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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의 모습.
 정기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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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8시 52분. 한진그룹은 주요 언론사에 '알려드립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이어 오전 8시 54분 <연합뉴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언론들은 조 회장의 타계 소식을 긴급 속보로 전했다. '조양호'와 '대한항공' 등은 곧장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 올랐다. (관련기사:'사진과 하늘' 좋아했던 조양호,'땅콩과 물컵갑질'로 사라지다)

오전 9시 정시 개장을 앞둔 주식시장은 이미 한진그룹 관련 계열사를 중심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진칼 주가는 개장 10분만에 10%포인트 오르더니, 오후 한때 전날 대비 무려 24% 이상 치솟기도 했다. 한진칼은 이날 20.63%(3만4000원)나 폭등한 상태로 거래를 끝마쳤다. 한진칼뿐 아니라 대한항공을 비롯해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큰폭으로 상승했다.

9일에도 한진칼의 주가는 이날 한때 13.82%나 올랐다가, 오후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대신 의결권 없는 우선주 한진칼은 상한가를 기록했고, 우선주 대한항공 주식도 16.46% 폭등해, 연이틀 상승세를 이어갔다.

일반적으로 기업 총수의 부재는 해당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주가 역시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실패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진가의 비극이 주식시장에선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돈은 인정사정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정한' 주식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조 회장의 사망소식은 왜 한진그룹의 주가를 끌어올렸을까. 이유는 향후 그룹의 지배구조 방향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 회장 사망에 따른 거액의 상속세 부담으로 조씨 일가의 그룹 지배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한진그룹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중심의 3세 세습 경영으로 갈지,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룹 지배구조가 재편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진그룹의 본격적인 승계는 조 회장이 갖고 있는 한진칼의 지분이 어떻게 나뉘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진의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맨 꼭대기에 있다. 이어 대한항공과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다. 한진칼을 손에 넣을 경우 한진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작년말 기준으로 조씨일가가 갖고 있는 한진칼의 지분은 모두 24.79%다. 조 회장이 17.84%로 가장 많고,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2.34%, 조현아와 조현민씨 등이 각각 2.31%, 2.30%를 갖고 있다. 여기에 정석인하학원(2.14%)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4.16%를 갖고 있다. 이럴 경우 조씨 일가의 우호 지분은 모두 28.95%다. 

문제는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나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30억 원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50%를 상속세로 내야 한다. 주식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할증 20~30% 적용한다. 따라서 상속세율은 최대 65%까지 오른다. 게다가 상장기업의 상속세는 현금으로 내야 한다. 물론 5년 동안 나누어 낼 수는 있다. 

조 회장이 남긴 한진그룹 주식 재산, 상속세로만 최소 1750억 대 현금 내야
   
 
고 조양호 회장이 갖고 있는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 계열사 주식 가격은 지난 8일 기준으로 약 3454억 원으로 파악됐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통해 조 회장의 보유 유가증권의 가치는 약 3454억 원 정도"라며 "상속세율 50%만 단순 적용하더라도 조씨 일가에서 내야할 상속세만 1727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에 따른 할증을 적용하고, 조 회장의 비상장 주식과 부동산 등 다른 재산까지 합할 경우, 조 회장 가족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최소 175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씩 4개월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매기게 돼 있다. 조 회장 사망 이후 8일 하루 동안 한진칼 등 주요 계열사 주가가 급등한 것을 감안하면, 조 회장의 보유 재산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만큼 세금도 늘어나게 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조 회장 가족이 상속을 대비해 현금으로 자금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승계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진칼의 지분이 어떻게 정리되느냐가 핵심"이라며 "세 자녀의 한진칼 지분율이 다 합쳐도 6.95%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 회장의 지분 17.84%에 대한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만약 조 회장 가족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경우, 한진칼의 지분이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류 대표는 "물론 조씨 우호지분 등을 합할 경우 여전히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2대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인 KCGI 등의 목소리도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원태 사장 중심으로 3세 세습경영 우세... 현아·현민씨도 경영 복귀 가능성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 인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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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선 조 회장 가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우선 주식 담보대출과 배당 등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향후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상속세 납부 등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포스트 조양호 체제는 조 사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며 "조 사장은 대한항공뿐 아니라 한진칼의 대표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조 사장은 지난 2017년 대한항공 사장으로 오른 상태다.

다만 조 사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조 사장 역시 과거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폭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고, 뚜렷이 내세울 만한 경영 성과가 없었던 점도 지적되고 있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대한항공이 흑자로 돌아섰고, 미국 델타 항공과 조인트 벤처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조 회장의 사내 인사 연임 실패 후 내놓은 성명에서 "조원태 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총수일가가 경쟁 없이 최고 경영자로 선임될 경우 그룹을 위기로 내몰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 일부에선 조원태 사장이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을 맡고, 조현아와 조현민씨가 각각 칼호텔네트워크와 진에어 등을 맡는 것으로 경영권이 정리될 가능성도 나온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재벌총수의 갑작스런 죽음과 취약한 지배구조, 3세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 등 한진가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태그:#고 조양호 회장, #한진그룹, #대한항공, #땅콩 갑질, #재벌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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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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