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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 제목만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힐링 도서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결코 가벼이 읽을 책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 아니겠냐며 성급히 결론 짓곤 하는 평범한 에세이가 아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페이지임에도 이 책은 우리가 무기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묵직한 글들을 읽다가 저자 이름을 확인해 봤다.

'에리히 프롬'

짧은 배경 지식으로 판단하건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따위를 만들 작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심기일전하여 다시 찬찬히 정독을 시작하게 됐다. 책 제목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이다.
 
섣부른 위로나 공감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뼈를 때리는 돌직구를 날린다.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섣부른 위로나 공감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뼈를 때리는 돌직구를 날린다.
ⓒ 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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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발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해 저자는 통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를 착취하며 물질과 욕망에 발목 잡혀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본연의 자유와 자발성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듯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정답과도 같은 말들을 옮겨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꽤나 냉소적인 시선으로 말이다. 불쾌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요샛말로 치면 다 뼈 때리는 말들 뿐이라 반박의 여지는 그리 크게 없다.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이야말로 이미 다 클 대로 커버린 우리의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 테니까.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모두가 자기 밖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는 목표, 즉 인격의 완벽한 발달, 인간의 완벽한 탄생과 완벽한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中
  
만들어진 가짜 자아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한 자아와 대면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길 만들어진 가짜 자아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한 자아와 대면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Niklas Ha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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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잠깐 찾아온 권태처럼, 혹은 지루한 일상의 연장선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사실들이 '무기력'의 형태로 점차 우리의 목을 점차 조이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근본적인 문제제기 그 자체이자, 타성에 젖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주워 담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듯하다. 스스로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이는 우리는 계속해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의 함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말이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中
 

우리는 언제부턴가 타인의 말과 행동, 그 평가에 온 몸을 내던지곤 한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러한 주위의 평가나 평판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의 무게 중심과 자발성이 온전히 내 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결과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서울로 향하는 과정과 활동 그 자체에 더 힘을 쏟고 집중을 해야만, 우리는 점차 옅어지고 있는 자유의 색깔을 좀 더 진하게 칠할 수 있다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린 타인의 감정과 느낌에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를 대입하고 투영시키려 들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그 결과 우리는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무기력감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인간 내면의 강인함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아는지의 여부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환상은 지팡이와 같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 되지만 그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다시 말해 '자신을 잘 꿰뚫어 볼수록' 더 강해진다."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中
 

결국, 나 스스로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굳건한 확신, 그리고 주체적인 사고를 기르라는 저자의 따끔한 충고야말로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니었을까.

내 안의 주체적 사고와 틀 없이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그 틀이 있다면 세계가 내 안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저자가 말하듯 우리의 자아는 보다 온전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어진 나른한 삶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무기력을 선택할지, 혹은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을 선택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영화 "매트릭스" 속 모피어스가 건넨 알약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실런지요 주어진 나른한 삶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무기력을 선택할지, 혹은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을 선택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Niklas Ha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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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모피어스가 주인공 네오에게 두 가지 종류의 약을 건네며 말한다. 빨간 약을 선택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 대로 보게 되겠지만, 파란 약을 선택하면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주인공 네오는 주인공답게 파란 알약을 선택하지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해본 적 있었다. 진정한 나 스스로와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 혹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관성과 타성에 빠진 채, 주어진 자유를 포기했을지에 대해 말이다.

영화에선 기계가 우리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대상으로 나오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정작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제약을 거는 주체가 우리 스스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쉬이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읽은 독자들 역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졌다. 이따금 느끼는 그 무기력함에 대해, 무심코 스쳐 지나가듯 외면해온 그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영화 속 모피어스가 건네는 파란 약처럼, 그 자그마한 통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첨언하자면 저자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하듯, 가짜 자아들 즐비한 세상 속에 나 스스로를 편입시키지 않고, 반대로 세계를 내 안에서 재구성시키는 데 가장 좋은 도구야말로 독서가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난 뒤 생각해 본 적 있다. 나 자신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 책이 아닌 다른 유용한 도구가 과연 있을까.

'파스칼'이 일찍이 이야기한 대로,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강조한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이야말로 내 자아를 단단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자 내게 주어진 온전한 자유를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될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자신의 무기력함, 혹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퇴사와 여행만을 강조하며 수박 겉핥기 식에 그치는 단순한 위안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한다면 말이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나무생각(2016)


태그:#무기력함, #서평,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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