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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동베를린으로 이사 온 지 8개월 만에 지역구인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 녹색당 모임을 나갔다. 두 달에 한 번 신입 당원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날은 운영진 3명과 새로 온 사람들 5명이 참여했다. 새로 온 사람 중 나를 제외하고는 아직 당원이 아니고, 녹색당 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모두가 짧게 자기소개를 한 뒤 본인을 '리히텐베르크 녹색당의 대표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안드레아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독일 녹색당과 베를린 녹색당, 그리고 리히텐베르크 녹색당을 소개했다.

당 대표는 2018년 초 전당대회에서 뽑힌 안나레나 바에르보크(Annalena Baerbock)와 로버트 하벡(Robert Habeck)이며, 하벡의 경우 슐레비히 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주의 주지사였는데, 당 대표가 되기 위해 주지사직을 사퇴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연방의회를 대표하는 원내대표도 따로 있다고 했다. 독일은 대표적인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연방별로 녹색당이 존재한다. 연방을 대표하는 큰 조직인 독일 녹색당과 각 연방별로 16개의 녹색당이 있고, 연방 내 도시별로 그리고 그 도시를 구성하는 구별로 풀뿌리 조직이 있다고 설명했다. 

녹색당 당원이 됐다, 독일에서
 
독일 녹색당의 당대표, 아날레나와 로버트
 독일 녹색당의 당대표, 아날레나와 로버트
ⓒ d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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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와서 주소 등록을 하고, 통장 계좌를 개설하고, 그다음 독일 녹색당에 가입했다. 외국인도 당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같은 국가 내 선거는 할 수 없지만 당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지역 모임 대표, 여러 AG(Arbeitsgruppe 의제별 모임) 대표, 선거 전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 명부에 오를 후보들을 선출한다.

안드레아는 리히텐베르크 녹색당 모임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의제별로 AG 환경(Umwelt), AG 열린 사회(Offene Gesellschaft), AG 이동과 도시개발(Mobilität und Stadtentwicklung), AG 에너지, 기후, 동물보호(Energie, Klima und Tierschutz)가 있고, 선거철이 되면 AG 선거운동(Wahlkampf)을 중심으로 선거캠페인을 활발하게 진행한다고 했다. 올해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준비가 한창이며 당장 이번 주말에도 선거캠페인을 위한 모임이 있다고, 당원이 아니라도 함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니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번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리히텐베르크 녹색당 소속의 한나 노이만(Hannah Neumann)이 녹색당 정당리스트에서 5번을 획득했다. 현재 EU의회 의원 751명 중 52명이 각 유럽 국가들의 녹색당 출신이며, 그중 독일 녹색당 의원은 11명으로 한나의 당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34살의 한나는 리히텐베르크 출신으로 이번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정당명부 5번을 받았다.
 34살의 한나는 리히텐베르크 출신으로 이번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정당명부 5번을 받았다.
ⓒ Die Grune Licht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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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라이프치히(Lipzlig)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한나는 EU의회 선거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가 사는 리히텐베르크에서 녹색당은 지난 2016년 베를린 선거에서 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AfD(독일을 위한 대안)는 20%였다. EU의회 선거를 준비하며 우리 지역에서 선거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희망적인 것은 2017년 연방 선거 때 리히텐베르크에서 AfD 지지율이 3%P 떨어졌고, 우리는 가장 많이 득표율이 상승한 정당이었다"고 강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참고 : 한나의 전당대회 연설 동영상). 
 
2016년 베를린 선거에서 우리 지역구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 AfD가 20% 가까이 득표했다.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한 정당은 좌파당이다.
 2016년 베를린 선거에서 우리 지역구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 AfD가 20% 가까이 득표했다.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한 정당은 좌파당이다.
ⓒ 독일연방선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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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녹색당의 간략한 역사와 현재 활동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으니, 1980년 창당 이래 40년 간 독일 녹색당이 전 독일 구석구석에 뿌리 박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아래에서 1983년 처음으로 5% 진입 장벽을 넘고 연방의회로 진출한 녹색당은 현재 독일에서 6번째 정당이다. 지역구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얻는 기민당(지역구 299석 중 185석)에 비해 녹색당은 대부분의 의석이 비례대표로 채워진다(총 67명의 의원 중 66명이 비례대표 의원). 2017년 연방 선거 결과 총 7개의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갔다.

제1당이 소수정당 무시할 수 없는 이유
 
2017년 독일연방선거 결과
 2017년 독일연방선거 결과
ⓒ 손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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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D를 제외한 각 정당은 기본으로 수십 년의 정당사를 갖고 있다. 기민련(CDU, 1945년 창당), 사민당(SPD 1890년), 자민당(FDP 1948년), 좌파당(Die LINKE 2007년, 1990년 동독 지역에서 창당한 독일사회당(PDS)의 후신), 바이에른 지역당이자 기민련의 자매정당인 기사련(CSU)도 1945년 창당해 70년 넘게 건재한 정당이다. 구구절절하게 독일 정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정당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방선거 결과(2017)를 보면, 30% 이상 의석률을 기록한 정당은 없으며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제1, 2당의 의석률도 50%를 넘지 못한다. 한국처럼 다수당이 의회를 장악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선거 결과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에서 총리가 배출되고, 이 정당은 50%를 넘길 수 있는 다른 정당과 연합(Koalition)하여 연립정부(Koalitionsregierung)를 구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민당이나 녹색당, 좌파당도 무시할 수 없는 연립 대상인 것이다.

그동안 기민련과 기사련의 전통적인 연립 파트너는 자민당이었고, 사민당의 파트너는 녹색당이었다.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기민련의 보수정권을 끝내고 1998년 집권했을 때 녹색당과 함께 '적-녹 연립정부'를 두 번이나 구성했다.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은 15개의 정부 부처의 장관직을 연립에 참여한 정당들끼리 나눠 갖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의원이 바른미래당에 대해 "미니 정당이고 영향력도 없는 정당"이라고 한 발언은 비난을 받기 충분했다.(관련 기사 : 소수정당 의원이 직접 말하는 '홍익표 유감'). 거대 정당으로, 의회의 반을 장악하고 있는 괴물정당은 바른미래당을 어떻게 본 걸까?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 기준, 20명이 넘는 정당을 그렇게 생각한다니,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거대 정당에게는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고, 자기 당 출신의 대통령이 뽑히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국회에서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쉬워지고 정부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은 (우연하게도 독일과 동일하게) 7개 정당이지만, 제1당과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전체 의회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 중 5개 정당은 단체교섭을 꾸릴 수도 없어 원내 주요 논의에서 배제되고, 국가보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관련 기사 : '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국회 비교섭단체가 뭐길래).

아무리 노력해도 의석하나 얻지 못하고 선거에서 지게 되면, 정당은 동력을 잃는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 대한민국의 소수 정당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기성 정당과는 새로운 정당이 성장할 수 없는 구조이다.

(*총 지역구 253석, 비례의석 47석으로 총 300석이 의원정수나 고 노회찬 의원 사망, 이군현 의원 지역구의원직 상실로 현재 총 298명임.
*참고: 국회의원 현황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대한민국 국회구성
 대한민국 국회구성
ⓒ 손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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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뿌리를 찾기도 어렵다. 2014년 창당한 더불어민주당은 도대체 어느 선에서 기원을 찾아야 할지도 헷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이 87년 김영삼, 김대중의 통일민주당의 뿌리를 가지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를 한다면, '기득권을 유지하고, 미니 정당들의 씨를 밟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당장 개혁해야 한다. 또 "영향력 없는 미니 정당"를 무시하고 배제하지 않는, '더불어 정치'를 해야 한다.

3월 31일 선거포스터 설치 준비, 4월 1일 당원모임, 4월 7일 선거캠페인 준비 등 빽빡한 일정을 전달받고 돌아오는 길에 아득하지만 기분좋은 꿈을 꿨다. 서울 녹색당, 제주 녹색당, 광주 녹색당, 대구 녹색당 등 지역별로 녹색당 조직이 세워지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녹색당 모임에 나가 우리 동네의 문제에 관해 토론하며 해결점을 찾고, 다양한 의제 모임을 나누며 함께 선거 운동할 수 있는 그런 날을 말이다. 

태그:#독일 녹색당, #소수정당, #연동형비례대표제, #연립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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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번역, 리서치 일을 하고 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에 와 총선 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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