현에는 '나이를 먹다'와 '나이가 들다'가 있다. 같은 뜻이지만 따지고 들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사람이 나이를 찾아서 먹는 뜻이다. 주어는 '나'고 '나이'는 목적어다. 주어+목적어+서술어 형태를 갖춘 완벽한 능동태다.

반면 후자는 조금 다르다. '나이'가 보어일 때는 '나는 나이가 들었다'의 뜻이다. '나이'를 주어로 보면 '나에게 나이가 들어오다'가 된다. 어쨌든 둘 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나이가 사람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전자의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은 '사람'을 강조한 능동적인 의미로, 후자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이가 알아서 들어왔다'는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이는 '들어오는 것'이다. 세상에 나이 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그렇다. 매번 해(年) 바뀔 때마다 제 나이에 한 살 더해지는 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데도 사람들은 극구 나이를 사양하려 든다.

이만저만 한 불청객이 아니다. 특히 다 큰 어른들일수록 더 그렇다. 그들은 마치 애들 밥투정하듯 나이 먹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렇다고 나이를 피할 수는 없다. 인력으론 불가능하다. 결국 나이가 훅 치고 들어와 떡 하니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그제야 체념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사람에게 나이는 먹을 거리다. 나이를 피하기는커녕 버선말로 마중 나가 사냥하듯 먼저 찾아서 먹는다. 먹어도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와 같은 부류는 나이의 숨은 맛과 영양 따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맛도 맛이지만 특히 나이 속에 빼곡하게 들어 찬 각종 영양소는 가히 압권이다.

관록, 경륜, 원숙, 노련 따위가 골고루 들어 있다. 그들은 그걸 즐기면서 천천히 먹는다. 그렇게 흡수한 영양분들은 몸 속 곳곳으로 퍼져 젊은 날의 치기, 실수, 실패 따위의 상처를 치료하고 어루만져 준다. 그들은 그렇게 원기를 보충해 새로운 것을 완성하고 건재함을 과시한다.

사실 그 나이까지 현역에 있으면 미움 받기 십상이다. 자라나는 후배들 길 막고 선 'X차'라는 모욕적 언사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그는 다르다. 그는 한창 혈기방장한 후배들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온전히 그만의 세계에 천착한다.

그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후배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전해주고 창작의 의지를 북돋아준다. 마냥 바람둥이일 것 같은 브래들리 쿠퍼-영화 <A특공대>에서 그는 '미남'으로 출연했다-도 앞장 서서 그와 모든 걸 함께 한다.

우리나라의 하정우도 그가 부르면 언제든 할리우드로 달려가겠다고 공언한다. 그는 그렇게 후배들로부터 진심어린 존경을 받고 기꺼이 롤 모델이 되어준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이는 그렇게 먹는 게 아닌가 말이다.

다시 말 하지만 사람들 참 나이 먹기 싫어한다. 도망친다고 이미 코앞에 온 나이가 돌아설 리도 없는데도 그 실없는 짓거리를 사람들은 매번 반복한다. 주름살을 당겨 펴고, 최신 유행 패션을 따라 입어도 제 나이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나이 먹고 주책'이란 소리나 듣는다.

별 하는 일도 없이 공연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도 그렇다. '나잇값도 못한다'고 욕깨나 먹을 뿐이다. 거기다 '내가 왕년에'에 '요즘 애들은' 같은 말이나 입에 달고 살아 봐라. '나이조차 아까운 꼰대'로 찍히기 딱 좋다. 나이를 먹기는 싫은데 어느새 그 나이가 돼 있어서 미처 적응을 못하는 거다. 일종의 거부반응이다.

그래서 나이는 스스로 찾아 먹는 게 맞다. 내가 스스로 잘 씹어 먹고, 잘 소화 시켜, 나만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물론 그렇게 나이 먹자는 게 젊은 애들한테 잘 보이기만 하려는 건 아니다. 보다 주체적으로 늙자는 얘기다. 우리도 보람 있게,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노년을 맞아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다른 누구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 보자는 거다. 과거는 그냥 참고 자료로만 삼고, 지금을 살고 내일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말고 끊임없이 계획하고 쉴 새 없이 시도하는 노년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래서 나이는 기꺼이 먹어줘야 한다.

천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도 아흔의 나이는 난생 처음 겪어본다. 일찍이 죽음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 역시 두려울 터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걸 느낄 겨를이 없어 보인다. 나이나 죽음 따위에 휘둘릴 틈도 없다. 그만이 할 일, 그라서 할 수 있는 일, 그이기에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나이를 먹을 것이다. 기어이 그렇게 나이를 먹고 말 테다. 아주 맛나게, 그리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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