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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깨알수첩' 언급한 정미경 자유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발언에 나서, 전날 언론에 보도된 이낙연 국무총리의 '깨알수첩'을 언급하고 있다.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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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일 오전 10시 7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아베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권을 일본의 아베 정권에 비유하며 깎아내렸다. 문재인 정부가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정 최고위원 주장의 근거는 정부서울청사와 교보생명 건물에 걸린 그라피티 작업물이었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아래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교보그룹과 함께 대형 현수막을 제작해 걸었다.

정부서울청사 건물 외벽에는 여운형·남자현·김구·안중근·김상옥·윤봉길·유관순·이봉창·안창호·이회영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10명의 스텐실 초상이 가로 100m, 세로 17m 크기 현수막에 실렸다. 교보생명 건물에는 이중 이회영을 제외한 9명의 전신 초상이 내걸렸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이 작품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정 최고위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을 "일제가 가장 높은 현상금으로 붙잡고 싶었던 항일운동가", "조선인민공화국이 당수로 세우고 싶어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정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실일까?

[검증사실①] 100주년 기념 작품서 고의로 이승만 배제했다 → 거짓 
 
 교보생명 건물에 걸린 그라피티 작업물
 교보생명 건물에 걸린 그라피티 작업물.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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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왜 이승만 박사를 왕따시키고 있을까?"

정미경 최고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그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제외하는 건 '역사왜곡' 아니겠나"라면서 "반일감정을 앞세워 정권에 반대하면 친일파로 매도하는 문재인 정권과, 반한 감정을 이용해 자기 정치적 입지 강화하는 일본 아베 정권이 무슨 차이가 있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팩트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선진국가의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더 이상 역사왜곡은 하지 말자"라고 덧붙였다.

정 최고위원의 논리는 정부 직속의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이번 작업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현수막에서 뺀 건 문재인 정부가 아니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의 주장에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전시 취지를 곡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레오다브' 작가의 연작 시리즈를 보고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라면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품을 의뢰한 게 아니라 기존의 작품을 가져온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만을 기념해 임시정부 요인만을 알리고자 한 게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고자 한 것"이라며 "운동가 한 명 한 명의 공과에 대해 판단을 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위원회에서 가이드라인을 준 건, 국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분에 한정하자는 것 뿐이었다"라면서 "특정 인물을 넣거나 빼라고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정부로부터도 전시회를 한다는 내용만 공유했지 어떤 지침을 받은 것도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교보생명 역시 "특정 독립운동가를 넣으라 혹은 빼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다"라고 밝혔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았고, 3.1운동과 임시정부를 기념하겠다는 취지가 좋아서 함께한 것"이라며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특정 독립운동가를 포함시켜야 한다 혹은 포함시키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그라피티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할 때도, 교보생명 역시 특정 독립운동가를 넣었으면 좋겠다 혹은 빼달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라며 "그라피티 작가의 연작 시리즈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작업을 주도한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 본명 최성욱)'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연작"이라면서 "유명한 독립운동가를 시작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까지 소개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협업하는 작가들과 논의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독립운동가를 그렸던 것"이라며 "이번에도 기존에 해왔던 작업물을 제공한 것이며, 특정 독립운동가를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검증사실②] 이승만, 일제 당시 가장 현상금이 높은 독립운동가 → 거짓
 
이승만과 김구(1946, 창덕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3.1운동'을 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었다. 김구는 '3.1운동'을 '3.1대혁명'이라고 부른 반면, 이승만은 제헌국회에서 혁명이라는 표현에 반대하며 '3.1독립운동'이라고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사진은 1946년 창덕궁에서 찍은 사진.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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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가장 높은 현상금으로 붙잡고 싶었던, 체포하고 싶었던 항일운동가가 누구였을까? 이승만이다."

일제가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현상금 '30만 달러'를 걸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있다. <프리미엄 조선>의 2015년 9월 3일 기사는 <소년중국>의 1919년 5월 보도에서 "일제가 이승만 등에 현상금 30만 달러(약 50억 원)를 걸고 자객을 보냈다"라는 부분을 발췌‧인용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전 대통령의 현상금이 독립운동가 중 가장 높은 건 아니다. 같은 기사에서는 <백범일지>의 "일제는 내 목에 1차로 20만 원, 2차로 60만 원을 내걸었다"라는 부분을 인용했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2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백범 김구의 현상금은 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이다. 이 전 대통령보다 높은 액수다.

또한 의열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의 현상금은 당시 김구보다 높은 '100만 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를 증빙할 수 있는 명확한 사료가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현상금 관련 사료 자체의 신빙성 문제도 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의 1919년 5월 22일자 보도를 보면, <동경특별통신>에서 <소년중국>에 보낸 전보가 나온다"라며 "여기에 따르면 이승만‧이완‧이위종 등 3인에게 총 30만 원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는 "이승만 1인에게 30만 원이 걸린 거라 보기도 어렵고, 그야말로 '전언'에 의한 보도이기 때문에 사료로 인정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조세열 이사는 "일본 외무성이든, 조선총독부든, 일제 관헌문서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면서 "그러나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이후 계속 확대‧재생산되면서, 정치적 선전 자료로 활용됐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만약 현상금 자체가 사실이라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개인 일기에 분명히 기재됐을 것"이라면서 "당시에도 '현상금 보도'가 거짓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검증사실③] 조선공산당, 이승만을 당수로 세우려 했다 → 검증불가 
 
 해방 직후 박헌영.
 해방 직후 박헌영.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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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공산주의자들이 조선인민공화국 세우려고 시도했는데, 그때 초대 당수로 세우고 싶었던 항일운동가가 누구였을까? 이승만이다."

해방정국 당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며 조선공산당 재건에 앞장선 박헌영은 여운형과 함께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1945년 9월 14일, 인민공화국 중앙위원회는 이 전 대통령을 공화국 주석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는 이 전 대통령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선출이었으며, 이승만은 끝내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1945년 10월 29일, 박헌영과 이승만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최고위원이 '당수'라고 표현했지만, 당수는 정당의 대표를 의미한다. 공화국 주석과는 다른 개념이다. 물론 박헌영이 당시에 이승만에게 조선공산당 당수를 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명확한 사료는 없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는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당수를 제안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까지 없다"라고 설명했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당시 좌익화된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주석으로 앉히려고 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당수가 아니라 민족 전체의 지도자를 꿈꿨던 사람이었다,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당수를 제안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세력을 이끌고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여하면서 이 전 대통령과 잠시 협력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후 좌익과 우익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갈라서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심 소장은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은, 조갑제를 위시한 뉴라이트 세력과 보수정당이 이 전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미화하면서 시작됐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면서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이를 반박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면서 논쟁이 격화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차분하게 공과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을 지금처럼 정쟁의 도구로 만든 건 지금의 한국당"이라면서 "이 논란의 책임이 있는 정당이 오히려 문재인 정부 탓을 하는 건 다소 납득이 안 된다"라고 평가했다.

 
 factcheck [대체로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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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