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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이모작으로 바리스타에 뛰어든 조항균씨(충남 당진)
 인생 이모작으로 바리스타에 뛰어든 조항균씨(충남 당진)
ⓒ 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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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일해 온 날보다 은퇴 후 살아갈 날이 더 긴 요즘, 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숙제다. 일할 때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생 이모작'은 필수다. 젊은 시절 청춘을 다 바쳤던 직장에서 은퇴한 뒤, 노년에 접어들 무렵 또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비단 돈벌이 때문만은 아니다. 은퇴 후 30~40년의 여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학소년 철강업에 뛰어들다

서산시 부석면 출신의 조항균(67)씨도 마찬가지였다. 철강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31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청춘을 바친 노력의 대가가 억대 연봉으로 통장에 찍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그에게도 인생 1막의 끝이 다가왔다.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할 시기, 막막했던 그는 우연히 '커피'를 만났다.

젊은 시절엔 신문기자를 꿈꿨다. 글을 읽고 쓰고, 몽상하고 비평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인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사의 문턱은 높았고, 현실의 벽 앞에서 그는 한국 경제성장을 한창 이끌었던 철강산업과 관련해 야금학을 뒤늦게 공부했다. 마침 포항제철소(현재 포스코) 입사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철강업계에 몸을 담갔다.

현실은 혹독했다. 문학을 사랑하던 그의 성향과는 달랐다. 조직 사회는 경직돼 있었다. 조씨는 "정말 싫었지만 무능하고 나태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일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그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빠르게 승진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악착같이 버텼어요."

포항에서 광양으로

광양제철소 건설 당시 창립멤버로 발탁된 그는 업무에 앞서 6개월간 독일 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한국은 승용차 '포니2'가 갓 출시됐을 무렵으로 자동차가 귀했고, 해외여행 또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떠난 곳에서 그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신기했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는 모습도 새로웠다. 서양 문화에 관심 많았던 그에게 당시 독일 사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또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씨는 "벤츠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엔 노숙자도 있더라"며 "유럽에 대한 환상이 컸지만 여러 사람이 뒤엉켜 사는 모습은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곳에 가면 젖과 꿀이 흐를 줄 알았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6개월 연수를 끝내고 오니 그동안 이상주의자였던 제가 현실주의자가 돼 있었어요."
 
 조항균씨가 만든 카페라떼
 조항균씨가 만든 카페라떼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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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지 못했던 제2의 인생

광양제철소에서 일하게 된 그는 철강업계에서 최고의 기술자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987년에는 사원 2만7000여 명 중 '제2대 포스코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이후 관리직 총괄 업무까지 맡았던 그는 지난 2009년 59세의 나이로 퇴직했다. 

이후 세계 1위의 내화물 회사인 베스비우스라는 영국회사의 한국지사에서 5년간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관련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받으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가 미처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조씨는 "당시만 해도 은퇴 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했다"며 "은퇴 4~5년 전부터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눈에 띈 '바리스타'

베스비우스에서 일하면서 당진과 인연을 맺게 된 조씨는 당진에 터를 잡았다. 은퇴 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으로도 활동했지만, 그는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눈에 들어온 단어가 '바리스타'였다. 평소에도 커피를 좋아해 관련 책을 읽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분야이기도 했다. 

당진시니어클럽에서 제1기 실버 바리스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곧장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몇몇 사람들은 "남자가 할 일이 없어 커피를 배우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는 '포스코에서도 견뎠는데 이것 하나 못 견딜까?' 생각하며 "물러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은 물론, 개인적으로 더 공부해 1급 자격증까지 취득했다"고 했다. 이어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면서 개개인의 생각은 물론 도전에 대한 용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강의·컨설팅 활동 이어와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조씨는 커피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의 노력은 기회로 이어졌고, 현재 당진시립도서관 내 청춘 카페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평일 오후에는 대덕동에 새롭게 생긴 초록 나무카페에서 컨설팅 및 기술지도 등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생학습 배달강좌 강사로 매주 금요일마다 강의도 하고 있다. 

그는 "커피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이 중요하다"며 "지난 커피의 역사는 물론 적정한 원두 사용량과 에스프레소 추출 속도, 물의 온도, 기계 관리 등을 잘 알아야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공부하고 보니 바리스타도 운전면허와 같더라고요.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지만 배우고 익히는 정도에 따라 초보운전자인지 숙련자인지 달라지잖아요. 커피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는 만큼, 그리고 노력하고 연습하는 만큼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죠."

"살아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조항균씨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아 있고 능력이 있기에 일을 하는 것"이라며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고, 덕분에 거울도 한 번 더 보게 된다"면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제 꿈은 젊은 친구들에게 커피 문화를 알리고 제가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앞으로 남은 제2의 인생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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