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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은 대하소설이 아니다. 한 달 남짓한 사건의 엮음이어서 구성 크기가 턱없이 작아서다. 그러나 대하소설의 맛이 제법 난다. 주인공 이반 촌킨을 둘러싼 잡다한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등장인물마다의 코믹한 에피소드와 우여곡절이 스탈린 시대(1924~1953)를 싸잡아 비판하는 풍자여서 큰 구성인 양 다가온다.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의 민낯 엿보기가 쏠쏠하다.

물론 그 얼개의 핵은 병사 이반 촌킨의 삶이다. 병사 같지 않은 병사로서 지내야 하는 나날, 즉 "이상한 모험"이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엔카베데'(KGB의 전신인 내무인민위원부)의 존재와 위상을 노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의문이나 질문을 불허(통제)하는 당의 운영 방침, 소위 '~(하)라면 ~하는 것'이 당연한 맹목적 일상 풍경이 전개된다. 꺼림칙한데도 당의 논리를 따르는 심리나 정황 묘사 익살이 자연스럽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1941년 6월 22일 직전・직후 즈음이다. 볼품없는 말년 사병 이반 촌킨은 크라스노예 마을에 불시착한 군비행기를 지키는 보초병으로 파견된다. 곧잘 얼뜬 봉변을 당하는 촌킨을 쓸모없는 골칫거리로 여기던 군사령부가 눈앞에서 치우려 보낸 것이다. 이후 군에서는 촌킨과 비행기에 대해 잊어버리고, 촌킨은 마을 우편배달부 뉴라와 동거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다.

독소전쟁을 알리는 대국민 라디오 연설 이후에도 촌킨은 군의 출동에서 제외된다. 그런 촌킨이 엔카베데의 체포 대상이 된 건 뉴라의 암소 탓에 잡종식물 표본을 몽땅 잃은 아마추어 육종학자인 이웃의 클라디셰프가 복수심으로 촌킨을 밀고해서다. 이런저런 억측과 가짜뉴스가 더해지면서 촌킨과 뉴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촌킨 일당'을 체포하기 위해 소련군 1개 연대가 동원된다.

결말에서 촌킨을 영웅으로 추대하다가 죄수로 압송하는 반전은, 부조리한 사회 현상이 속출하는 당시를 현장감 넘치게 전달한다. 이제까지 진행된 맥락을 살려 아퀴 짓는 풍자 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스탈린 체제의 '스투카치(밀고자) 문화'가 무고죄에 해당할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는 제도적 장치라는 고발이기도 하다.

촌킨 이외에도 그 제도가 낳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희생자가 된 인물들 대부분이 체제 순응자라는 건 아이러니다. 촌킨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밀랴가 대위는 촌킨의 포로가 되었다가 촌킨을 체포하려던 연대의 포로가 되어 촌극 같은 오해에 얽혀 결국 독일군으로 판단돼 사형 당한다. 밀랴가 대위를 독일군으로 오인한 부카셰프 소위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반국가 행위를 한 스파이로 단죄된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의 미덕은 그 아이러니를 풍자적으로 까발려 정치의 희화화(戲畫化)에 성공한 데 있다. 그걸 통해 독자인 나는 "기관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는 명성을 갖고 있었다."가 끼친 인간의 폐허를 응시한다.

그렇기에 크라스노예 집단농장 회장 골루베프가 촌킨에 대해 내린 평가는 인간적 응시이자 반체제적 견해다. 골루베프가 무용지물로 분류돼 주류에서 밀려난 촌킨의 쓸모를 발견한 건, 기관의 지시와 거리 먼 행위들을 함께하며 촌킨을 관찰한 결과여서다. 당시의 획일주의가 일상의 삶터를 더 낫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명분마저 놓친 채 방만하게 진행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겉모습만 보면 바보 중에 상바보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하는 수완이 국가를 통치해도 될 정도거든. 자네는 사병으로 남긴 아까워. 중대, 아닌 대대 지휘관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결과적으로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은 내 타임머신이 되어 스탈린 시대(USSR) 나들이를 도운 셈이다. 줄기차게 반체제작가의 길을 고집하며 고급진 풍자소설을 선보인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Войнович(1932~2018)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지음, 양장선 옮김, 문학과지성사(2018)


태그:#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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