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에 6월 개봉 예정인 <엑스맨: 다크피닉스>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이 작품에의 완성도를 예고편만으로 알 수 없지만 제작단계부터 아쉬움을 자아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엑스맨 시리즈를 상징하는 인물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울버린이자 로건이었던 휴 잭맨이다.

그 아쉬움을 달랠 생각으로 오늘의 [이야기 하나, 영화 둘]에선 바로 휴 잭맨이 17년간 연기한 울버린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두편의 영화를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단 하나의 얼굴을 꼽으라면 당연히 휴 잭맨의 울버린이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단 하나의 얼굴을 꼽으라면 당연히 휴 잭맨의 울버린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많이들 울버린을 만든 사람으로 지난해 작고한 엑스맨의 아버지 '스탠 리'로 알기 쉬운데, 사실 다른 작가들이 창조한 캐릭터다.

당시 마블의 편집장 로이 토마스가 캐나다의 동물 울버린에서 착안한 캐릭터 창조를 스토리 작가 렌 웨인에게 주문했으며, 이를 렌 웨인이 캐릭터에 대한 세부 설정을 만들어내고 존 로미타 시니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다.

렌 웨인이 창조한 울버린의 주요 캐릭터 설정은 자가치유능력과 초감각 그리고 클루를 지닌 돌연변이다. 재미난 사실은 엑스맨 멤버로 만들어진 게 아니였다. 울버린은 다름 아닌 헐크의 상대역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1974년 10월 인크레더블 180회에 첫 등장 했으며 181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울버린이 엑스맨에 등장한 건 그 다음 해인 1975년이다. 엑스맨의 국제화를 목표로 캐나다인 울버린을 합류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엑스맨에 굴러들어 온 울버린은 차츰 엑스맨의 주축 멤버가 되었고 심지어 어벤져스에도 포함되기도 했다. 

안티 히어로의 기질이 다분한 울버린은 2000년 브라이언 싱어에 의해 영화화된 <엑스맨>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지금은 휴 잭맨이 아닌 울버린을 생각하기 어렵지만, 당시 영화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에게 호주의 무명 배우 휴 잭맨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싱어가 원했던 사람은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우. 하지만 러셀 크로우는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고, 브라이언 싱어는 다른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울버린 역 물망에 오른 배우로는 멜 깁슨, 아론 에크하르트, 장 클로드 반담, 비고 모텐슨, 에드워드 노턴, 밥 호스킨스, 키아누 리브스 등이다. 영국배우 더그레이스 스콧이 최종 낙점됐지만, <미션 임파서블 2(2000년)>와 촬영 일정이 겹친 데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결국 출연이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브라이언 싱어는 주인공없이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 때 러셀 크로우가 자신의 친구 휴 잭맨을 울버린 역에 제안했고, 브라이언 싱어가 그를 캐스팅하며 휴잭맨은 극적으로 울버린이 되었다.

휴 잭맨의 <엑스맨> 합류한 시기는 촬영이 시작된지 3주가 지난 시점 부터였다. 그렇게 캐스팅 된 휴잭맨은 울버린 특유의 야성적인 매력과 그가 지닌 인간적인 고뇌를 잘 표현하며 17년간 대체불가결한 인물을 완성하는데 성공한다. 
 
울버린과 휴 잭맨에대한 이야기를 하며 빼 놓을 수 없는게 있다. 바로 기네스북 등재기록이다. 지난달 휴잭 맨과 패트릭 스튜어트는 함께 기네스 북에 등재 되었다. 바로 마블 슈퍼히어로 연기를 제일 오래한 사람으로 말이다. 그들의 기네스북 등재 기록은 16년 228일이다.

휴 잭맨은 카메오 출연을 포함, <엑스맨> 시리즈에 총 9번 출연했으며 패트릭 스튜어트는 찰스역을 맡아 총 7차례 출연했다.

울버린과 휴잭맨의 이야기는 이만하고 두편의 영화를 다뤄보고자 한다. 두개의 작품은 제임스 골드맨이 모두 연출한 <더 울버린>과 <로건>이다. <엑스맨 탄생:울버린>란 작품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엑스맨 시리즈와 떨어져 좀 더 울버린(로건)에게 집중한 두 영화를 선정했다.
  
 더 울버린 포스터

더 울버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우선 2013년에 먼저 개봉했던 <더 울버린>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이 영화는 <엑스맨3> 이후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사랑했던 여인 '진'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캐나다의 한 산속에서 은신해 살고 있던 로건.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일본 나가사키 원폭 당시 자신을 구해준 보답을 하고 싶다며 일본 야시다 기업의 회장 야시다가 수족 유키오(후쿠시마 리라)를 보내온다. 유키오를 따라 일본에 가게 된 울버린은 죽음을 앞둔 '야시다'에게서 불멸의 삶이 아닌 유한한 삶을 갖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울버린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다음날 야시다는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장에선 손녀 마리코를 납치하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울버린은 마리코를 도와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더 울버린>은 이름처럼 '울버린'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로건>과 비슷하면서 다른 색깔을 가진 작품이다. 평범한 삶에 적응할 줄 모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무뚝뚝한 울버린(로건)의 성격은 왜 그렇게 형성되었을까?

영화는 그 이유가 영원불멸의 삶 때문이라고 한다. 울버린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던 것이다. 많은 슈퍼 히어로 무비들이 자기 정체성과 그들의 고독에 관해 이야기를 다루곤 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이나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이 그러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엑스맨> 시리즈의 메인 테마이기도 해서 <더 울버린>이 결코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울버린이 가지고 있는 '늙지 않는 능력'이 주는 고독에 대해 고찰한 건 처음이다.

영화는 '영생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야시다를 통해 영생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영생이 자신에게 주고 있는 고독에 신물이 나 있는 울버린. 하지만 유한한 삶을 주겠다는 야시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만큼 젊음을 유지한 채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고찰 외에 대의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 '진'을 죽여야만 했던 울버린의 내적 고통을 담고 있으며, 일본 여인 마리코와의 새로운 사랑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더 울버린>은 동양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며 러브모텔에서 파친코, 일본식 가옥, 야쿠자, 닌자 그리고 사무라이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통부터 현대문화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활용한다. 돌연변이는 울버린을 제외하면 '바이퍼' 단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관객이 '울버린'에게 더 집중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영화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와 거리를 두며 다양한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뻔하고 빈약한 러브스토리와 개연성을 상실한 전개가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직계 3대가 서로 죽이려 드는 야시다 일가의 막장 스토리는 한국의 아침 드라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막장 마니아가 아닌 이상 심각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지나치게 울버린에 집중한 탓에 마리코를 제외하면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매력을 발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소모되는 점이 아쉽다. 안쓰러운 각본의 위안거리는 역시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호쾌한 액션이다.
아무래도 일본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특수효과에 의존했던 초능력 대결보단 무협 영화 같은 액션 시퀀스가 많이 등장한다는 게 특징이다.

이 영화의 액션 하이라이트는 초고속 열차(신칸센) 위에서 펼쳐지는 야쿠자와의 대결 신인데, 기차가 가진 속도감과 스릴을 활용하며 위트 있게 풀어가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더 울버린>은 시나리오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울버린이란 캐릭터가 가진 어두운 측면과 액션 히어로의 묘미를 살렸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와 별개로 독립적인 시리즈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던 작품이다. 블루레이를 통해 10분이 추가된 확장판을 감상할 수 있으며, 울버린 특유의 노란색 유니폼을 볼 수 있다.
 
 로건 포스터

로건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두 번째 작품은 휴 잭맨이 마지막으로 울버린을 연기한 <로건>(2017년작)이다. 이 영화에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배우 중, 휴 잭맨과 패트릭 스튜어트만 출연했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 등장했던 칼리반이란 캐릭터가 나오긴 하지만 배우도 다르며 연관성이 적다.

감독은 전작 <더 울버린>을 연출하여 혹평 세례를 받았던 제임스 맨골드가 다시 맡았다. 많은 이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더 울버린>의 실패를 만회했다.

<로건>은 마크 밀러와 스티브 맥니븐의 <울버린: 올드 맨 로건(Wolverine: Old Man Logan)>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출연작이다. 제작비는 총 1억2700만 달러가 투여되었는데, 엑스맨 시리즈 사상 최초로 R등급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영화는 2029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느덧 노화가 진행된 로건은 자기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며 늙어가고 있는 찰스의 곁을 쓸쓸히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사이보그 용병집단에 쫓기는 11살의 돌연변이 소녀 '로라'가 나타난다. 멸종된 줄 만 알았던 로라의 등장, 두사람은 그녀의 안식처가 되어 줄 캐나다로 향하면서 그렇게 영화는 세 사람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로건>은 낯설다. 늙어버린 로건이 낯설고, 절제된 CG와 핏빛 가득한 극의 비주얼과 분위기도 낯설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6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로건>의 세계관은 사실 전작과 전혀 무관하다. 스토리나 분위기 측면에서 기존 <엑스맨> 시리즈와 상당한 거리를 뒀다. 2009년 작 <왓치맨> 이후 처음 등장한 누아르 성향이 짙은 히어로물이다. 25년간 새로운 돌연변이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 2029년. 이 시대는 돌연변이에게 디스토피아처럼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엔 순수 돌연변이가 단 3명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버려진 제련소에서 살아가는 쓸쓸한 모습이 꼭 멸종위기에 처한 백수의 왕 호랑이 같다. 동료들이 모두 죽고 곁에는 찰스만 남은 로건. 그 역시 찰스처럼 병을 앓고 있다. 수많은 살생을 저질렀던 지난 과거로부터도 고통받고 있다. 뒤늦게 나타난 유전적 딸 로라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로건의 핏빛 가득한 사투는 누아르적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다.

상징적 요소를 잘 살린 시나리오와 연출이 인상적이다. 로건을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 건 웨폰X 프로젝트로 탄생한 X-24인데, X-24은 로건의 유전자를 통해 만든 살인 기계로 분노와 살의에 차 있었던 로건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신보다 젊고 강력한 X-24와의 처절한 전투는 살인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와의 싸움을 상징하고 있다.

슈퍼 히어로물에 느와르의 색깔을 입힌것도 놀라운데,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 가족은 아니지만 찰스는 로건의 아버지이며, 로라는 딸인 셈니다. 이 세사람이 어느 농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은 엑스맨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따스한 장면이기도 하다.

치매에 걸린 찰스를 곁에서 보살피는 로건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들의 모습이고, 로라는 스페인어로 로건은 영어로 말다툼하는 로건과 로라의 모습은 실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부녀지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것을 선명하게 해준다. 

영화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메시지와 이야기의 감성적인 질감을 잘 이끌어낸 연출, 그리고 우아한 선율로 진혼곡을 만들어내고 있는 OST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다. 

휴 잭맨과 마찬가지로 프로페서 X를 17년간 연기한 패트릭 스튜어트도 죽음을 앞둔 90세 노인 찰스 역을 맡아 연륜에 걸맞은 연기를 선보이며 퇴장한다.

17년간 <엑스맨> 시리즈를 함께한 두사람 틈바구니에서 존재감 보여준 다프네 킨은 놀라움 그 자체다. 촬영 당시 11세였던 소녀 다프네 킨은 어린 나이에도 놀라운 연기를 선사하며 차세대 울버린으로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다프네 킨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펼치는 한편 안정적 감정연기까지 소화하며 상처 입은 어린 맹수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영화의 방점을 찍은 건 당연히 주연배우 휴 잭맨의 연기이다. 우수에 찬 휴 잭맨의 연기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진, 은퇴한 히어로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뒤늦게 아빠의 감정을 알게 되면서, 불안함과 보호 본능에 휩싸이는 인간적인 모습의 울버린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와 상반되게, 휴 잭맨은 인간성이 말살된 채 살의만을 품고 있는 'X-24'까지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휴 잭맨이 남긴 "그래,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중의적인 마지막 대사. 이는 <엑스맨>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사이기도 했다.

그렇게 제임스 맨 골드 감독과 휴 잭맨은 <로건>을 통해 울버린에 대한 가장 처연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작별인사를 건넨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로건 울버린 휴잭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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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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