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0년 5월 산청 외공리 민간인 학살지 발굴 당시 나온 유해.
 2000년 5월 산청 외공리 민간인 학살지 발굴 당시 나온 유해.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68년 전 무슨 연유로, 어디서 온 누구인지라도 알고 싶다. 아직 유족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야 하기에 위령제를 지내는 것이다."

6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 50여명이 모여 나눈 이야기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서봉석, 사무국장 김영이)가 '위령제'를 지낸 것이다.

산중턱이라 뒤늦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목련꽃 아래에서 원혼을 달래는 춤을 추었다. 박소산 춤꾼이 '평화의 날갯짓'이라는 살풀이를 춘 것이다. 그리고 대책위는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오래 전부터 소정골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가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그들은 모두 6기의 무덤에 묻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책위는 2000년 5월 1기의 무덤을 발굴했다.

당시 무덤 1기에서 250여 구의 유골이 나왔다. 대책위는 유골의 규모 등을 확인한 뒤, 다시 그 자리에 묻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 때 만들어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08년 7~10월 사이 6기의 무덤을 발굴했다. 당시 경남대 박물관 이상길 교수팀이 유해 발굴을 했던 것이다.

이들 무덤에서는 총 280여 구의 유해와 유품이 나왔다. 유해와 함께 발굴된 탄피와 탄두는 권총탄피 3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카빈소총용 실탄이었다. 이는 처형과 같은 방법으로 집단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유해와 함께 단추와 신발의 유품이 나왔다. 이는 그 유해의 주인공이 죄수 신분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었다는 증명이다. 또 교복과 제복을 입은 사람이 다수 나왔고, 여성과 어린 아이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유품으로 발굴된 단추에 한자로 '인상(仁商)'과 '인중(仁中)', '경농(京農)', '해관(海關)'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는 학살된 민간인들이 서울이나 경기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외공리 학살사건'은 1951년 2~3월 사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트럭 3대에 나눠 탄 군인들이 11대의 버스에 타고 온 민간인들을 총살한 것을 말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일보>(1960년 4·5월)와 <부산일보>(1960년 4월)에 관련 보도가 있었다. 당시 기사에는 군용트럭을 앞세운 버스 행렬이 이곳에 들렀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2000년 무덤 1기를 발굴했던 대책위는 다른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땅 한 편 사기 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2004년 270여평의 땅을 매입했던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집단학살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이 남아 있고, 유해와 유품은 없다.

2008년 발굴에서 나온 유해·유품은 그 뒤 충북대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3년 전 세종시 납골시설로 옮겨져 있다. 피학살자들은 억울하게 죽은 데다 한 곳에 잠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산청 외공리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박소산 춤꾼의 '살풀이'.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산청 외공리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박소산 춤꾼의 "살풀이".
ⓒ 백인식

관련사진보기

 
대책위는 해마다 4월 첫째 토요일이나 식목일에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올해는 옛 진주사랑청년회 회원들과 산청군농민회, 산청진보연합을 비롯한 진주·산청 시민단체와 녹색당·민중당 당원들도 함께 했다.

또 정토회 '통일의병' 회원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통일이 될 때까지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마다 위령제 실무를 맡아 오고 있는 김영이 사무국장은 "그래도 해마다 잊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며 "무엇보다 유해가 다시 돌아와 이곳에 잠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대책위는 이곳에 유골·유품을 모실 수 있는 '위령각' 건립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다. 서봉석 집행위원장(전 산청군의원)은 "유해를 다시 이곳으로 모시고 와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 사놓은 땅은 있어도, 건물을 지으려면 길이 있어야 하는데 도면을 보니까 없어서 쉽지가 않다"고 했다.

서 집행원장은 "진실화해위 활동 연장을 위한 관련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동의를 해주지 않으니까 아직 국회 계류 상태다"며 "더 진상규명을 해야 할 게 많은데 안타깝고 깝깝하다"고 말했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오전 외공리 학살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오전 외공리 학살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 백인식

관련사진보기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오전 외공리 학살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4월 6일 오전 외공리 학살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 백인식

관련사진보기


태그:#외공리, #민간인 학살, #진실화해위, #소정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