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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오늘'이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서를 철회했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과 5.18 민주유공자를 향해 망언을 한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규탄하는 성명서였다.

성명서 철회가 결정된 것은 "같은 여성이자 동문을 학교의 이름으로 규탄하려는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에 동의할 수 없"으며, "학생들의 대표라는 지위를 개인의 정치적인 의사를 표명하는 데에 이용하지 말라"는 615명의 숙명여대생 성명서가 발표되고 나서다.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이 철회되기까지
   
숙대 총학생회의 '김순례 동문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에 대한 성명서 철회 입장문'
 숙대 총학생회의 "김순례 동문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에 대한 성명서 철회 입장문"
ⓒ 숙대 총학생회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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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이 '시체장사'를 한다 말하고, 5.18 유공자를 '괴물'로 표현한 김순례 의원의 망언 이후,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두 차례의 정기회의를 거쳐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김순례 동문에게 수여된 총동문회의 '2016 올해의 숙명인상'을 철회할 것과 김순례 의원의 직접 사과를 요구한다고 적혀있다. 

총학생회의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서가 발표되자 마자 곧이어 '김순례 동문 규탄 반대' 615인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주요한 반대 이유는 "숙명여대의 이름으로 총학생회가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음", "동문 규탄으로 인해 숙명여대의 대외적 명예가 실추됨", "동문 규탄은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일조함", "정치적 행동을 이유로 동문을 규탄하는 것은 향후 숙명여대 내의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함"이다. 

이에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성명서에 관한 재논의가 진행되었다. 학생들을 대변하는 성명서가 아니라는 지적에 긴급히 단과대별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설문조사 참여율이 저조하여 대표성을 띠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과반 이상의 위원이 성명서 철회 입장을 밝혔다. 결과적으로는 유지 2인, 철회 8인, 기권 4인으로 김순례 의원 규탄 성명서 철회가 결정되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해야 하는가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같은 당 김진태·이종명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축사하는 김순례 의원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같은 당 김진태·이종명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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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학생회라는 조직이 왜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5.18 망언'을 규탄하는 상식적인 행동이 정치적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총학생회가 정치적인 행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단과대 회장으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와 총학생회장단은 모두 학생들로부터 선출된 대표들이므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의무가 있다. 학생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학생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사안에 관한 입장을 내걸고 여론을 견인해나가야 한다. 그게 학생자치기구의 존재 이유다. 정치를 통해 선출한 학생대표가 자치적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정치적인 것'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전형적인 탈정치화, 다시 말해 정치혐오다. 

한편, 숙명여대 동문 규탄 성명서 논란은 기존의 대학 내 정치혐오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 "학교를 대표하는 총학생회로서 정치색을 띠지 말고 그 시간에 학생복지와 안전에 더 힘쓰라"는 진부한 정치혐오 외에 주요 골자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성 동문 감싸주기'다. 

김순례 동문 규탄 반대 성명서에 서명을 한 숙명여대생의 51.7%(318명)는 "이번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동문 규탄은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입장에 힘을 실었다. 또한 45.2%(278명)의 연서명자는 "정치적인 행동을 이유로 동문을 규탄하는 일은 향후 숙명여대 내의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 정치인이라면 어떠한 잘못을 했다 한들 연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기존의 가부장적 정치시스템에 기생하며 소수자 및 약자를 향한 혐오 발언을 하는 정치인을, 우리는 정말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해야 하나? 그러한 주장에 5.18 여성 피해자는 어디에 있나? 숙명여자대학교에는 5.18 유공자가 없을까? 숙명여자대학교에는 세월호 참사 피해당사자 혹은 유가족이 없을까? 김순례 의원의 발언은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도덕적 검열'과 같은 수식어로 포장되어서는 안 되는 심각한 문제 발언이다. 

총학생회 '오늘'은 8일 오후 10시경에 발표한 입장문에서 "중운위(중앙운영위원회)는 해당 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의견 수렴의 미흡함에 대해 책임을 절감하고 있다"며, "성명서 발표 및 번복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모든 분들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학생사회가 걱정된다. 그러나 나는 정치혐오, 그리고 여성주의의 가면을 쓴 알 수 없는 혐오에 맞서서 우리의 '오늘'을 위해 끊임없이 말하고 또 연대할 것이다.  
 
기존에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서. 현재는 철회됐다.
 기존에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김순례 동문 규탄" 성명서. 현재는 철회됐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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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숙명여대 김순례, #숙명여대 김순례 규탄 논란, #김순례 규탄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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