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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부산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책 속에서 빙고 게임을 위한 키워드를 찾고 있다.
 지난 3일, 부산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책 속에서 빙고 게임을 위한 키워드를 찾고 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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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이청준 소설가의 고향인 장흥. 현대 문학의 거장들이 살결이 역력히 살아있는 장흥에 다음을 이을 꿈의 세대들은 자라고 있었다. 지난 3일, 9시 무렵에 전남 장흥군 부산면에 위치한 부산초등학교를 찾았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보건소, 우체국, 면사무소와 인접한 곳에 자리한 학교이지만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으레 시골 학교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부산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중 한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길>을 쓴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회진면이에요. 작년에 그곳에서 어르신들이 대략 80여분이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출산율은 제로였어요."

"갈수록 1학년 입학생이 적지요"라는 질문에 학교 선생님께서 들려준 말씀이었다. 장흥군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해남도 다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은 이 곳, 전남.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독거 어르신들의 소천. 인구 현황으로만 파악하자면 매년 마을 한 두 개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남도에서 주최하는 청년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인구절벽에 따른 후속 조치로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 청년이 자생하는 도시 등의 이미지 변화를 모색하지만, 실제적으로 돌아온 청년도, 고향이 이곳인 청년들이 실감하는 데에는 미묘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이런 까닭에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초등학교 현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 모드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 현장은 나름대로 자생력을 키우고 있었다. 여전히 학교는 적은 수일지언정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책 읽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교실 너머의 풍경을 감상하며 꿈의 열매를 키우고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해 쓰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펼치고 암송하는 2학년 남학생도 보였다. 침을 삼키고 교단에 나와 암송하다가 틀리면, 아이참, 참 하며 생각을 더듬기도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날의 독서 토론 수업이 있는 첫 날이었다. 대상은 5학년 학생이었다. 학생 10명이 모였다. "또 공부예요? 공부는 절망이에요."

한 아이가 의자에 앉으며 쫑알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초학력을 위한 학습 공부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을 모색하는 삶의 공부를 쉽게 경계 지어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땅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 그것이 바로 삶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성인도 어려운데, 하물며 아이들은 말해 무엇할까.

수업의 진행을 위한 지분을 나누기로 했다. 물론 그 지분은 후에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넘기려고 하지만, 첫 만남에서 나는 조금 고민스러웠다. 일단은 우리 수업의 방향을 잡은 후 노젓 기가 필요했다. 아이들이 무심코 흘린 '절망' 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아이들이 모인 도서관에는 국어사전이 있었다. 조금 크고 두꺼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 아이가 '절망'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모음의 차례를 세기 시작했다.

"아니야, '어'를 찾아야지, 어라? '어'네, 계속 넘겨, 받침 리을을 찾아."

교과목 시간에 배운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는 솜씨가 꽤 능숙해 보였다. 유튜브를 검색하거나, 스마트폰 앱인 구글 앱스토어를 검색해 게임을 다운로드 받는데 능숙한 손이 두꺼운 국어사전을 받치고 낱장의 종이를 차락차락 넘겼다.

이렇게 많은 말이 있고, 그 말의 질감과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 절망의 사전적인 뜻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라고 했다. 나는 다시, 절망과 희망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잘 모른다고 했다. 아이들은 피식 웃으며 뭐냐고 대꾸한다. 그러고선, 자신에게 희망은 치킨을 먹는 것,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강아지의 털을 만지는 것 등이라고 내게 일렀다. 나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은 희망을 품은 듯이 보였다.

게중 아이들의 말 속에서 가장 많은 희망을 알린 '치킨'으로 책과 친해지는 시간을 모색했다. 책에 닭의 그림이 있거나, 닭, 혹은 치킨이라는 낱말이 적힌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찾아오라고 했다. 나름 보물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보물의 기호는 '닭' 이었다.

그러다, 선생님 저는 닭보다는 강아지를 찾을래요. 저는 개요, 개. 하는 말들이 뒤섞였다.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하다가 좋다고 허락해줬다. 사실 어떤 것을 찾던 상관이 없다. 아이들이 책을 만지는데 내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끄럽기도 하고, 올록볼록하기도 한 책의 표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것이 흡사 아이들 어린 시절 블록 장난감을 만지는 느낌처럼, 혹은 게임의 어떤 캐릭터를 쳐다보는 것처럼, 익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에 사용된 매체가 아니라, 친근한 존재로 다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희망으로 시작된 도서관 책 찾기, 그리고 빙고게임, 그러면서 만져본 책의 느낌. 토론을 하기 전에, 책을 읽기 전에 책과 나와의 관계, 나와 친구의 관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학교 및 사회와의 관계. 그러다보니 첫 수업의 이름은 관계가 됐다.

빙고 게임을 하며 책에 있는 동물을 찾을 때, 여기에 펭귄이 있어요. 여기에 거북이가 있어요. 하는 아이들의 말, 어른처럼 그게 바로 관찰력이야 아싸 빙고!를 외쳤던 아이. 그러다 논제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은 그것이 아직 논제인지도 모른다.

"선생님 쟤가 인간이라고 했는데 저는 사람이라 적었거든요. 지워도 돼요?"
"사람하고 인간하고 같은 거 아냐?"
"낱말이 다르잖아. 선생님 무조건 안 돼요."


아이들의 말이 오고가는 그 시간, 수업은 종료됐다. 하지만 다음 수업시간 할 것을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 정해줬다. 가뜩이나 게으른 교사인데 수업의 방향마저 아이들이 해버렸다. 좋은 일이이다. 아이들은 조금씩 수업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지분을 찾아가고 있었다.

 
 

태그:#독서 토론, #장흥공공도서관, #부산초등학교, #오마이뉴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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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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