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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제도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판단중지' 상태로 있곤 한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개인의 욕망과 결탁한 우리나라 사교육시장이 그 제도의 본래 취지를 망가뜨리려 들면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지 않은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초고액 입시코디네이터를 떠올려 보라. 그는 '학종'이든 '수능'이든 뭐든 다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이다. 비교적 공정한 경쟁이든 아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이든 경쟁 도구로서의 시험의 결과가 유일한 교육 목표가 되는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수능'과 '학종'의 딜레마...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해 본다. 한 아기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이 엄마라며 맞서자 판관인 솔로몬 왕은 극약처방으로 누가 진짜 엄마인가를 가려낸다. "나도 모르겠으니 공평하게 아기를 둘로 갈라 각자 가져가라." 이 판결 한 마디에 진짜와 가짜는 판명난다. 아기를 둘로 갈라서라도, 그러니까 아기를 죽여서라도 제 몫은 가져가야겠다고 한 자가 바로 가짜 엄마였다.

그러나 정작 솔로몬의 지혜가 빛나는 것은 이를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아기를 가르자고 한 여인이 사실은 비정한 진짜 엄마고 몸을 던져 칼을 막은 여인은 따뜻한 마음씨의 가짜 엄마였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진짜든 가짜든 아기의 생명을 우선하는 사람이 진짜 엄마의 자격이 있다는 것, 생명을 판단의 중심에 두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판관 솔로몬의 진정한 지혜가 아니었을까.

'학종'이냐 '수능'이냐는 양자택일 이전에 우리가 솔로몬의 지혜로서 판단의 중심에 놓아야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생들의 참된 성장과 행복을 가능케 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속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물음을 외면하는 한 우리는 '학종'과 '수능'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학종'을 지지하는 이유에 관한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보고서
 
 시인 교사의 문학 수업 이야기 <우리의 문학 수업>과 학생들이 쓴 단편 소설집 <작전명 '진돗개'>
 시인 교사의 문학 수업 이야기 <우리의 문학 수업>과 학생들이 쓴 단편 소설집 <작전명 "진돗개">
ⓒ 양철북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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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 국어 교사인 시인 조향미의 <우리의 문학 수업>(양철북, 2019)은 '학종'과 '수능'에 대한 나의 '판단중지'에 댕, 경종을 울렸다. 그는 '수능'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학종'을 조심스러우면서도 강력히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우리의 문학 수업>은 그 이유에 대한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보고서다.
 
"문학은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깨달음과 용기를 줍니다. 소설 한 권, 시 한 편을 읽고 우리 마음이 깨어나는 느낌, 위로와 평화를 얻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문학을 배우는 건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문학작품을 읽는 건 즐겁기도 하고. (…) (문학을 가까이 하면) 게임만 하고 TV만 보는 사람보다 삶의 격이 높아집니다. 몸은 그대로지만 정신이 크고 자유로워집니다. 세계를, 우주를 품을 수도 있어요." (14쪽)
 
고2 문학 수업 첫 시간, '책 바구니를 들고 교실로' 들어간 시인 교사는 '수능에 나오니까' 문학을 배우는 거 아니냐는 아이들을 향해 성심껏 문학을 예찬한다. 시험 경쟁이라는 전장에 내몰린 아이들이 금방 혹할 리는 없다. 거기에다 그가 1년간의 수행평가 계획을 알려주자 아이들로부터는 '비명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왜였을까?

지필고사는 한 학기에 한 번 40%이고 수행평가는 60%인 건 그 학교가 '혁신학교'라 가능한 것인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편 소설 한 권 읽고 8천 자 정도의 서평 쓰기(봄 내내), 좋은 시 읽고 교사가 제시한 요건에 맞춰 에세이 쓰기(여름), 직접 소설 쓰기(가을)…….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해 보는 건 권장 사항이지만 장편을 읽어내는 것도, 8천 자나 되는 글을 쓰는 것도, 난생 처음일 소설 쓰기도 대다수 아이들에겐 버거운 것이어서 '비명과 탄식'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예상 못한 조향미가 아니다. 무려 30여 년을 모둠별 독서 지도와 글쓰기 수업을 해온, 전국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첫 관문인 장편소설 읽기만 하더라도 지시를 해 놓고선 앉아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모둠마다 고른 책도 다르고 열성도 다르기에 하나 하나 부지런히 살펴서 채근할 건 채근하고 격려할 건 격려를 해야 한다.

"저는 그냥 버려 주세요"라는 아이도 있고 "저를 계속 좀 찔러 주세요"라는 아이도 있지만 그는 '단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시키지 않는다'가 모토인 혁신학교 의 교사로서 그야말로 '한 마리 길 잃은 어린 양'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솔직히 8천 자를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끝까지 나를 잡아 주셨고 나는 너무 미안했다. 나 땜에 없는 시간 쪼개서 나를 보려고 해 주셨다. (…) 너는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붙여주시고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55쪽)

교사의 행복은 아이들의 성장을 '괄목상대' 하게 되는 순간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는데 포기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8천 자가 아닌 8백 자도 못 적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글쓰기를 한 것 중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의미 있고 가장 재미있었던 글쓰기인 것 같다. (…) 책을 보는 시선, 글쓰기에 대한 감정,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같다. (68쪽)

아이들의 성장을 '괄목상대'(67쪽) 하게 되는 순간만큼 교사에게 기쁜 순간은 없을 것이다. 조향미가 휴일까지 이용해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대일 피드백', 그러니까 그 글에 하나하나 '비판하고 공감하는 댓글'을 달아주는 걸 기꺼이 해 내는 까닭이기도 하다(48쪽).
  
한 편의 시나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나아가 직접 시를 써 보는 공부는 또 어떤가.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자신도 미처 몰랐던 지적 능력과 감수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한 가련한 소녀를 위해 울었습니다.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터져버린 거친 두 손을 자세히 묘사하여 소녀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은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소수의 부모 없는 아이를 위해 이 시를 적었습니다. 가혹한 현실에 내쳐진 한 소녀는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소녀는 결국 제대로 된 돈도 못 받은 채 내쫓겨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이 시에 담았습니다. (…) 저는 이 시로 하여, 당신으로 하여 무척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공감'이라는 말입니다. (91쪽)
 
백석의 시 〈팔원(八院)-서행시초(西行詩抄)3〉를 읽고서 백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를 쓴 이 학생의 가슴 속엔 문학 교사 조향미가 칠판에 썼다는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란 말이 언제까지나 오롯이 남아 있으리라.

조향미가 아이들에게 소설 서평 쓰기를 넘어 기어코 소설 창작을 하게 한 이야기는 생략키로 한다. 아이들의 속내 얘기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문학 수업>과 함께 나온 <작전명 '진돗개'- '문학 시간에 쓴 고등학생 단편소설'>을 읽어 보면 될 터이다. 그래도 조향미 선생의 독후 소회는 한 마디쯤 들어 보기로 하자.
 
(동규의) 길지 않은 글을 단숨에 다 읽고는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가슴이 찡했다. 무엇보다 병상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욕실에서 숨죽여 우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녀석이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뎌 왔구나. 그동안 글을 많이 써 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드러냈다. 꽁꽁 묻어둔 이야기를 이렇게 펼쳐 보여서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180쪽)
 
요컨대 평가, 즉 소설 쓰기 수행평가가 교사와 학생 간의 인격적 만남을 가능케 한 것이다. '수능'이든 '학종'이든 오로지 입시전쟁에서의 승리만이 학교 공부의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인격적 만남을 말하는 자체가 거추장스럽거나 한가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 교사의 생각은 다르다. 교사와 학생 간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만 교육은 그 본래 기능과 목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학종'이라고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학종'이냐 '수능'이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음 범하진 말아야
 
학교와 교실 붕괴의 원인은 문제집 수업, 학교 수업과 무관한 '입시'였다. (‥‥‥) 완전히 학교 수업 중심,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과 평가가 되지 않는 한 사교육은 안 없어진다. (‥‥‥)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한 고교에서 내신 부정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한심스런 일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학교의 평가를 불신해서는 안 된다. 단언컨대 교직 34년째인 나는 근무하는 학교에서 시험 부정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구더기는 잡아내야 하지만 장독마저 깨트릴 수는 없다. (236~241쪽)
 
'장독마저 깨트릴 수는 없'는 이유, 그것은 수시모집이 끝난 후 '나의 길'이란 제목으로 쓴 한 3학년생의 글이 웅변해 주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에도 늘 진로에 대해 고민해 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뚜렷한 갈피가 없어 쉽게 정착할 수 없었다. 문학 수업, 여행, 독서, 글쓰기, 창작 활동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무엇보다 절대 늦은 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etter late than never! 사실 지금 조금 아쉽다. '더 일찍 나에 대해 알았더라면‥‥‥'과 같은 후회가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여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기로 했다. 다시 한 번 살아보기로 했다.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 (264쪽) 

우리의 문학 수업 + 작전명 '진돗개' - 전2권

조향미 지음, 양철북(2019)


우리의 문학 수업

조향미 지음, 양철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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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현직 교사이다.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으로서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 필진이기도 하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