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3 13:45최종 업데이트 19.04.23 13:45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기관으로부터 안전과 인생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되었던 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사과 없는 국가를 대신해 스스로 자신을 기념하는 '이상한 집'을 지으려 합니다. 그 이상한 집의 이름은 '수상한 집'. 지금 제주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일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이번 회에서는 지난 번에 이어  '지금여기에'와 함께 수상한 집을 기획한 '기억발전소'가 이 집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힙니다. [편집자말]
지금여기에, 기억발전소, 건축사무소 '미용실', 그리고 조작간첩 선생님 5명이 터무니 프로젝트가 진행될 강광보 선생님의 집을 방문했다. 전시관으로 구성할 때 필요한 소품들을 살피고 실제 공간에서 더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눈이 많이 내리던 추운 날이었지만 이 땅에서 터의 무늬를 새로 그려나갈 상상에 따뜻한 웃음꽃이 퍼졌다.
 

2018년 2월 1일 강광보 선생님 집 방문 ⓒ 기억발전소

 
강광보 선생이 내어준 도련동 집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집을 부수고 건물을 새로 올리는 것보다 옛집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을 원하셨다. 자신이 없을 때, 아이들이 뛰놀았을 마당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억울한 삶을 알리고자 한다는 것에 가슴 한 편이 뭉클해졌다. 그와 별개로 집을 살리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은 냉정해야 했다. 터무니 프로젝트는 사실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숙박시설이든 카페든 자체적으로 돈을 벌며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에 건축과 함께 전시관, 그리고 휴게시설에 대한 기획이 동시에 들어가야 했다.

주택 부지를 개조해 새로 만든 서울 성산동의 '전쟁과 인권 박물관'처럼 부지나 건축 비용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제주시 한림읍의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처럼 옛집을 그대로 전시관으로 쓰기에는 기타 휴게시설을 만들기 어려웠다. 우리만의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미용실에서 여러 시안을 고민하다가 '집 속의 집'이라는 형식을 제안했다. 옛집이 새 집 안에 쏙 들어가 있는 형태였다. 

수상한 집 설계 도면 변천 1 ⓒ 김원일

   

수상한 집 설계 도면 변천 2 ⓒ 김원일

   

수상한 집 설계 도면 변천 3 ⓒ 김원일

   

수상한 집 설계 도면 변천 4 ⓒ 김원일

   

수상한 집 설계 도면 변천 5 ⓒ 김원일

  
기본 형태가 정해진 뒤 내부 시설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디에이션(상상하기)을 위해 세 팀이 서울과 제주에서 서너 차례 회의를 지속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어떤 숙박객이 올지 상상하면서 부엌 및 화장실 갯수와 동선, 한라산을 마주할 수 있는 뷰 포인트 등을 고려하여 여러 차례 구조를 변경했다.

유지관리 비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시관은 물론 카페 운영도 중요했다. 기존에는 '조작 간첩 이야기를 보기 위해 전시관에 오는 사람 및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잡았다면, 기억발전소에서는 장사가 잘 되는 카페들의 특성을 이야기 하며 '카페에 왔다 조작 간첩 이야기를 접하는' 편이 모르는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기에 더 적합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따라 미용실에서는 전시관과 카페의 경계를 허물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테리어와 콘텐츠 배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수상한 책'의 네이밍을 제안했던 기억발전소가 공간 이름으로 터무니 대신, '수상한 집'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터무니'라는 단어보다 '수상한'이라는 단어가 좀 더 명확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고, 전시관 외에 카페 이름으로만 쓰여도 좀 더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동의한 끝에 공간 이름이 '수상한 집'으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2018년 6월 25일 지금여기에와 기억발전소의 회의 장면 ⓒ 기억발전소

 
오랫동안 피해자 선생님들을 만나왔던 '지금여기에'는 조작 간첩이 가벼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전시로 풀어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전시관과 카페를 연결하는 부분에서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사이, 휴식이라는 지점이 상충되는 느낌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 진심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기억발전소에서는 공간 연출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카페의 결합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국내에 처음 생기는 '간첩 기념관'이 #해시태그 하고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 변모해 밀레니얼 세대들에 의해 전파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2019년의 우리는 줄을 서서 평양냉면을 먹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촬영된 사진집을 사고, 간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간에 온다. 70~80년대라면 모두 다 간첩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꼭 선생님들과 같은 조작된 간첩 혐의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국가가 다른 형태로 관람객 각자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시련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2019년 1월 20일 현장 확인 후 추가 회의록 ⓒ 기억발전소

   
우리는 누군가 잠시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계속 억울한 사람으로 남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기에, 그 순간을 삶의 해프닝처럼 보이는 데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한 개인이 수상한 시절을 살았고, 그 속에서 다르지만 같은 삶을 겪었던 이웃을 만나 새롭게 살고자 하는 흐름을 전시의 뼈대로 잡기로 했다. 전시 구성은 크게 '광보 이야기'와 '수상한 시대', '지금 여기에'의 세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원래 있던 집 ⓒ 기억발전소


'광보 이야기'는 강광보 선생님이 기존 집에서 생활공간과 서재로 쓰던 형태를 그대로 살린 방으로, 전시관 입장 전 마당에서 창 너머로 처음 만나는 공간이다. 외관은 여느 제주의 풍경이지만,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일본에서 18년을 살았던 선생의 삶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면서 시공간이 교차되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강광보라는 사람의 개인사와 이동 경로, 시대상황이 연표와 지도로 구성되며, 서재에는 간첩 혐의를 받은 이후 감옥에서 읽었던 서적, 김대중 대통령에게 받은 휘호 등이 비치될 예정이다.

'수상한 시대'는 취조실을 떠올리게 하는 어두운 방을 살린 섹션이다. 자갈 깔린 작은 방에 핀조명을 달고, 벽면에 설치 된 구형TV(혹은 라디오)에서 당시 간첩 관련 신문 기사 및 사진, 뉴스 영상, 피해자 증언들이 백색 소음 형태로 흘러나온다.

'지금 여기에' 섹션은 돌담 풍경 사이 강광보 선생 외에 함께 무죄 판결을 받은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텍스트로 구성 되어 있다. 간첩 혐의로 판결 받은 제주인 대다수는 4.3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아픈 역사의 틈바구니에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여기(수상한 집)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삽입했다.
 

2019년 3월 4일 지금여기에-기억발전소 회의 ⓒ 기억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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