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스> 영화 포스터

<바이스> 영화 포스터 ⓒ 콘텐츠판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건 뭐죠?"

안보 보좌관 키신저의 집무실 밖에서 서성거리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가 도널드 럼스펠트(스티브 카렐)에게 묻는다. 집무실 안에서는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가 캄보디아 습격을 두고 밀담을 나누고 있고,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캄보디아 국민들의 목숨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에 딕 체니는 미국 대통령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고 말한다.

럼스펠트는 '과연 그럴까?' 하는 눈빛으로 체니를 바라보고, "그래서 우리가 믿는 건 뭐죠?"라는 체니의 물음에 태어나 그렇게 웃긴 질문은 처음이라는 듯 박장대소한다. 그런 거대한 결정에 믿음, 신념 따위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 걸까? 하긴,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수천수만 명의 목숨을 가지고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걸까?

30년이 지나고, 아들 부시 정권의 부통령이 된 딕 체니는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은 8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도자에게 그럴 권한이 있는가? 라는 질문은 그렇게 해도 되는가? 윤리적 책임을 묻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럴 수 있는가? 의 문제였던 것이다. 모자란 명분은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고, 그럴 수 있다면 수천수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닌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콘텐츠판다

 
미국 정치인 딕 체니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 <바이스>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 중 하나였던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백악관 인턴으로 정치계에 입문해 럼스펠트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포드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비서실 실장을 지내고 와이오밍 주 하원의원에 당선, 아버지 부시 정권 때는 국방부 장관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이후 공화당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던 그는 가족들이 받을 공격을 우려해 대선을 포기하고 정치계를 떠나 민간 군사기업 핼리버튼의 CEO로 일을 하며 가족들과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그를 정치계로 다시 부른 것은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이던 텍사스 주지사, 아들 부시였다. 아들 부시는 체니에게 자신의 러닝메이트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말이 좋아 부통령이지 실질적 권한에 있어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부통령직을 체니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미국 역사상 본 적 없는 가장 막강한 부통령으로서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행사한다.

영화는 화자의 설명에 따라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며 한때 망나니와 다름없었던 청년이 미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권력의 충실한 일꾼이자 자신의 야심을 숨길 줄 알았던, 정치 메커니즘에 최적화된, 딕 체니라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무자비함과 야비함을 철저하게 조롱하는 영화는 딕 체니에 대한 보고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그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서로의 영향력 아래 얽히고설킨 관계들(언론, 법), 그리고 그 관계들이 만들어낸 결과로서의 미국 사회를 균형 있게 담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콘텐츠판다

 
코미디로 잔뼈가 굵은 아담 맥케이 감독을 비롯해 <빅쇼트>의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다시 뭉친 영화는 딕 체니가 누구인지, 미국 정치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하여도 영화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을 만큼 (꽤 긴 러닝타임(132분)에도 불구하고) 영화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다(감독의 전작 <빅쇼트>(2015) 역시 경제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배우들의 분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 한데, 특히 딕 체니를 연기하기 위해 살을 찌운 크리스찬 베일(그의 체중 변화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의 분장과 연기가 인상적이다.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딕 체니 개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와 같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하나의 똑같은 사안을 두고 이름만 바꾸어 교묘하게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 강조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못 보게 만드는 지도자와 그 조력자들(언론과 법조인)을 항상 경계할 것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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