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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부마항쟁보상법 보상 제한 위헌 청구'를 기각하자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사장 송기인)은 '유감'을 나타냈다.

12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아래 부마재단)에 따르면, 하루 전날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서 부마항쟁 관련자의 보상을 제한하는 것이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7:2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부마항쟁 당시 20일 구금되어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로부터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았으나 30일 이상 구금자만 생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보상받지 못했다. 이에 청구인은 구금 일수를 제한해 보상하는 것은 기본권의 침해라고 헌법소원을 냈던 것이다.

'부마항쟁보상법'에 따르면 '보상금'은 생명 또는 신체의 손상을 입은 경우에만 지급(제21조)하고, '생활지원금'은 '30일 이상 구금자'거나 '보상금을 받지 못한 상이를 입은 자', '1년 이상 재직한 해직자'만 받을 수 있다(제22조)고 규정되어 있다.

헌재는 이러한 보상의 제한 조건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아래 민주화보상법)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 "구체적 사항을 정하는 건 입법형성 영역"

헌재는 결정문에서 "부마항쟁보상법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 대하여 관련자와 그 유족이 더 간이한 절차를 통하여 일정한 손해배상 내지 손실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절차를 마련한 것"이라며 "부마항쟁보상법에 따라 지급되는 보상금 등의 수급권은 전통적 의미의 국가배상청구권과 달리 위 법률에 의하여 비로소 인정되는 권리로서, 그 수급권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영역에 속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이 사건 보상금 조항이 보상금의 지급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관련자는 그 희생의 정도가 다른 관련자에 비하여 크고, 그 유족도 다른 관련자의 가족에 비하여 희생의 정도가 크고 그에 따라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며 "따라서 이 사건 보상금 조항에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하여 생명 또는 신체의 손상을 입은 경우에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생활지원금을 비롯한 부마항쟁보상법상 보상금 등은 국가가 관련자의 경제활동이나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 생활정도 등을 고려하여 지급대상자와 지원금의 액수를 정하여 지급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생활지원금 조항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들에 한하여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소수의견 "합리적 근거 없이 청구인의 평등권 침해"

서기석·이석태 재판관은 소수 의견(기각 반대)을 냈다. 두 재판관은 "종래의 '민주화보상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마항쟁보상법'을 따로 제정하여 관련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은, 기존의 법률로 보상받지 못하는 관련자까지 보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법적 결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보상의 제한 조건과 배치된다"는 의견을 냈다.

또 두 재판관은 "국회에서 구금일수 제한을 없애는 내용의 부마항쟁보상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때, 추가 재정이 2016년 3억4700만원이라고 비용 추계를 내었음을 들며 지급대상의 확대가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서석기·이석태 재판관은 "합리적 근거 없이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소수의견을 내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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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재단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구금일 관련 보상 기준은 다른 법률(특별법)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재단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도 생활지원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구금 일수의 제한은 없다"며 "'4·3특별법'이나 '노근리사건특별법'에도 피해자 보상의 제한 조건은 없다"고 했다.

부마재단은 헌재 판결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했다. 부마재단은 "단기간에 일어난 부마항쟁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참여자를 법의 혜택에서 배제하는 판결"이라고 우려했다.

또 부마재단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5·18 피해자는 보상을 받고 부마항쟁 피해자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마재단은 "부마항쟁은 박정희 군부 18년 독재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킨 시민항쟁으로, 이번 헌재의 판결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부마항쟁이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위상에 비추어 심히 우려스러운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20일 사이 부산과 창원,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저항해 일어난 항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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