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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TV 화면 속에서는 수백 명이 탄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나는 소파에 앉아 한약을 마시고 있었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 임신에 도움이 될 거라며 부모님이 지어 보내주신 약이었다. 멍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입안에 머금은 약이 썼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독한 맛이었다.

아이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저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도 하나 구하지 않는 나라에서, 누구 좋으라고 아이를 낳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빌었다. 이대로 영영 아기 같은 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진심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라에서는 나도 아이도, 누구 하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비겁했다
 
 세월호 천막, 분향소 철거를 이틀 앞둔 광화문 광장의 풍경
 세월호 천막, 분향소 철거를 이틀 앞둔 광화문 광장의 풍경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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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9월, 결혼 한 지 3년 만에 첫 아기가 생겼다. 좋았다. 가족들 모두가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좋으면서도 불안했고, 감사하면서도 무서웠다.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멋대로 아이를 낳아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일까. 나중에 아이가 왜 이런 세상에 자기를 낳았냐고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밤낮없이 나를 찾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 고단했고, 세상 돌아가는 일 따위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자연스레 2014년 4월의 일도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아니, 지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지워버린 것이다. 내 일상에 방해되는 감정들이므로, 리모컨의 버튼 누르듯이 그쪽으로 가는 모든 신경을 꺼버렸다.

사람들도 하나 둘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비난과 질책의 방향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역겹고 더러운 나라지만, 어쨌거나 이곳에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슬프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들을 모두 껴안고 살기에는 각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이 너무도 고단했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겁한 변명만 구구절절 늘어놓는 나 자신이 못 견디게 싫었다. 이제 자식 잃은 부모들은 더 이상 억울하게 다치는 사람 만들지 말자며 안전법을 만들려고 밤낮없이 돌아다니며 소리치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붙들고 일으켜 싸우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이렇게도 비겁하게 살고 있는 걸까.
 
신이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역경만 준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그 말을 믿기엔 살인과 자살이, 어느 날 돌아가는 길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게 중요한 건,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고통은 우리를 흔들고, 깨뜨려 활짝 열리게 하고, 서로와 접촉하도록 만든다. 중요한 건 그때 우리가 취하는 행동이다. (제사 크리스핀, <죽은 왕녀들의 사회> 264쪽)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뒤늦게 그들의 이야기가 적힌 책들을 읽으며 이제는 아무 쓸모도 없는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이 잠든 밤마다 책을 펼쳐 읽다가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부끄러워 흐느끼지도 못하고 축축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드는 날들이었다.
 
나는 아들을 잃었다. 그 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듣는 걸 견딜 수가 없다. 그 애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이제 순전히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밖에 없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나는 잊지 않기로 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12명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녹음한 내용을 글로 다듬어 엮고, 8명의 만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책 속에는 참사 후 240일여간 유가족들이 겪은 내밀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고통스럽다. 슬픔과 자기혐오,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과 환멸이 뒤엉킨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읽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함이다. 허망하게 스러져간 영혼들을, 남겨진 사람들을, 우리의 무능과 어리석음을, 그들의 죄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같이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마음,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의 등을 토닥여 줄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6월. 진도 팽목항으로 첫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50여 일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까지 함께 기다리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출발했지만 무척 조심스러웠다. 진도가 고립무원이 되면 어쩌나 하면서도 누구도 어쩌지 못했던 시간들.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서성이는 마음들뿐이었다. 그토록 큰 슬픔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한 유가족의 말. "그냥 옆에 있는 거지. 뭔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등 두드려드리고 같이 밥 먹고 옆에서 자고 또 담배 같이 피우고 그렇게." (264쪽)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씀, 창비(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씀, 창비(2015)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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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이 되면, 책을 고르는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는다. 편안한 집에 앉아 이깟 책이나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책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며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버릴까 덜컥 겁이 난다.

일 년 열두 달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없는 달이 없지만, 4월은 그중에서도 손 꼽히게 잔인하다. 나에게 4월은 슬픔을 공부하는 시간이다. 이달에 읽을 책들을 고르며 속으로 되뇌어본다.

부끄럽지 않게 조금 더 제대로 살고 싶다고.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나는 계속 읽어나갈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악이다.
 
이제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이 굴러간다. 그러나 4월 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 (342쪽)

위로하며 같이 울고 싶지만 섣부른 위로가 가슴을 후벼팔까 봐 다가서기 어려운 시간, 진실을 밝히려고 앞장서는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다가도 뒤돌아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경의조차 잔인하다 여겨지는 시간. 집에 들어가며 누군가의 존재를 느낄 때 누군가의 부재에 직면해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 행복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못하는 시간. 이 책을 읽는 우리가 보내는 시간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343쪽)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창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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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