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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하려니 시간 없고, 외벌이 하려니 돈 없다

첫 아이, 17개월. 나는 다시 맞벌이 전선으로 나섰다. 아이 돌보느라 1년 넘게 일을 못 한 만큼 돈이 고팠기 때문이다. 엄마의 복직과 동시에 딸은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130 사이즈 조그만 운동화는 어린이집 신발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가장 늦게 떠나야만 했다. 저 작은 신발이 혼자 덩그러니 놓인 장면은 몇 달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돈과 육아, 둘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 했다. 맞벌이를 하자마자 가사 노동과 육아를 돈으로 메꿔야 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직접 밥상을 차리려 하니, 아이는 엄마에게 책 읽어달라고 한다. 엄마 품이 고픈 아이와 놀다 보면 도저히 조리대에 설 시간이 나지 않았다. 결국 반찬 가게에 들락거렸다. 밥도 먹고 아이도 돌보려면 돈 주고 사먹는 일 외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밥뿐인가. 많은 맞벌이 가정에서 집안일의 수고를 덜기 위해, 건조기,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를 들인다. 가격이 비싸도 할 수 없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면 징그러운 가사 노동을 기계에게 부탁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외벌이를 하려니 돈이 부족하고, 맞벌이를 하려니 시간이 없다. 더군다나 맞벌이로 잃은 시간을 결국 소비로 메꾸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돈이 궁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동수당으로 '시간'을 샀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 때와 달리 아동수당이 생겼다. 아이 돌볼 '시간'을 살 수 있는 20만원이었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 때와 달리 아동수당이 생겼다. 아이 돌볼 "시간"을 살 수 있는 20만원이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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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둘째가 태어났다. 기지도 못하는 애를 돌보기 위해 나는 다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줄어든 수입만큼 돈이 귀해졌다. 간당간당한 통장 잔고에 마음 졸이던 차에 희소식을 들었다. 2018년 9월부터 만 6세 미만 아이 한 명 당, 10만 원씩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달 10만 원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오른 물가 때문에 기저귀 몇 팩만 사도 쉽게 사라질 돈이다. 복직하면 받을 수 있는 월 230만 원을 대신할만큼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의 가치로 환산하면 꽤 중요한 돈이다. 나는 두 딸 앞으로 나올 20만 원으로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무급 육아휴직을 감행한 것이다. 남편 혼자 적당히 벌고, 적게 쓰는 대신 어린이집에 아이 신발을 마지막까지 남겨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보통 외벌이 가정이라 하면 남편은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부인은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친정 엄마는 집안일만 할 형편이 못 됐다. 세 아이 키우느라 한 푼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5살 난 딸아이의 키만한 포대 자루에 북어포가 수북히 담겨 현관에 도착했다. 엄마는 집안일을 대충 갈무리하면, TV 앞에 앉아 목장갑을 꼈다. 두꺼운 장갑 없이 다루기 힘든 거친 북어포를 과도와 손으로 찢으셨다. 커다란 포대 한 자루만큼의 북어를 모두 채 치면, 무게에 따라 돈을 받았다. 빚 없이 다섯 식구 건사하려면 부업은 필수였다.

우리 삼남매를 먹여 살리는건 오롯이 부모님의 몫이었다. 당시 한국은 아동 복지를 하기에는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 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덴 온 국가의 손도 필요하다
 
아동수당으로 고급 기저귀를 사지 않는다. 대신 모래놀이 장난감을 챙겨 집 근처 바닷가로 간다. 우린 20만원으로 경험을 산다.
 아동수당으로 고급 기저귀를 사지 않는다. 대신 모래놀이 장난감을 챙겨 집 근처 바닷가로 간다. 우린 20만원으로 경험을 산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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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이 흘러, 난 두 딸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육아를 가족 단위의 과업으로 치부하던 시절로부터 세월이 훌쩍 흘렀다. 한 아이가 원만히 자라기 위해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가 알고 있고, 이를 공동체의 과업으로 여긴다. 공동 보육과 아동 수당으로 온 국민이 이웃의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냈다는 믿음도 생겨났다.

OECD 국가의 89%가 이미 시행하고 있던 '아동수당' 제도에 한국도 발을 들였다. 덕분에 한 달 꼬박꼬박, 두 아이 앞으로 20만 원을 받고 있다. 딱 엄마가 찢었던 북어포만큼의 돈이다. 보편 복지에 대한 목소리와 정책이 어우러져 이제 나는 포대 자루 가득 북어를 받지 않아도 빚 없이 네 식구를 건사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도 30년 전, 어린이집 보육료나 양육 수당, 아동 수당을 받았다면 좀 더 형편이 나았을까. 맞벌이도 전업주부도 아닌 '생계형 부업자'였던 엄마도 어쩌면 우리 삼남매 눈 마주치며 책을 읽어주셨을지도 모른다. 

아동수당과 보육 혜택을 받는 우리 세대는 다르다. 외벌이인 탓에 고급 기저귀를 사진 못 하지만, 2천 원짜리 비누방울을 사서 놀이터로 갈 수 있다. 키즈카페에 갈 수는 없지만, 집 근처 바닷가에 간다. 외식을 자주 할 수 없지만, 고구마를 삶아 공원으로 향한다. 우리 가족은 아동수당 20만 원으로 '시간'과 '경험'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건희 손자'도 돌봄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
 
아동수당으로 외식 몇 끼 더 하지 않는다. 대신 삶은 고구마와 과일, 그리고 빵을 챙겨 공원으로 간다.
 아동수당으로 외식 몇 끼 더 하지 않는다. 대신 삶은 고구마와 과일, 그리고 빵을 챙겨 공원으로 간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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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2018년 9월 1일 아동수당 지급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소득 상위 10%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국가 재정을 조금이라도 긴축하고자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게 주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선별적 복지' 혹은 '불완전 보편 복지'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선별 기준의 모호함, 상위 10% 지급해도 될만큼의 행정처리비용, 복지혜택 축소를 우려한 저소득층의 재산공개 거부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00% 보편 지급을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오점이었다.

결국 2019년 4월 1일부터(2019. 1월분부터 소급 지급)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만 6세 이하 아동(2019. 9. 1.부터는 만 7세 이하) 한 명 당 10만 원을 지급한다. 한국도 보편 복지의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

'이건희 손자'는 부유해서 국가의 돌봄이 배제되어도 괜찮은 재벌가의 손자가 아니다. 온 국민이 함께 돌볼 한 명의 소중한 아이가 되었다. 나의 두 아이도, 등원길에 인사하는 맑은 아이들 모두, 돌봄이 필요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게 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나는 숨만 쉬어도 '맘충'이란 혐오의 대상이 될까봐 마음 졸였고, '노키즈존'이 확대될수록 아이와 함께 다니는 거리에 눈치가 보였다. 이제는 다르다. 아동수당을 논의하던 과정에서 양육의 어려움에 대한 국민 인식의 지평이 한 뼘 넓어짐을 느낀다. 국민들이 세금을 걷어 고루 나눠주는 10만 원을 받으며, 더 이상 혼자 육아하고 있지 않음을 실감한다. 온 국민이 육아 공동체다. 전보다 육아가 덜 외롭다.

혹자는 '겨우 10만 원으로 되겠냐. 생색내기 정책'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겨우' 10만 원이 아니다. 이 돈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샀고, 육아의 외로움까지 덜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는 하위 90% 가정이라 받는 도움도 아니게 되었다. 아동수당을 소득과 상관 없는 양육 주체로서 누린다. 10만 원. 덕분에 예전보다 잠이 더 달다.
 
아동수당 10만원. '단 돈' 10만원이 아니다. 시간을 살 수 있었고, 육아의 외로움을 덜었다.
 아동수당 10만원. "단 돈" 10만원이 아니다. 시간을 살 수 있었고, 육아의 외로움을 덜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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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동수당, #보편지급, #워라밸, #육아,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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