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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여성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이야기 도중 A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B가 말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C가 말했다. "나도" D가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둠은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주시하는 빛도 있다.(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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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 멀리서 가는 빛줄기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빛은 꽤 오랫동안 방안을 비췄고 무언가 움직이고 나서야 빛은 어둠을 놓아주었다. 방은 침묵으로 돌아갔다.
 
십수 년 전 일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2월 마지막 주였다. 1박 2일간 음성 꽃동네로 간다고 했다. 꽃동네? 어렴풋이 사회복지시설로 알고 있던 곳이었다. 왜 하필 그런 곳으로 가지. 고등학교 수학여행지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아직 정식 입학 전인데도 행사가 많았다. 몇 주 전에 있던 신체검사는 날짜를 깜빡해 놓치고 말았다. 앞으로 '아싸'나 '과따'가 되지 않으려면 OT는 꼭 가야지 싶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뽑았는데 나는 사회과학부생이었다. 그 안에는 법학과, 행정학과, 경찰학과, 교정학과,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다. 사실 수능 성적에 맞춰 원서를 썼기에 학과는커녕 학부조차도 향후 진로를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합격하고 나서 막연하게 내가 경찰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두 번 정도 한 게 전부였다. 상상 속 나는 제복만 입었지 하는 일 없이 멀뚱히 선 채로 있었다. 교통지도를 하는 건가.

목표로 삼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재수 않고 대학생이 된 점은 매우 기뻤다. 어른으로서 신나게 놀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OT 당일. 날은 아직 추웠다. 두툼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운동장 사회과학부 구역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신입생들이 많았다. 신체검사 때 통성명을 하고 이미 어느 정도 친해진 이들로 보였다. 과별로 줄을 서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과별로 버스를 탄다고 했다. 나는 어물거리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줄에 편입되고 말았다. 가장 짧은 줄이었다. 앞에 있는 빨간색 과 깃발은 검정 글씨로 '교정학'이라고 쓰여 있었다.

"저기요, 여기 무슨 과예요?"

줄을 세우며 신입생 숫자를 세는 순한 인상의 남자 선배에게 물었다. 대부분 교정학과라는 이름을 들으면 척추 교정이나, 치아교정, 문서의 교열 교정 같은 걸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영어로는 Correction. 알만한 말로는 교도관. 쉽게 말해 졸업해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교도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는 그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과라고 보면 된다.

그는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과라서 일단 교정직 공무원이 되면 승진이 빠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일반 행정이나 경찰보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낮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며 별 감흥 없이 듣고 있었는데, 단 하나 귀에 걸리는 게 있었다. 범죄심리학. 그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줄로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로 했다. 어차피 전공 선택은 2학년이었고 지금은 그냥 OT 가서 노는 거니까.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꽃동네에 도착하자 신입생들은 강당으로 들어갔다. 학사일정, 홈페이지 수강 신청 방법 등을 안내했고 동아리 소개 책자도 줬다. 많은 설명은 지겨웠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옆의 남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부산 출신이었다. 마침 몇 년 전 부산 배경의 <친구>라는 영화가 흥행했기에 부산 사투리에 흥미가 갔다.

그는 자기가 사회과학부의 문 닫고 들어왔을 거라며 낮은 수능 점수로 입학한 것을 자랑스레 말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얼마나 공부를 안 하고 사고뭉치로 지냈는지 실감 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술 담배나 오토바이 절도 같은, 만화책 속 에피소드가 쉴 새 없이 나왔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숙소 건물로 갔다. 과별로 남자 방, 여자 방이 마주 보고 있고 복도 끝에 넓은 홀이 있었다. 선배들이 임의로 나눈 조별로 저녁때 할 장기자랑 연습과 '미스교정'에 여자 분장을 하고 나갈 남학우를 뽑았다. 우리 과는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OT에 온 선배들도 남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 유독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5학번이나 높은 예비역이었다.

저녁을 먹고 홀에 모였다. 각 단대의 과별로 동그랗게 앉았다. 과 선배들이 신입생 사이사이 끼어 앉아 친목을 도모했다. 구호를 외치고, 돌아가며 술을 마시고, 장기자랑을 하고, 가장 여자처럼 꾸민 남자를 뽑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 다들 취해갔다. 빈 소주병은 하나의 섬처럼 구석에 모였고, 술 취한 아이들은 담배를 피우러,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 자리는 듬성듬성 비었다.

나는 인사불성이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체질임은 알고 있었기에 적당히 마신다고 마셨는데도 과했나 보다. 기분은 좋았고 토할 것 같지도 않았다. 알딸딸하고 어지럽고 졸렸다. 앉아 있기 힘들어 에라 모르겠다,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동기 무릎을 베고 누워 버렸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이대로가 딱 좋았다.

하지만 곧 누군가 나를 깨웠다. 방에 들어가서 자라며 부축해 일으켰다. 복도에서 마주친 곧 입대를 앞둔 선배의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답을 했다. 방에는 이미 꽤 많은 이들이 자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았기에 내 방이 맞는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더 놀고 싶은데, 하면서도 바닥에 눕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빛은 당신이 주위를 둘러볼 때 생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이 깬 건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운 내 뒤에 누군가 누워 있고, 그 사람의 손이 윗도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어둠 속에 몇몇 가는 숨소리가 들렸지만 어느 하나 움직이거나 뒤척이지 않았다. 손은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잠이 깼다는 걸 들키지 않게 몸을 살짝 움직여봤지만 손은 그대로였다.

문 밖에서는 아직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는지 왔다 갔다 하는 소리,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좀 더 앞쪽으로 가보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누워 있기에 공간이 없었다. 어떡하지? 아무런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건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손은 잘도 비집고 올라왔다. 조금만 더 있으면 브래지어 쪽에 도달할 것 같았다. 결단을 얼마 남기지 않은 순간, 멀리서 가는 빛이 들어왔다. 문이 열린 것이다.

빛은 내 얼굴을 때렸다. 나는 자는 척을 했다. 빛에 서 있는 사람이 소리를 내지 않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공기를 내뱉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뒤에 있던 사람이 윗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지만 손은 그대로였다. 멀리서 성대의 울림이 약간 들렸다. 긴장감이 흘렀다. 결국 뒤에 있는 사람이 먼저 소리를 냈다.

"야, 문 닫어."

굵은 목소리.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빛 사람은 끈질겼다. 결국 뒤에 있던 범죄자는 자리를 일어났다. 신경질이 서린 몸짓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은 닫혔고 방 안은 다시 어둠이 되었다. 평화로운 숨소리들은 변함없었다. 나는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무 일 없는 아침이 되었다.

OT를 통해 신입생들은 동기 및 선배들과 돈독해진다. 이름을 외우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마지막 롤링페이퍼도 쓰고. 4년간 혹은 그 이상 동안 같은 과로서 유대감을 갖고 대학 생활을 할 것이다. 차에 타기 전 마지막으로 과 구호를 외쳤다.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교정학과 파이팅, 교정학과 파이팅, 교정학과 파이팅."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가운데에 손을 모으고 하는 구호. 그 사람들의 손 중 어제 그 손도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내가 그 과에 계속해서 있었던 이유는 그 손을 멈추게 한 다른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빛 속에 서 있던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어둠은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주시하는 빛도 있다. 빛은 당신이 주위를 둘러볼 때 생긴다. 당신이 눈빛이 닿는 곳이 바로 그 빛의 지점이다.

태그:#신입생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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