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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원도 고성 산불로 피해를 본 친구와 친구 아버님(박달원, 82세)을 뵈러 가는 길에 상황을 확인하러 집에 먼저 들렸다. 이 집은 벌을 쳤다.

얼마 전까지 가동됐을 정미소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외관상으로는 별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새집을 짓기 전에 살던 집은 이번 산불로 주저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 모든 게 불탔다  
  
산불피해 친구 아버님의 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친구와 찾았을 때 처음엔 불길에 닥친 반대 방향만 보고 별로 피해를 안 입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당을 들어서자 전혀 다른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 산불피해 친구 아버님의 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친구와 찾았을 때 처음엔 불길에 닥친 반대 방향만 보고 별로 피해를 안 입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당을 들어서자 전혀 다른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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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들어서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차에서 대충 듣기는 했다. 마당과 둔덕에 2단으로 쌓아 1열로 정리한 벌통이 세 줄, 합해 120~130통은 족히 돼 보였는데 단 한 통도 남지 않았다. 모두 불에 탔다. 벌들이 꿀을 모아두고 알을 낳던 벌집만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 바닥에 처참하게 떨어져 있었다.

앞서 들어간 친구는 이미 마당을 가로질러 자신의 것이라며 자랑하던 벌통들이 있던 둔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마당과 마찬가지로 둔덕 위에도 벌통은 단 하나도 없다. 한 줄이 아니라 위로 겹쳐 두 줄로 나란히 놓았던 그 많은 벌통이,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상심한 친구 속초에 따로 사는 친구는 산불이 나자 이곳을 들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불은 이미 영랑호까지 번진 상황이라 가까스로 시내로 돌아와 아버님은 무사히 대피하셨다는 걸 확인했다. 최초 발화지점에서 6km 남짓 거리에 아버님의 집이 있다.
▲ 상심한 친구 속초에 따로 사는 친구는 산불이 나자 이곳을 들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불은 이미 영랑호까지 번진 상황이라 가까스로 시내로 돌아와 아버님은 무사히 대피하셨다는 걸 확인했다. 최초 발화지점에서 6km 남짓 거리에 아버님의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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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은 터가 넓었다. 마당에서 치던 벌통 두 줄이 거기 한 줄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였다. 적어도 한 줄에 80~100여 개의 벌통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퇴직해도 사는 건 문제 없겠다. 잘 보여야 되겠는데, 평생 꿀은 주겠지"라며 농담하곤 했던 친구 몫의 벌이다. 그런데 채 타지 않은 벌집 뭉치만 시커멓게 덩어리진 상태로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속이 많이 상했을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당을 한 바퀴 돌아 뒤꼍에 나갔다가 불길이 휩쓴 마을을 촬영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세 곳으로 나뉘어있던 창고를 살펴봤다. 한 칸은 문이 잠긴 채로 불에 탔지만 유리창이 모두 사라져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대형 냉장고 두 개와 꿀을 내리던 채밀기, 여과기 등의 기계도 모두 형체만 남았다.

두 개의 창고는 문이 아예 찌그러지며 열려 있는 상태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닥에 녹아 흐른 무언가가 있어, 처음엔 겨울철에 꿀이 부족한 벌들에게 먹이로 주던 설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설탕은 높은 열엔 녹기만 하는 게 아니라 탄다.

또, 녹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 게 이상했다. 설탕이 아니라 꿀이었다. 열이 가해지면서 수분은 모두 증발하고 조청처럼 흐른 상태 그대로 까맣게 고체화된 것이다.
 
전소된 3동의 창고 벌을 치기 위해 필요한 온갖 기계와 도구들이 보관되고, 벌꿀과 화분, 프로폴리스와 대형냉장고 등이 가득했던 3동의 창고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 전소된 3동의 창고 벌을 치기 위해 필요한 온갖 기계와 도구들이 보관되고, 벌꿀과 화분, 프로폴리스와 대형냉장고 등이 가득했던 3동의 창고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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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벌집 벌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나서 막 시작된 봄꽃 철에 꿀을 모아들이고 있었다. 그 꿀벌이 모두 이번 산불로 사라졌다.
▲ 불탄 벌집 벌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나서 막 시작된 봄꽃 철에 꿀을 모아들이고 있었다. 그 꿀벌이 모두 이번 산불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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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의 흔적 용기에 담겨 있었기에 더디게 불의 영향을 받았을 꿀은 먼저 가열이 되며 수분만 증발하고 꿀은 이렇게 맨 마지막으로 굳은 조청처럼 바닥에 흐르던 상태 그대로 굳어졌다.
▲ 꿀의 흔적 용기에 담겨 있었기에 더디게 불의 영향을 받았을 꿀은 먼저 가열이 되며 수분만 증발하고 꿀은 이렇게 맨 마지막으로 굳은 조청처럼 바닥에 흐르던 상태 그대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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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살피고 있을 때 친구가 다가왔다. "그게 뭐지? 설탕인가" 친구도 이런 경험이 전혀 없으니 설탕이 녹아서 흐른 줄 안다.

"설탕이라면 창고가 이 정도로 탈 동안 함께 타버리지. 이건 꿀 같은데. 먼저 수분이 증발하고 그 다음에 남은 것 같아. 그때 불이 꺼져서 이렇게 된 거 같다."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창고 안엔 재가 푸석하게 앉아 있다. 벌이 모은 꽃가루(화분)을 자동으로 수집하는, 비폴렌(Bee Pollen)이라는 벌통을 사용하던 걸 봤는데 한순간에 재만 남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화분이랑 꿀이 얼마나 됐나? 아버님이 너무 싸게 가져가려고 해서 아예 납품은 안 하셨으니 제법 양이 많았을 거 같은데?"
"작년 가을부터 겨우내 팔았어. 얼마 전 다섯 드럼인가 팔려고 포장했다고 한 거 같아. 그리고 화분은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꿀 한 병에 2kg씩 소분해 포장한다. 한 드럼에 200kg이니 총 1톤을 새로 포장하셨다는 얘기다. 화분도 생산량이 상당했다. 지난 여름 저녁 나절 들려 벌통을 보니 생수병 하나는 채울 수 있는 화분이 모여 있었다. 먼저 꺼내 말리기 시작한 통들도 있지만 1년에 최소 두 번은 벌통에서 화분을 꺼낸다고 했다.

거기다 특별하게 취급되는 프로폴리스란 벌의 생산물이 있다. 꽃가루나 꽃에서 채취한 꿀과는 달리, 나무의 수액에서 벌이 모으는 수지성 물질이다. 벌집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고칠 때 사용한다. 이 프로폴리스는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져 벌의 생산물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팔린다.

프로폴리스가 생각나 친구에게 얼마나 있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글쎄 한 10병 있었던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작은 생수병 하나가 500㎖다. 이런 병(벌이 생산한 꿀과 화분, 프로폴리스를 담는 병은 별도로 주문해 사용한다. '페트'라고 부르는 용기를 사용했다) 10개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손수 기른 꿀벌들...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꿀 판매 뙤약볕 아래서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나 친구 어머니는 이렇게 지나가는 차를 상대로 꿀을 팔았다. 생활비도 자식들에게 의지할 일이 없고, 소자들 용돈도 넉넉히 주며 새집을 짓느라 낸 조합 돈도 갚아 나갈 수 있던 귀한 일이었다.
▲ 꿀 판매 뙤약볕 아래서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나 친구 어머니는 이렇게 지나가는 차를 상대로 꿀을 팔았다. 생활비도 자식들에게 의지할 일이 없고, 소자들 용돈도 넉넉히 주며 새집을 짓느라 낸 조합 돈도 갚아 나갈 수 있던 귀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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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채취용 꿀벌통 일부 모르는 이들이 화분을 벌똥으로 안다. 이처럼 특수하게 제작된 벌통을 설치해 벌이 꿀과 함께 꽃에서 모아온 꽃가루만 별도로 수집할 수 있다.
▲ 화분 채취용 꿀벌통 일부 모르는 이들이 화분을 벌똥으로 안다. 이처럼 특수하게 제작된 벌통을 설치해 벌이 꿀과 함께 꽃에서 모아온 꽃가루만 별도로 수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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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향해 날아간 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가져오면 이곳을 통해 드나들며 꿀은 안쪽 벌집에 저장하고 꽃가루는 아래 통에 분리돼 모이게 된다.
▲ 꿀벌 향해 날아간 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가져오면 이곳을 통해 드나들며 꿀은 안쪽 벌집에 저장하고 꽃가루는 아래 통에 분리돼 모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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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꽃에서 꿀벌이 모아온 화분만 따로 수집되는 벌통을 친구 아버님 덕에 오래전 보게 됐다. 2017년 6월 광화문광장에서 돌아가 산나물 몇 가지를 전해드리러 갔을 때 “아범아 그래 집에 처는 암 말도 안 하든? 이거 자네 처한테 가져다 선물이나 해”라 하시며 화분 한 병을 주셨다.
▲ 화분 꽃에서 꿀벌이 모아온 화분만 따로 수집되는 벌통을 친구 아버님 덕에 오래전 보게 됐다. 2017년 6월 광화문광장에서 돌아가 산나물 몇 가지를 전해드리러 갔을 때 “아범아 그래 집에 처는 암 말도 안 하든? 이거 자네 처한테 가져다 선물이나 해”라 하시며 화분 한 병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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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어머니께서 집 앞을 지나는 차량을 상대로 사철 꿀과 화분을 파셨다. 설악산의 준봉들과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자리한 성천리는 원암교차로나 학사평 콩꽃마을에서 청간정이나 장사항으로 이동하는 차들이 자주 다닌다.

국도는 아니지만 번잡한 속초시내나 천진해수욕장으로 빠지는 도로와는 다르게 비교적 한갓지게 이용할 수 있고, 영랑호 주변의 펜션으로 이동하기에도 편하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피해 신고를 하라던데, 바쁘겠네. 그나저나 보험은 들어놓은 거 있어?"
"속초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며 신고는 해 놓았는데 잘 모르겠어. 아버지한테 알아봐야지."
 

꿀벌도 과연 보험에 들어줄까 싶기는 했지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양이 아무리 많아도 꿀과 화분, 프로폴리스를 보험이 받아줄 턱도 없고 막막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현장에 공무원이나 금융권이 나와 피해 조사를 하더라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아범아, 자네 사는 동네 피나무 꽃이 폈드나? 어디 찰피나무가 많은 델 이번엔 가야 하는데, 어지간한 데는 벌써 남들이 다 차지하고 농약 때문에 함부로 갈 수도 없으니 원."
"오색은 토종벌 때문에 양봉은 접근도 못하게 합니다. 다른 데 조용한 곳 있는지 주변에 알아보겠습니다."


친구 부모님은 친구가 어렸을 적 갈천에 사셔서 누리대를 유독 좋아하신다. 누리대와 산나물 드실 걸 몇 단 챙겨 인사차 들리면, 아들 친구라고 한사코 꿀 한 병이라도 안겨주신다. 거절하면 "아범아 그게 아니다. 내가 이거 하나 아들 친구한테 못 나눠주면 내 맘이 안 편타. 어여 받아가거라" 하시던 아버님 마음이 참으로 심란하시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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