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불법촬영
 불법촬영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공공의료원에 근무 중이라니(관련기사 : [단독] 성범죄 의사, 1년 넘게 공공의료원에 재직). 그런데 취재를 진행하면서 당혹감은 더욱 커져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정부, 지자체, 공공의료원의 '성범죄 의료인 점검'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이다. 제보를 접하고, 가장 먼저 이 의사가 재직 중이던 순천의료원에 질의서를 넣었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과 순천의료원이 보내온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 범죄를 저지른 이 의사는 1심 재판 중이던 2017년 3월 순천의료원에 입사했고, 1년 후인 2018년 3월 대법원으로부터 확정 판결(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받았다. 채용된 시점이 대법원 확정 판결 전이었기 때문에 채용 당시엔 성범죄 경력 조회에 걸리지 않았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에 진행된 조회에서도 이 의사는 걸러지지 않았다. 2018년 7월 20일 순천시는 '2018년 성범죄자 의료인 취업 일제점검에 따른 인적사항 제출 요청' 공문을 순천의료원에 보냈다. 사흘 후 순천의료원은 이 의사를 포함해 135명의 인적사항을 제출했다.

순천시는 이를 토대로 순천의료원 전체 인원의 성범죄 경력을 조회했으나 모두 '처리완료' 처분을 받았다. 순천의료원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가 있었음에도 성범죄 경력을 가진 인원이 '0명'으로 조회됐던 것이다.

'특별' 전수조사, 그러나

비단 순천의료원만의 문제였을까. 보건복지부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아청법)' 57조에 따라, 통상 1년에 한 번씩 성범죄 의료인이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그런데 2018년 7월에 진행된 '2018년 성범죄자 의료인 취업 일제점검'은 다소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진행됐다.

2016년 7월 헌법재판소는 아청법 56조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성범죄자의 '10년 취업제한'이 담긴 조항인데, 취업제한 장소엔 의료기관도 들어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죄의 경중이나 재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10년 동안 취업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이 조항의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18년 7월에 '무조건 10년→최대 10년'으로 법이 바뀌었는데,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부터 아청법 개정 사이에 입법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2년 동안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에겐 취업제한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마침 순천의료원 해당 의사의 대법원 확정 판결 날짜가 그 사이인 2018년 3월이었다).

2018년 7월 아청법 개정 직후,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교육시설·체육시설·게임시설·경비시설 등을 상대로 전수 조사를 벌였다. 이에 따라 순천시도 순천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을 상대로 '2018년 성범죄자 의료인 취업 일제점검'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번 사례를 떠올려보면,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이뤄진 '특별' 전수조사에 구멍이 생겼다는 결론이 나온다. 순천의료원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기관 및 교육시설·체육시설·게임시설·경비시설 등 아동·청소년들이 장시간 머무는 곳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다시 전수조사를 벌여 이러한 불신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는 계속 의사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유죄 판결 확정 후에도 1년 넘게 공공의료원에 재직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순천의료원은 <오마이뉴스> 취재 직후 해당 의사를 해임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유죄 판결 확정 후에도 1년 넘게 공공의료원에 재직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순천의료원은 <오마이뉴스> 취재 직후 해당 의사를 해임했다. 사진은 순천의료원 홈페이지에 "공석"으로 표시돼 있는 한 진료과목 안내. 이전에는 성범죄 의사의 이름과 사진이 담겨 있었다.
ⓒ 순천의료원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또 하나 당혹스러웠던 점은 취재 도중 순천의료원이 해당 의사를 해임한 것이었다. 해임은 당연했지만 그 이후 상황에 대한 '상상' 때문이었다. 순천의료원에서 나간 후 그는 의사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곧 그렇게 된다'이다.

원칙적으로 이 의사에겐 취업제한 3년이 적용된다. 앞서 말했듯 이 의사는 2016년 7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과 2018년 7월 아청법 개정 사이의 입법 공백 기간 동안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개정된 아청법에 따라 그 기간 동안 발생한 성범죄자는 형량에 따라 5년 혹은 3년 혹은 1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 의사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3년 뒤인 2023년 3월부터 다시 의사로 활동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취업제한 면제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런 느낌을 받았겠지만, 기자도 이 취업제한과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자세한 내용은 기사 하단에 첨언). 기자뿐만 아니라 취재 중 자문을 구한 법조인들조차 곧장 답을 주지 못할 만큼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실 의료법의 의사면허 취소와 관련된 조항을 바꾸면 제일 간단하다. 의사면허 취소와 관련된 현행 의료법은 19년 전을 기준으로 갈린다. 2000년 7월 개정되기 전 의료법 8조는 범죄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일본의 의사법(벌금 이상의 형에 처해진 사람에게 면허취소 혹은 3년 이내의 의료업 정치 처분)에 비하면 관대하지만, 우리나라 다른 전문직(변호사·법무사·공인회계사·대학교수·공무원·세무사·변리사 등)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0년 7월 개정된 의료법 8조는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범죄를 몇 가지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성범죄는 물론 의사가 살인이나 업무상 과실치사를 저질러도 의사면허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관련기사 : 성폭행해도, 살인 저질러도... 의사면허 못 뺏는다).

행여 의사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은 어렵지 않게 복귀해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16~2018년 9월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및 결과'에 따르면 재교부신청 41건 중 40건이 승인돼 97.5%의 승인률을 기록했다. 이를 주관하는 보건복지부는 "제도적 고민은 하고 있지만, 현행 의료법에 구체적 규정이 없어 현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어디로

의료법에 대한 논란은 그 동안 꾸준히 있어왔다. 때문에 국회에서도 몇몇 의원들이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의료인 단체의 반발로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대표적인 게 2015년 원혜영 의원의 사례다.

당시 원 의원은 '의사가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박탈해 영원히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몇몇 의료인 단체의 엄청난 항의를 마주해야 했다. 많은 의사들이 욕설을 상징하는 후원금 '18원'을 보내왔고, 심지어 원 의원이 1986년 그만둔 식품업체 풀무원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 여성 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했던 이는 "의사 성추행 사건이 많이 발생해 성교육 필수이수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다"라며 "그런데 발의도 전에 (의료인 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순천의료원 사례뿐만 아니라 고 신해철씨 의료사고, '고대 성추행 의대생'의 성균관대 재입학 등의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이들이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의료법은 변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느슨한 의료법 속에서 면죄부를 받은 의사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 원 의원이 추진한 수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2000년 7월 이전처럼 다른 전문직과 비슷한 수준으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초로 1948년 채택된 '제네바 선언'의 첫 머리다.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의료인 취업제한의 역사
- 2012년 8월 : 아청법 취업제한 대상에 처음 의료인 포함, 형 또는 치료감호 이상을 선고받을 경우 취업제한 10년
- 2016년 7월 : 헌법재판소, 취업제한 기간을 10년으로 고정하는 아청법 해당 조항 위헌 결정
- 2018년 7월 :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아청법 개정, 판사가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할 때 10년 한도 내에서 취업제한 기간 판단, 취업제한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음
- 2018년 7월 아청법 개정에 따라 입법 공백 기간(2016년 7월~2018년 8월)의 경우 : ▲ 3년 초과의 징역 또는 금고형, 5년 취업제한 ▲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 3년 취업제한 ▲ 벌금형, 1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