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우상> <악질경찰> 등의 한국 영화와 비교해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미 2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손익분기점도 넘었다. 마블 스튜디오의 <캡틴 마블>의 등장에도 제 몫을 해낸 유일한 한국 상업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향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 영화 평점 사이트 키노라이츠에서 46%의 지수를 기록 중이다. 흥행과 영화의 평이 갈리는 이 상황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나, 적어도 돈 내고 볼만한 매력이 하나 이상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돈>의 매력은 무엇일까.
 
 ▲영화 <돈>의 스틸사진

▲영화 <돈>의 스틸사진 ⓒ 쇼박스

 
영화의 주인공 조일현(류준열 분)은 선하거나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매력이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질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는 좋지 못한 학력으로 서울에 입성한 외지인이고, 직장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아웃사이더다. 조일현은 어디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사회 초년생의 얼굴로 등장한다. 그는 N포 세대로 분류되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대변한다. 지난해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에서 류준열이 연기했던, 회사에서 뛰쳐나온 '재하'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조일현을 통해 비정상적인 사회 경제 구조를 본다. 돈이 돈을 벌고, 돈 없는 자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조일현은 이 시스템에 부딪히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거쳐 사회 상류층의 문턱까지 입성한다. 이 과정에서 순수했던 성격이 변하는 등 많은 것이 달라지지만, 벌고 싶다는 욕망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돈>은 비록 그것이 추악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이를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성격이 뚜렷한 영화다. 이 강렬한 동기가 이야기를 움직이고, 여기서 오는 스릴과 재미가 있다.
 
 ▲영화 <돈>의 스틸사진

▲영화 <돈>의 스틸사진 ⓒ 쇼박스

 
번호표(유지태 분)의 역할도 중요하다. 장르성 짙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안타고니스트는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어 준다. 이 역할은 주인공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영화를 장악하고, 주인공은 안타고니스트를 극복하며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돈>의 번호표는 냉철하고 침착하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잔혹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도 하다. 영화 내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우아함을 지켰던 안타고니스트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캐릭터다. <돈>은 이 고상한 인물을 통해 경제 시스템의 최상단에 있는 괴물 같은 이들의 추악함과 기괴함을 묘사했다. 그리고 번호표 덕에 조일현은 성장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분명 <돈>은 중반부 이후 허술하고 방황하는 서사, 그리고 작위적인 반전 등의 결점이 보였던 아쉬운 작품이다. 하지만 대중이 에게 어필할 요소 하나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 국내 영화에서 잘 볼 수 없던 증권가라는 공간에서, 색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보여준 치열함은 색다른 느낌의 즐거움을 준다. 최근 신파와 정치 범죄 등의 요소를 반복하며 관객을 질리게 하고, 실패를 거듭했던 한국 영화계에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보여준 영화다. 올해 초,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클리셰에서 벗어난 한국 영화가 한 편씩 등장하고 있다. 정체기가 끝나고 영화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분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브런치, 네이버 포스트, 그리고 키노라이츠 매거진 등에 함께 게재되는 글입니다.
영화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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