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8년 8월, 대학교에서 수료하고 '취업 준비생'이 된 지 약 8개월이 흘렀다. 지방 대학 출신이고 가진 자격증이라곤 컴퓨터활용능력 2급 단 하나. 취업이 힘들다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왔고 학점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믿을 만한 '스펙'으로 학생회장 및 동아리 회장을 했던 경험과 프리랜서 음악 기획자로 일했던 경력을 내세웠다. 소위 말하는 '무스펙자'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였다.

사실 처음에는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력서의 빈칸은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많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자기소개서로 덮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적어도 대학생이었을 때는 어떤 알바든 무작정 부딪히며, 열정을 앞세워 일하기만 하면 누구든 인정해줬으니까.

'무스펙자'인 나는 어떻게 구직을 했나

먼저, 학업을 병행해오며 힙합 음반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매까지 총괄해본 경험을 내세워 자기소개서를 썼다. 음반 유통사, 아이돌 기획사, 전문 녹음 스튜디오, 실용음악학원 등 음악에 관련된 곳이라면 어떤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입사 지원을 했다. 음악 관련 업계는 '학력'이나 '스펙'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고, 현장에서 일해본 '실무 경험'을 중요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제작에 직접 참여한 앨범들. 포트폴리오로 활용하여 취업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 제작에 직접 참여한 앨범들. 포트폴리오로 활용하여 취업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 이재표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몇 주간 밤을 새워가며 입사 지원 신청서를 씨 뿌리듯 내버리고, 합격 연락을 기대하며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자친구와는 취업 이후를 상상하며 월급을 어떻게 계획적으로 쓰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이력서를 열람한 회사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 기대는 사회의 '냉철한 기준' 앞에서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했다.

나 같은 실무 경험을 가진 사람을 뽑지 않으면 누구를 뽑는 것이냐고 생각해 애꿎은 회사를 무시해버리기 일쑤였고, 어느 날은 이러한 일들을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대학교에서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에게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였기에, 추억의 향수에 젖어 함께 자주 갔던 대학로 막창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맛보는 막창과 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학 생활 추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 병이 서너병까지 늘어나자, '취업 전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술기운을 빌려 모두 말하게 되었다.

"거 취업하려면 앨범 잘 만들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데."
"요즘엔 스펙이라고 내세울 거 없으면 서류 전형에서 다 떨어진다."


일찍 취업한 친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 회산 뭐, 토익이나 자격증, 대외활동 내역 같은 거 하나라도 없으면 면접장 구경도 안 시켜준다, 아나?"

누군가가 뒤통수에 망치로 세게 내려친 것만 같았다. 이어서 귀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더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됐다, 내 막차 시간 됐으니까 일어나자."

몇 분의 정적이 흐른 후, 친구가 일어나며 말했다. 계산할 마음도 없으면서, 괜히 친구가 계산한다는 걸 막는 척 하다 가게를 나왔다. 취업하면 그때는 내가 사리라고 큰소리를 쳤다. 친구는 말없이 웃으며 손 인사로 답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소리 없이 울고 말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머릿속이 어지럽고 감정이 격해진 탓이었다. 그 친구를 욕하며 사회의 냉혹함을 원망했고, 이어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는가?' 하고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설레발로 포장된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더 쏟아져 나왔다. 버스가 끊겨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계속 훌쩍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사회의 냉기를 감당해낼 만큼 마음이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스펙 쌓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의 '스펙 쌓기'는 '스펙 모으기'에 가까웠는데, 정년을 앞둔 부모님은 내가 하루빨리 취업하기를 원했고, 그로 인해 다른 자격증을 따거나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트 부서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매일 밤,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력서의 빈칸을 채워 넣기 시작했고, 어학성적이 없다는 사실을 내 전공에 전념했다는 증거로 포장했다. 봉사활동 내역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억나지 않았으나, 교양수업 과제로 요양병원에서 공연 봉사활동을 했던 기록을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찾아내었다. 정보화 시대에 태어났음에 처음으로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이 정도의 준비를 했으면 이제 취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사/기획 직무를 지망하였으나,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일반 사무직까지도 이력서를 써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설렘 반, 두려움 반 두근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이곳저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면접비가 든 봉투. 회사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봉투. 면접비를 받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 면접비가 든 봉투. 회사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봉투. 면접비를 받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 이재표

관련사진보기


면접 일정이 많아 바빴으나, 정작 최종합격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던 2월 중순, 한 스타트업으로부터 최종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사기였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작은 회사지만 합격하여 신입사원 교육을 듣기 위해 두 시간이나 걸리는 통근 거리를 참아내며 출근했다. 몇 개월의 인턴 기간만 끝내면 바로 근처에서 자취하며 출근하리라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교육 3일 차, 부서를 배정받는 날이었다. 그동안 회사에 관한 소개, 부서별 직무 소개 등을 들으며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키웠다. 제한적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라 소개받았기 때문에, 월급을 받게 되면 노트북을 사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상상했으니 이미 마음가짐이 정규직 사원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회사의 수입을 직접적으로 창출해내고 업무 특성상 금전을 직접 만지는 엘리트(?) 부서였다. 기본급 200만 원에 인센티브를 최소 150%부터 준다는 말에 '아, 나는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착각은 잠시였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회사 대표는 업무가 중요한 만큼 계약 내용이 '복잡'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리고 '복잡한 내용의 계약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전을 직접 투자 하는 직무를 맡게 되면 보증보험이란 것을 들어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1~2등급 정도는 되어야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요."

신용카드는 물론 대출 상환 이력조차 없던 내가 신용등급이 높을 리가 없었다. 보증 보험 가입이 반려된 나를 불러 대표는 말했다.

"제1은 안 될 것 같은데…, 제2 아니면 3금융권에서 대출받고 회사가 이자를 내줄 테니 상환하는 식으로 합시다. 본인 명의로 대출을 받으셔서 회사로 입금해주시면 상환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대출해보신 적 없으시다고요? 대부업체는 보자, ○○○크레디트라는 데가 있는데…."

대출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어 금융권 커뮤니티와 주변 친구들에게 자문했다. 사회 초년생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부터 이러한 방식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취업 미끼 대출 사기'라고 명명된 범죄였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머리는 대출 사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은 자꾸만 이 회사에서 잘 적응한 회사원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심리 상태에 빠져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며칠 간은 '사실 이 회사는 다르지 않을까?' 하고 대출 사기를 당할 뻔한 현실을 부정했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첫 회사를 그만뒀다.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쉽게 열리지 않는 취업 문

생각보다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본인과 같은 일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잡고, '취업 전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면접장에서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을 지닌 척, 열정으로 무장한 당당하고 튼튼한 사람인 척 행세한다.

그 결과로 최종합격을 받아내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면접에서 떨어지게 되고, 최종합격을 했음에도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취업 준비생들은 상처를 감추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은 '이것이 과연 인간이 만든 사회의 모습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기쁘지만 차마 티를 낼 수 없는 상황. 본인은 보통 10곳을 지원하면 2~3곳에서 연락이 온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업에는 최종합격을 해본 적이 없다.
▲ 기쁘지만 차마 티를 낼 수 없는 상황. 본인은 보통 10곳을 지원하면 2~3곳에서 연락이 온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업에는 최종합격을 해본 적이 없다.
ⓒ 이재표

관련사진보기

 
많은 청춘은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미래의 나 자신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 등 현재의 나 자신보다 중요한 것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회사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 보아도, 그 문은 그들을 위해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같은 이유로 괴로워하는 옆 사람과 함께 협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로가 '잠재적 경쟁자'라는 사실 때문에 취업 전선에 참전한 청춘들은 언제나 외로운 싸움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취업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오늘 점심 도서관 앞에서 먹은 컵라면을 잊고 편의점 도시락을 부담 없이 고를 수 있게 되고, 자취방에 세제가 떨어져도 '엄마, 나 용돈 좀 보내줄 수 있어?'라고 문자를 보내지 않아도 되고, 여자친구와의 결혼 이야기에도 이제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인데 말이다. 적어도 인생의 고민거리 하나쯤은 줄어들게 되고, 여유가 좀 더 생기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글이라도 써 본다.

자기소개서도 잘 써지지 않고, 새벽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는 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취업 준비생인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취업 전선은 안녕하신가요?'라고.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구/경북, 청춘에 관해 논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