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에 하나가 기초학력 미달이라고?

교육부는 지난 3월 29일 모든 학생의 행복한 출발을 위한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발표한다. 최근 들어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은 표집평가로 시행한 2017년과 2018년을 말한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학을 보면 중학교 3학년의 경우 2017학년도에는 7.1%, 2018학년도에는 11.1%다.
 
2018학년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중, 고교생 기초학력 미달 비율
 2018학년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중, 고교생 기초학력 미달 비율
ⓒ 교육부

관련사진보기


교육부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 이튿날 신문들은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분수도 몰라요…수학 학력미달 고교생 5년 새 2배"(중앙일보)
"중고교생 10명 중 1명은 '수포자' 초1~고·까지 기초학력 진단 확대"(한국일보)
"중·고생 10%가 '수포자'…기초학력 미달 학생 늘고 있다"(국민일보)
"중고생 학력저하 쇼크…10% 이상이 수학 낙제"(조선일보)
"미국엔 '낙오 학생 방지법'…학력 미달 방치하면 교장 내쫓거나 폐교"(중앙일보), "기초조차 몰라…고교 수업하는 웃픈 대학 강의실"(서울신문)

신문, 방송이 이렇게 떠들어대니 우리 같은 사람들도 '허어, 우리 아이들이 정말 공부를 못하네. 수학은 열에 하나가 기초학력 미달이라니'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기초학력=읽고 쓰고 셈하기 능력?

이쯤에서 너나없이 '기초학력 미달'이라고 하니까 '기초학력, 기초학력' 하긴 하는데 도대체 기초학력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일이 엉켜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사전에서 낱말의 뜻매김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간결하고 깔끔한 뜻매김을 얻고 나면 가려던 길이 환하게 보이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에서 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초학력'을 찾아본다.
기초학력(基礎學力)
『교육』 읽기, 쓰기, 셈하기 따위와 같이 여러 교과를 터득하기 위하여 학습의 초기 단계에 습득이 요구되는 기초적인 능력.
'기초학력'은 다른 교과 공부를 하자면 꼭 필요한 읽기와 쓰기, 셈하기. 흔히 3R's라고 한다. 초등학교 낮은 학년 수준에서는 꼭 갖춰야할 능력이겠다. 2015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초등학교 1~2학년군 국어와 수학과 성취기준을 살펴보자.

국어의 경우 "일상 생활과 학습에 필요한 기초 문식성"을 갖추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읽기는 '한글'을 깨치고 읽는 활동을 하면서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읽기 능력", 쓰기는 "자신의 생각이나 학습 결과를 문자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쓰기 능력"을 갖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글자를 바르게 쓰고, 자기 생각을 문장이나 짧은 글로 부담 없이 쓰는 정도다.

수학의 경우 '셈하기'로 좁혀 보면 '수와 연산' 영역과 관련이 있다. 1~2학년군 '수와 연산' 영역은 '네 자리 이하의 수, 두 자리 수 범위의 덧셈과 뺄셈, 곱셈'을 배우는데, "수는 수학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실생활뿐만 아니라 타 교과나 수학의 다른 영역을 학습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사칙계산은 수학 학습에서 습득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며, 이후 학습을 위한 기초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 갖추면 초등학교에서는 기초학력 도달 수준으로 본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진 아이한테도 초등학교 낮은 학년 수준의 기초학력을 말한다면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없다. 그저 미도달 학생을 통과하도록 하기만 하면 책임교육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 조차도 크게 의미가 없다. 2013년 국제성인역량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청년층(16~24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4위였다. 그러니 기초학력을 '읽고 쓰고 셈할 줄 아는 능력', 다시 말해 '3R's'로만 보면 기초학력 논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기초학력=교과의 최소 성취기준 충족 학력? 20% 이상 성취?

그러면 교육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육부가 낸 문서 제목이 '행복한 출발을 위한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이다. 말 그대로 기초학력을 책임지겠다는 실천 계획인 셈이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향상의 중요성 대두 및 그간의 지원 정책 추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초학력의 개념이 다양"하다고 하면서 기초학력을 다음과 같이 뜻매김한다. 
(기본 개념) 문장과 수를 해석하고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정립하여 공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 가능한 범위로 설정
-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춰야 하는 읽기·쓰기·셈하기와 이와 관련된 교과(국어·수학)의 최소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 정의 
교육부 스스로 기초학력 개념이 워낙 다양하고 생각들이 엇갈리는 통에 도무지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장과 수를 해석하고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이라고 했고, 덧붙인 설명에서 '3R's'와 '국어·수학의 최소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했다.

이때 '3R's'는 알겠는데 '최소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고개 갸우뚱하게 된다. 해당 학교급에서 갖추어야할 최소 성취기준, 이를테면 초등학교라면 1~2학년 국어와 수학의 성취기준, 중학교라면 중학교 1학년 국어와 수학의 성취기준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초·중·고를 통틀어 초등학교 1~2학년(군)에서 갖추어야할 국어와 수학의 성취기준을 말하는지 불분명하다.

말을 그렇게 해놓고 '201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발표에서는 "전년 대비 중학교는 국어·수학·영어, 고교는 영어 기초학력 미달비율 증가"했다고 말한다. 이때, 기초학력은 두부모 자르듯 점수로 자른 것이다.

평가를 시행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업성취도평가는 준거참조평가로서 학생에게 교과별 성취수준(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으로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때, '우수학력'은 80% 이상, '보통학력'은 50% 이상~80% 미만, '기초학력'은 20% 이상 50% 미만, '기초학력 미달'은 20% 미만을 가리킨다. 백 점을 만점으로 치면 20점 미만일 때 기초학력 미달 수준이다.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성취수준과 성취평가제 성취기준 비교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성취수준과 성취평가제 성취기준 비교
ⓒ 이무완

관련사진보기

 
초등학교에서는 막연하게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으로 생각하는 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20% 이상만 성취하면 기초학력 도달 수준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20% 수준이면 선다형 경우라면 잘 찍기만 해도 나올 수 있는 점수인데, 모두들 동의할 말한 수준인지 궁금하다.

이와 견주어 중학교에서 시행하는 '성취평가제'는 성취도를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고 성취율이 60% 미만일 때는 성취도를 'E'로 구분한다. 60% 미만일 때 "내용영역에 대한 지식습득과 이해가 미흡한 수준이며 새로운 상황에 거의 일반화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본다. 단순한 수치로만 보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기초학력 미달 학력'이나 '기초학력'은 성취평가제로 보면 죄다 'E' 수준에 걸린다. 
성취도별 정의 및 성취율(예시)
 성취도별 정의 및 성취율(예시)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련사진보기


한편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을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교과에서 길러주어야 할 능력을 교과 역량으로 선정하여 성취기준에 반영하였다.

성취기준은 학습의 결과로 알아야 할 것과 할 수 있어야할 것을 뜻한다. 역량을 반영한 성취기준은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닌, 아는 것을 적용하여 지식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할 것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맥락 속에서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협력학습, 프로젝트 학습, 토의 토론 같은 학생 참여 수업을 강조하며, 배움을 지원하는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와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기초학력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고사를 부활해 '알아야할 것'만 평가하겠다고 한다.

기초학력, 개념부터 바로 서있어야

말이 길어졌다. '기초학력'이란 말을 너나없이 쓰지만 기초학력은 무엇인지 뜻매김조차 두루뭉술하다. '문장과 수를 해석하고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고 했지만 정작 '역량'은 몰라라 하고 지필평가 점수만 가지고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느니 학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나무란다.

이처럼 우리의 문제는 저마다 다른 뜻넓이로 말한다는 데 있다. 누구 하나 기초학력은 이것이다 하고 똑바로 말하지 않는다. 신문, 방송, 교육부가 하는 말이 다르다. 학교 안에서도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 말이 다르면 실천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도대체 기초학력이 무엇인지 뜻매김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전수 평가가 되든 표집 평가가 되든 뜻매김에 걸맞는 평가 방법을 찾는 일은 그 다음 일이다.

태그:#기초학력, #학업성취도평가, #이무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