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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얀 언덕 골목길 작은 골목길에는 스플리트 시민들의 삶이 담겨 있다.
▲ 마르얀 언덕 골목길 작은 골목길에는 스플리트 시민들의 삶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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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는 로마 황제의 궁전이 있던 역사적인 도시이지만 달마티아(Dalmatia)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다. 나는 상당한 규모인 스플리트의 전체 시가지를 둘러보기 위해 한 전망대를 올라가 보기로 했다. 178m 높이의 마르얀 언덕 전망대는 구시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어서 스플리트에서 꼭 한번 올라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마르얀 언덕이 있는 산은 현재 마르얀 숲공원(Marjan Forest Park)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숲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승용차는 언덕 입구까지 밖에 못 올라간다. 자료를 찾아보니 마르얀 언덕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표지판에 안내된 듯이 계단이 길게 이어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스플리트의 여러 골목을 통해 올라가는 길이다.

나는 골목을 통해 마르얀 언덕을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골목길은 길지 않아 언덕 전망대까지 충분히 찾아서 걸을 만했다.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에는 스플리트 시민들의 평범한 삶이 녹아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골목길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담 너머 집안에서 인기척만이 들려왔다. 나는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는 집들을 구경하면서 경사진 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골목길을 다 오르자 시원스럽게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망 좋은 비딜리차(Vidilica)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해가 솟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올라온 여행자 몇 명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카페 야외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스플리트 구시가와 아드리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카페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카페 옆의 마르얀 언덕(Marjan Hill) 전망대로 올라서 보았다. 바다의 모습이 더욱 시원하게 펼쳐졌다. 불쑥불쑥 솟아오른 나뭇가지 사이로 구시가 너머의 신시가지까지 한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에는 거대하고 검은 산맥이 불끈 솟아올라 있었다.
 
마르얀 언덕 전망대 스플리트의 구시가와 신시가, 아드리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마르얀 언덕 전망대 스플리트의 구시가와 신시가, 아드리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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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에는 낮은 주황색 건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이 주황색 지붕들은 아침의 밝은 해를 받는 중이었다. 나는 스플리트의 항구 쪽으로도 눈을 돌려 보았다. 항구 앞 부두에는 거대한 유람선들이 정박된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곳은 스플리트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였다.

내 옆 벤치에는 손녀로 보이는 어린 소녀,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아침 산책을 나온 한 할머니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같이 했을 것으로 보이는 반려견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할머니와 개 사이에서 끈끈한 유대감 같은게 강하게 느껴졌다. 영특해 보이는 이 반려견은 아침 산책이 익숙한지 편안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려견과의 산책 반려견과 산책 나온 할머니가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반려견과의 산책 반려견과 산책 나온 할머니가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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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전망이 아주 좋네요. 반려견이 참 착해 보이네요."
"이 아이는 우리 가족이에요. 저 위로 올라가면 더 훌륭한 전망을 볼 수 있어요."


나는 등산스틱까지 갖추고 전망대에 올라온 할머니 가족을 따라 산 정상까지 함께 올라가보기로 했다. 전망대 위로는 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 산 안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품고 계속 산길을 올라갔다. 산길을 오르면서 내가 오른 길의 뒤쪽도 한번씩 돌아보았다. 앞을 볼 때는 보이지 않던 바다의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산 중턱에는 작고 오래된 교회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3세기에 스플리트 시민들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니콜라스 교회(The Church of St. Nicholas)이다. 돌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올려서 지은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교회이다.
 
성 니콜라스 교회 선원들을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성 니콜라스를 모시고 있다.
▲ 성 니콜라스 교회 선원들을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성 니콜라스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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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바다의 위험에서 선박과 선원들을 보호해주었던 성 니콜라스(St. Nicholas)는 이 교회 안에 자리하면서, 스플리트를 오가는 많은 선원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현재도 이 교회는 산 속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홀로 남아 묘한 미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도시에서 벗어난 휴식처 같은 교회는 이 길을 지나가는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는 아름드리 소나무 우거진 길을 계속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니 평평한 언덕이 펼쳐지고 있었다. 꽤 넓은 언덕 위에는 스플리트 기상관측소와 작은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덕 주변에는 운동기구들도 곳곳에 있어서 스플리트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몸을 단련 중이었다. 공원 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더욱 파랗게 빛나는 듯했다.

예상 외로 산 정상까지는 기나긴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와서 보니 이 공원은 언덕이 아니라 작은 산이었고, 정상을 가는 길은 식사를 든든히 하고 와야 하는 작은 트레킹 길이었다. 다행히 오르는 계단이 가파르지는 않아 나는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 거의 다 와서 머리를 들어보니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 같은, 또 다른 계단이 나왔다. 그리고 그 계단 너머 마르얀 언덕의 정상에는 크로아티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우뚝 솟은 국기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크로아티아 국기는 산 정상의 바람에 맞서며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마르얀 언덕의 정상에 올라섰다. 산 정상에는 외국에서 온 여행자는 전혀 없고 이른 아침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주민들만이 보일 뿐이다. 한적한 산 정상으로는 마음이 벅차 오를 정도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과 바다가 잘 어울리는 곳

산 정상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들이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르얀 언덕이 스플리트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한폭의 그림 속, 화룡정점은 바람 속에 휘날리는 크로아티아 국기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크로아티아 국기가 참으로 세련되게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잘 익은 듯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화 속에 크로아티아의 상징과도 같은 체크문양이 국기 중앙에서 빛나고 있었다. 빨간색 체크 무늬는 아침 햇살을 받아 참으로 탐스럽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스플리트 도시를 바라보는 아드리아해는 이곳에서 훨씬 더 섬세하게 다가온다. 스플리트와 스플리트 맞은편의 치오보(Čiovo) 섬 사이에는 마치 바다가 강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섬이 바다를 감싸고 그 앞으로 유람선이 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운치 있을 수가 없다.
 
산 정상의 십자가 깔끔한 십자가가 산 정상의 분위기를 성스럽게 변모시킨다.
▲ 산 정상의 십자가 깔끔한 십자가가 산 정상의 분위기를 성스럽게 변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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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 정상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았다. 정상에서 한 계단 내려가니 십자가가 하얀 광채를 발하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스플리트의 가장 높은 곳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십자가의 위용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군더더기 없이 십자 모양만 조각한 십자가는 깔끔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바다를 바라보는 바위 길 위에서 아침 산책을 나온 한 아저씨와 반려견 한 마리가 뛰고 있다. 이곳은 정녕 반려견들에게 최고의 산책 장소가 되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의 전망 드넓은 바다 위로 유람선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다.
▲ 산 정상에서의 전망 드넓은 바다 위로 유람선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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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가는 길. 산책로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키의 용설란과 선인장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용설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기후가 따뜻한 곳인지를 알 수 있다. 용설란이 자라는 곳 아래로는 사진기가 스스로 알아서 잡아낼, 이른 아침의 밝고 푸르른 색상이 압권이다.

산을 내려올 때는 '마르얀'이 적힌 표지판으로 안내되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이 길은 은근히 많은 계단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계단 길로 내려오자 단숨에 스플리트 항구까지 다다랐고, 눈 바로 앞에는 다시 찬란한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의 마음이 바다를 향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스플리트 구시가의 매력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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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