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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조사·평가 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금강과 영산강의 보 처리 방안'을 계기로 긴급 기획 '삽질의 종말'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제작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개봉합니다. 오는 4월경 단행본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오마이북)이 출간됩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으로 가입해서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일본 환경운동가 츠르쇼코 씨.
 일본 환경운동가 츠르쇼코 씨.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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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세댐은 일본 구마모토현의 공공사업부가 수력 발전 목적으로 구마강에 건설했어요. 댐이 만들어진 뒤 심각한 수해로 집이 침수됐습니다. 어민 생계수단이었던 은어 조업이 쇠퇴했어요. 댐을 짓기 전 강물은 맑았죠. 주민들이 물을 길어 마실 정도였고 밥을 짓는 데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댐이 만들어진 뒤 강에 녹조, 해안에는 적조 현상이 빈번했습니다."

낯익은 얼굴, 목소리였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 자연협회 츠루 쇼코(つる詳子) 회장. 2010년 12월, 당시 철거를 앞둔 일본 아라세댐과 백지화된 가와베가와댐 건설 예정지를 취재하면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일본은 왜 댐을 부수나'라는 기획 기사를 9번에 걸쳐 연재했다. 댐을 철거한 일본의 선택이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7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전문위원회 주최로 열린 '우리 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발제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최근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제안한 일부 보 해체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기에 이날 아라세댐과 가와베가와댐에 대한 그의 발제 내용과 8년 전 <오마이뉴스> 취재팀 보도 내용을 재구성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최근 자유한국당은 "문명 파괴", "과거 정권 지우기"라며 정치 쟁점화하고 있지만, 댐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명'은 아니었다. 강은 죽었고 지역경제는 파탄 났으며 더 큰 홍수를 불러온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결국 일본은 26억 엔을 들여 만든 아라세댐 철거 프로젝트에 총 84억 엔의 세금을 썼다. 댐 철거 비용만도 14억 엔이었다.

[아라세댐 철거 전] "홍수 막는 게 아니라 괴물 덩어리"
 
 철거 이전의 아라세댐 모습.
 철거 이전의 아라세댐 모습.
ⓒ 츠루 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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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사카모토촌에 있었던 아라세댐은 구마강수계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1954년 3월 준공했다. 중력식 콘크리트댐으로 폭 210m, 높이 25m, 총저수량 1013만 7000t, 수력 발전용량은 1만8200㎾였다.

당시 일본 지방정부는 댐을 건설하면 홍수가 없어지고, 관광객이 증가하며, 어업이 번성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또 인근 바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되레 발전으로 얻는 전기는 무료 공급한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할 때 내세웠던 장밋빛 청사진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날 심포지엄에서 츠르쇼코씨는 댐이 건설된 뒤 구마강 하구의 경제가 쇠락한 상황을 설명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은어 조업이었다. 구마강은 30cm 대물 은어가 잡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구마강 은어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됐고, 지역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8년 전, 그는 취재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예전에 작은 은어 떼가 구마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면 강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죠. 장관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연안에서 100㎞ 상류까지 이어졌어요. 막대기로 수면을 한번 때리면 5∼6마리가 잡힐 정도였고, 밤에는 잠자는 은어를 손으로 잡을 만큼 많았어요."

아라세댐이 건설된 뒤 이런 장관과 함께 어민들의 주 수입원도 사라졌다. 츠르쇼코 씨는 "댐 공사 이전 5000명(조합원 2000명)에 달하던 은어잡이 수는 댐 건설 이후 300명으로 급감했다"면서 "은어잡이를 포함한 전업 어부는 고작 3명뿐이고 댐 건설 직전 2만여 명에 달하던 주민도 하나둘 마을을 떠나 현재 5000여 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악취를 풍기는 죽은 강... 홍수 피해 키웠다
 
 댐 기둥 3개가 철거된 아라세댐. 일본 최초의 댐 철거 현장으로 2017년 완전 철거 예정이다.
 댐 기둥 3개가 철거된 아라세댐. 일본 최초의 댐 철거 현장으로 2017년 완전 철거 예정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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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세댐은 지역경제뿐만 아니라 강의 환경도 죽였고 홍수 피해를 불러왔다. 2011년 12월 아라세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만난 혼다(本田, 당시 아라세댐 철거를 요구하는 모임 대표) 씨는 당시 이렇게 증언했다.

"댐이 만들어진 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강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악취를 풍기는 죽은 강이 돼 버렸어요. 저 댐은 홍수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댐이 아니라 주민들을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은 괴물 덩어리입니다."

당시 만났던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의 후쿠시마 가즈토시 시장은 아라세댐 철거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시장에 당선된 인물이었다. 그에게 아라세댐을 통한 치수 정책은 실효를 거뒀는지에 대해 물었다.

"댐 때문에 홍수 피해가 되레 커졌어요. 댐에 침전된 퇴적물들이 홍수 때만 되면 다 흘러내려서 지역주민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또 비가 오면 댐 수문을 컨트롤해야 하는 데 집중호우 때에는 그게 제대로 안 됐습니다. 댐 하류 사람들은 진흙탕을 뒤집어썼고, 댐 상류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침수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에게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 때 내건 '녹색 뉴딜' 구호를 소개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녹색 뉴딜? 40~50년 전, 일본 정치인들도 똑같이 주장했어요. 댐을 만들면 토목건설을 통한 일시적인 경제 부양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고용 효과가 없습니다. 관광 사업이 번창할 수 있다고? 누가 썩은 물을 보러 오나요? 효과는 '제로'입니다. 아니 마이너스죠. 댐을 만들면 그 도시는 죽습니다."

[아라세댐 철거 후] "강이 살면서 경제도 살아났다"
 
 일본 아라세 댐 철거 6단계 과정을 설명하는 츠르쇼코 씨의 프리젠테이션
 일본 아라세 댐 철거 6단계 과정을 설명하는 츠르쇼코씨의 프리젠테이션
ⓒ 츠르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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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세댐 철거는 2012년 4월부터 진행돼 2018년 3월에 마무리됐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츠르쇼코씨를 만났을 때는 철거 작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는 이날 국제 심포지엄에서 취재팀과 만나 아라세댐 철거 과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아라세댐의 '물 사용 권리'(수리권)가 만료되면서 2년 동안 철거 여부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댐 저수지와 퇴적물의 상태를 분석하고 철거에 착수했습니다. 댐을 철거했을 때의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6년간 6단계의 계획을 수립했어요.

1단계에서는 수위 낮추려고 일부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4개의 수문과 기둥, 다리를 제거했고, 3단계는 왼쪽의 3개 수문과 수로를 제거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퇴적물들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아라세 댐 철거 전과 후의 모습 비교하는 츠르쇼코 씨의 프리젠테이션
 아라세 댐 철거 전과 후의 모습 비교하는 츠르쇼코 씨의 프리젠테이션
ⓒ 츠르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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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르쇼코씨는 "철거 작업에 착수한 뒤부터 강의 모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있다.

"강을 떠났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와 자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래프팅 등 레저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구마강 하류 지역의 거주민 숫자는 아직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전통 여관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죠. 파래 양식업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바다의 모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댐을 건설한 뒤에 사라졌던 이 지역 특산 조개도 30년 만에 돌아왔어요. 장어나 은어과 물고기들도 늘어났고, 야스시로 어시장에서 팔리는 제철 장어의 30%가 현지에서 잡힙니다."


츠르쇼코씨는 "아라세댐을 철거한 곳으로부터 상류 10km 지점에 있는 세토이시댐을 제거해야만 구마강의 완전한 복원이 가능하다"면서 "강이 다음 세대에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습을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댐 수문 일부가 철거된 이후 아라세댐 상류모습, 지난 8월 21일 (지난 1일자 熊本日日新聞에 실린 댐 철거공사 1년 보도사진)
 댐 수문 일부가 철거된 이후 아라세댐 상류모습, 지난 2013년 8월 21일 (지난 1일자 熊本日日新聞에 실린 댐 철거공사 1년 보도사진)
ⓒ 熊本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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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베가와댐] 댐 건설 공정률 90%, 하지만 포기했다

"아라세댐으로 야츠시로 해에 적조 현상이 잦았습니다. 어업에 미치는 피해액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라세댐 보다 더 큰 댐이 있어야 적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와베가와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주민들은 화가 났습니다."

츠르쇼코씨가 이날 국제 심포지엄에서 잠깐 언급한 가와베가와댐 건설 중단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댐을 반대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았다"면서 "2009년 9월 11일에 현 주지사가 댐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고 말했다.

이날 츠르쇼코씨는 가와베가와댐 건설 취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8년 전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츠르쇼코씨 등을 만나 댐 건설 중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취재한 바 있다.

가와베가와댐 건설 발표가 난 것은 1966년이었다. 일본 규슈섬 가와베가와강 상류에 높이 107.5m, 총저수량 1억3300m³ 규모의 댐을 350억 엔을 들여 건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에 건설비를 재추정한 결과 연관 사업비를 합하면 4100억 엔으로 불어났다.

40여 년 동안 수몰 예정지인 이츠키 마을(五木村)과 사가라 마을(相良村) 주민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가구당 1억3000만 엔으로 일반적인 보상비의 200배에 달했다. 댐 수몰지 곳곳에 축대가 세워졌고 깎아지른 절벽에 대체 도로가 건설됐다. 학교와 보건소 등 제반 시설도 들어섰다. 댐 건설 공정률은 90%에 달했다. 댐 구조물을 세우는 일만 남았다.
 
 계획에서 부터 40여년 만에 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조감도 모습.
 계획에서 부터 40여년 만에 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조감도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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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설 백지화 선언한 까닭

하지만 일본 건설교통성은 2009년 규수 지역 최대 규모인 이 댐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최초 대형 댐 건설 중단 선언이었다. 2011년 12월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댐 건설 철회를 요구했던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人吉) 시장을 만나 취지를 물었다.

"구마강 상류에 만든 이치후샤댐은 건설된 지 15년 정도 지나니 수면에 적조가 발생했고 비소보다 15배나 넘는 독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이 정체되니 호수 밑에 더러운 펄이 생겼고, 댐 바로 밑은 죽음의 하천이 됐어요. 당장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10년 정도가 지나면 강은 반드시 죽어갑니다."

그가 댐 건설 철회를 요청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댐 건설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그에게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냐'고 물었다.

"물론 깨끗한 도로가 건설됐습니다. 이츠키촌으로 가는 데 1시간 걸렸다면 절반이 단축됐죠. 공공사업으로 거액의 돈이 투자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환영해야 하겠지만 자연환경을 살리고 수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댐 건설을 멈추는 것이 더 큰 투자입니다."

"가와베가와 강은 보배"
 
 일본 최초로 댐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하류 모습
 일본 최초로 댐건설이 중단된 가와베가와댐 하류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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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당시 가와베가와댐 건설 백지화를 선언한 일본 구마모토(態本)현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 지사도 인터뷰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댐 건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수와 치수용 댐을 만들 수도 있죠. 하지만 가와베가와 강은 보배입니다. 일본 최고의 청류는 이 지역의 가치입니다.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강을 지키는 것도 지방정치가 해야 할 몫입니다. 이럴 때 주민의 총 행복량은 증가됩니다."

그는 또 "과거 주민들은 댐 건설을 찬성했을지 몰라도 40년이 지난 지금의 민의는 댐 건설 포기에 있다"면서 "많은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투명성과 공개성의 원칙을 지켰고 정신적 자유(정치적으로 눈치 보지 않는)를 가지고 리더로서 합리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주민들과의 대화 자리는 2001년부터 9차례에 걸쳐 진행된 주민대토론회 등을 말한다. 당시 일본 현지에서 만난 기모토 마사미(木本 雅巳 아름다운 구마강을 지키는 시민의회 사무국장)씨는 "댐 상류인 사가라촌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첫 토론회에는 30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했는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많은 주민들이 단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표명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 "정부 측은 이 자리에서 수천 명의 주민에게 모든 자료를 공개했다"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전한 주민대토론의 결론은 '평행선'이었지만 주민들은 이 과정에서 댐 건설로 인한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댐 반대 여론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심포지엄 취재 후기] 일본은 왜 멀쩡한 댐을 부쉈나
 
 지난 27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전문위원회 주최로 열린 ‘우리 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지난 27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전문위원회 주최로 열린 ‘우리 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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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제 심포지엄에서 츠르쇼코씨는 30분 동안 발제를 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일본에서 반세기에 걸친 댐에 대한 평가와 지난한 싸움의 과정을 압축했다. 이 싸움의 결론은 댐 철거와 댐 건설 백지화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4대강 보로 인한 변화를 반세기 동안 두고 본 뒤에 보 처리 방안을 결정해야 할까?

최근 일부 보수언론은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3~4개월 만에 졸속으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제안했다고 성토하고 있다. 평가 항목의 수치를 지적하며 비판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4대강 사업 때 수십만 개 일자리 창출과 강을 살린다는 주장을 받아썼던 언론사들이라는 게 아니러니하지만, 사실 단기간에 4대강 일부 보 해체 방안이 돌출된 것은 아니었다.

가령 4대강 사업을 완공한 뒤 감사원이 4번에 걸쳐 감사했다. 불법과 편법, 탈법 등의 지적이 제기됐고, 경제성과 환경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무총리실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도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1년여에 걸쳐 보의 수문을 열고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의 제안은 지난 10년여간 이러한 다양한 모니터링 결과물인 셈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멀쩡한 보를 왜 수백억 원을 들여 부수냐고 반발하고 있다. 아라세 댐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었던 멀쩡한 댐이었다. 하지만 댐을 건설한 뒤 수십 년 동안 환경과 지역경제, 치수 등의 영역에서 역효과만 불러왔다. 65년 만에 건설비용의 4배 가까운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댐을 완전히 해체한 일본은 대체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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