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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완도교육지원청에서 기획한 '2019 학교로 찾아가는 맞춤형 독서토론 수업'을 완도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과 함께했다.
 지난 3일, 완도교육지원청에서 기획한 "2019 학교로 찾아가는 맞춤형 독서토론 수업"을 완도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과 함께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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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입시'0라는 키워드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사각의 공간에 대략 50~60명이 수용될 수 있는 열람실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암묵적으로 이성과의 교제가 금지된 학교에서 여름날의 열람실은 후덥지근한 땀 냄새와 싸이펜으로 모의고사 시험지를 채점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혹 mp3나, cd player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이어폰을 꽂은 친구의 귀 너머로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채널의 음향처럼 시끄럽게 들렸다.

객관식 5지 선다형으로 풀이되는 언어영역의 시험지를 가만히 봤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소설책 한권을 꺼내 읽다가 감독 선생님의 슬리퍼 소리가 들리거나, 열람실 유리창 너머로 선생님의 기침소리가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문제집을 폈다. 수능시험, 대학만 가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있었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짬과 기회는 없었다. 그것은 집단 공동체의 몫이 아닌 오직 혼자만이 알아가야 할 숙제였기 때문이었다.

삶에 관한 철학이나 역사, 혹은 예술관련 책 하나 꽂아 있지 않고, 한쪽 구석에는 여러 출판사의 문제집만 예술적(?) 디자인을 선보인 채 꽂혀있었다. 책은 보통의 시중 소설집이나 시집이면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할 하드커버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제집은 규격에 맞게 절도 있게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 준비된 컴퓨터, 그리고 중앙에는 나머지 공부를 위한 둥근 탁자가 있는 공간. 실용적인 공부만을 위한 공간에 나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 먼저 왔다. 내가 다녔던 학원의 모습이었다.

십대, 가장 싱그럽고 푸릇푸릇 해야 할 나이, 내 십대와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간에는 옛것과 오늘 것의 변화를 눈에 띨 정도로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 산업 노동자를 육성하기 위해 규격화된 학교 건물에 20세기 스승들이 21세기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 교육의 현장. 그 추상적인 공간에서 '성장'을 위한 발돋움을 어떤 방식으로 취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새삼 다시 꺼내게 된 계기는 한 학생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선생님, 시험 기간에는 수업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주로, 교과 과목 후에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혹은 방과 후 프로그램'이 갖는 딜레마이기도 했다. 눈앞에 닥친 입시라는 거대한 괴물과 고전분투하기 위해 잠깐의 여유도 부릴 참도 없는 아이들의 속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현장에만 들어가면, 이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꼭 있었다. 그럴 때 마른침을 꿀꺽 삼키기는 하지만 입안에 씁쓸함이 먼저 감돌았다.

구조적인 입시 제도라는 큰 틀을 먼저 보고 아이들의 수업 방향을 살핀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쓰는 마음의 에너지 방향을 먼저 보고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인가.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전자를 가늠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늘 선택은 후자를 택한다. 거시적인 댐의 벽면에 가해지는 사소한 균열, 그리고 그 균열에 흘러나온 소량의 물줄기로 말미암아 둑이 터질 것을 기대하는 못되먹은 심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소한 말이라도 비록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반작용하여 물러날지라도 말하게 해야 한다. 자꾸 두드리게 하는 것이 필요 했다.

지난 3일, 겨울 때보다 해가 길어져 6시가 넘었는데도 도로는 밝았다. 완도장난감 도서관과 이웃하여 위치한 완도 고등학교에 '2019 학교로 찾아가는 맞춤형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갔다. 이 수업은 완도교육지원청에서 참여형 토론 문화 형성과 더불어 학생들이 독서활동에 친숙해지고 더 나아가 자신의 말을 스토리텔링화 하여 창의형·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수업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13회차 진행된다.

처음 방문하는 완도고등학교는 고등학교라기 보다는 대학의 캠퍼스를 상상케 할 정도로 본관의 건물이 컸다. 완도군은 섬의 특성상 배로 장거리 통학을 하는 학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기숙사 운영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선생님들의 삶 역시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낸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하나라도 더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늘 분주했다.

1학년과 2학년 12명이 독서토론에 참여했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의 학생들을 입시 제도적 차원에 성적 향상이라는 측면에만 가두지 않고, 좀 더 높은 사고력을 끌어내기 위한 학교 차원의 배려가 있었다. 학생들을 인솔하는 담당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필요한 것이 있느냐 등을 물으며 적극적으로 수업 진행을 도와주셨다.

수업을 하기 전, 내게 주문된 것으로는 학생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적 글쓰기까지 할 수 있게 지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논제적 키워드를 텍스트 상에서 끌어내고 그것을 토론하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수업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몫으로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학생들의 말문을 트게 해야 했다. 억지로라도 발표를 하게 해야 하는데, 이 때 학생이 그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첫 시간이라 학생들은 약간의 낯가림 정도는 있었지만, 또래 집단의 특성상 한 두명이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을 보고 이내 적응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속한 공간은 어떤 곳인지 등이 자기 소개 시간에 해야 할 말의 틀이었다. 자신을 각자, '긁지 않은 복권이다', '미완성된 동화책이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책'이다 등으로 소개했다.

독서 토론 시간이기는 하지만, '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다. 읽는 것에 관한 대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문자도 있지만, 사람, 세계, 사물도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알 듯 모를 듯한 눈빛이 보였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텍스트 역시 작가가 읽은 세계를 문자로 각색하여 적은 것이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그래서 '읽기'라는 행위를 마친 독자는 제2의 창작을 한다는 말을 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덧붙여 말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2번의 수업이 남았다. 매주 저녁, 졸음에 겨운 눈을 끔벅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고, 다시 정리하며 어제보다 오늘 더 두꺼운 자신만의 책을 집필할 학생들이 기대된다.
 

태그:#완도고등학교, #완도교육지원청, #독서토론, #오마이뉴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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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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