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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궁금한 성이야기를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씨에게 묻고 답하는 연재입니다.[편집자말]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씨가 지난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영창실질심사를 마치고 포승줄에 묶여 유치장으로 향하고 있다.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씨가 지난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영창실질심사를 마치고 포승줄에 묶여 유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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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게 하고 싶었다.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굳이 알려줘야 하나 싶었다. 하긴 아이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내가 모르게 한다고 모를 리가 있겠냐마는. 마침 열세 살 큰아이는 할머니가 틀어놓은 뉴스에서 그 소식을 봤다고 했다.

짐작하는 대로다. 성매매 알선 혐의를 받고 있는 버닝썬 승리부터 장자연 사건, 5.18 이후 39년만에 광주로 간 전두환까지 굵직한 뉴스를 모두 씹어먹어버린 가수(였나?) 정준영이 촬영한 불법영상물 이야기다.
 
정준영 사건,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 아이들은 예능 <1박2일>은 보지 않으니 그곳에서의 정준영은 모른다. 대신 <짠내투어> 정준영은 잘 안다. '스몰 럭셔리'의 잦은 주인공, 꼼꼼한 설계로 참가자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는 천재 설계자, 프로 여행러라고 불린 정준영. 
 
하지만 그는 방송에서 치켜세운 천재 여행 설계자가 아니라 '차에서, 상가에서' 성관계 하는 영상을 찍은 불법동영상 설계자이자 유포자였다. 아이들에게 깨알 재미를 준 정준영이 텔레비전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심지어 범죄자였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나. 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정준영이 뭘 잘못했는지 알아?"
"뭐 그 동영상..."
"그게 무슨 동영상인데...?"
"자세히는 몰라... 몰래 찍었다는데?"
"맞아, 여성의 몸을 몰래 찍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봤대. 그런 행동은 범죄야. 심지어 정준영은 그게 잘못된 행동인지 알면서도 그랬대. 대체 왜 그랬을까?"
"몰라(요즘 습관적으로 너무 자주 하는 말), 관종 아냐?"

 
'관종(타인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심한 사람)'이란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삼가는 게 좋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아이는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표현이 '관종'이었을 거다. 이번에는 나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엄마와 딸의 대화는 이렇게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아, 뭔가 더 말해야 했을 것 같은데... 아이 앞에서 내 언어는 참으로 빈약했다. 
 
- 심쌤, 페북에 쓰신 글 봤어요. 정준영을 좋아하셨다고. 엄청 놀랐겠어요.
"충격적이었어요. 사실 3년 전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창 비슷한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정말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애써 했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정준영'을 믿어주는 사이, 가해자는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는 증거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고소를 취소하고 합의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어요. 너무나 화가 나기도 하고요."
 
- 아이에게 '정준영의 행동이 범죄'라고 말했을 때, "그게 왜 범죄야?"라고 물을까 봐 조마조마 했어요. 머릿속에 있는 걸 아이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항상 어렵고 긴장돼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른들 중에도 "그게 왜 범죄야?"라고 궁금해 할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준영 사건'에 대해 '몰카가 죄라면 대한민국 남성들도 모두 죄인'이라거나 '정준영 동영상 볼 수 없나요?', '그러게 누가 여자가 원나잇 하래?', '클럽 가는 여자가 잘못이지' 등의 반응이 나오고, 그게 또 호응을 받고 있는 걸 보면요.
 
무엇보다 정준영과 그의 친구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난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래서 단톡은 위험해' 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봐도 그렇고요. 평소 이 사회가 '여성, 성 그리고 여성+성'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야말로 '정준영, 승리, 용준형, 최종훈과 그 친구들'이 저지른 행동이 왜 범죄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정준영과 친구들의 행동'이 범죄인 이유는 뭔가요?
"우선 첫째, 자신과 상대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했어요. 그것도 아주 여러 차례요!(불법촬영) 둘째, 몰래 촬영한 영상을 매번 단체 채팅방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봤어요(불법촬영물 유포). 둘 다 법을 어기는 행동들이에요. 그래서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등 이용 촬영)이라는 이름으로 구속이 되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법을 어길 수도 있지 않냐'고요? 맞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빨간불에 길을 건널 수도 있고 금연 구역에서 몰래 담배를 피울 수도 있어요. 법을 어겨도 그 내용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정준영과 그 친구들'이 어긴 법들은 사람으로서 더욱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여기는 법이에요.

그 법을 어긴다는 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는 뜻이에요. 특히 여성을, 여성의 몸을, 여성의 성을 자기들이 원할 때 언제든 가질 수 있고 성적인 흥분을 위해 마음껏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돈으로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는 '물건' 즉, '성적인 도구'로 대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런 행동은 범죄이고, 범죄 중에서도 아주 질이 안 좋은 범죄라고 할 수 있어요."
 
합의한 동영상이라도 유포하면 범죄
 
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정준영-승리, 시간차 경찰 출석 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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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합의 하에 영상을 찍는 건 괜찮나요? 합의했더라도 유포하면 범죄인 거죠? 그걸 같이 봐도 범죄인 거고요.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관계마다 다르지만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합의 하에 영상을 찍을 수도 있고 그건 개인의 자유예요. 불법도 아니에요. 하지만 동의 하에 영상을 촬영했다고 해서 마음 대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유포하는 건 전혀 다른,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예요.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하에 영상을 촬영했다는 건 유포해도 된다는 뜻'이라는 끔찍한 오해를 하곤 해요. 촬영에 동의했다고 해서 유포를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합의한 동영상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유포했다면 그건 명백한 범죄 행위예요. 특히 중요한 건, 동영상을 찍기로 합의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유포한 사람의 잘못이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이 올린 불법 촬영물을 보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 보는 것만으로는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불법촬영물을 보는 것도 범죄에 가담하는 행동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어요. 보는 것도 성폭력에 가담하는 행동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점점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변화되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어요. 예를 들어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남성'보다 동영상에 나오는(합의의 유무와 상관없이) '여성'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도 그 중 하나예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성적인 욕구를 가지거나 드러냈을 때 비난을 받기가 더 쉬운 분위기니까요."

- 사실 저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집에서 민소매 옷이나, 짧은 바지를 입은 적이 없어요. 엄마는 한번도 그런 옷을 사준 적이 없어요. 저도 당연히 그런 옷을 입으면 안되는 줄 알았어요. 위에 오빠가 있다는 이유로요.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그랬죠. 제가 계속 웃으니까 신부가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고. 왜죠? 오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말이 싫어서 결혼식 끝날 때까지 눈물 한 번 안 흘리고 계속 웃었어요.
"아마 많은 집에서 그랬을 거예요. 여성은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고 성적인 욕구가 있어도 너무 티내면 안 되는 등 조신한 태도를 요구받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범죄의 피해를 입었을 때도,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더 많은 비난과 의심을 받게 되지요.
 
옷은 어떻게 입었는지, 왜 같이 술을 마셨는지, 싫다면서 왜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지, 애초에 그 장소에는 왜 갔는지 등, 평범하게 할 수 있는 행동들도 평가의 대상이 되곤 해요. 이것은 분명한 성차별이고 지금까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일이에요. 이렇게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차별은 피해를 당한 여성이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고 더 깊이 움츠러들게 만들 뿐이에요. 오히려 가해자 앞에서 쩔쩔매게 만들기까지 해요.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지 않았나요?"

-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죠. 
"누구든 옷차림이나 놀러갔던 장소에 상관없이, 성적인 욕구의 유무와 관계없이 안전할 권리가 있어요. 때문에 '합의해서 찍었으니까 유포해도 돼'와 같이 '~~했으니까 ~~해도 돼'는 식의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의 편의대로, 마음대로 추측하는 태도는 아주 위험해요.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섹스를 포함한 성적인 행동을 할 때도 서로 묻고 같이 결정하고 어느 한쪽이 힘들어 할 때는 어떤 순간이라도 멈출 수 있어야 해요. 이런 태도들은 사람이라면 누구와 성적인 관계를 갖든 갖춰야 할 매우 기본적인 매너예요.

자, 모두가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기 위해 '정준영과 그의 친구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짚고 넘어갈게요.

1. 상대방 몰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범죄예요.
2.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공유하는 행동도 범죄예요.
3. 합의해서 동영상을 찍었어도 그걸 맘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범죄예요.
4. 합의해서 동영상을 찍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까지 합의를 했어도 중간에 거부의사를 밝히면 촬영도 유포도 해서는 안돼요. 중간에 거부했는데도 처음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면 역시 범죄예요.
5. 다른 사람의 불법촬영물을 다운받아 보거나 공유하는 것도 범죄행위예요. 당장 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다고 여기지 말아요. 우린 상식 있는 사람이니까.


다섯 가지 잊지 말고, 다음 시간에 만나요. 이상 심쌤이었습니다."

태그:#심에스더, #성교육, #정준영, #버닝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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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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