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어 공부를 왜 해?

우렁찬 빗소리에 잠을 깼다. 베트남은 1월까지 우기라더니 창밖에는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다낭 바나힐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날인데 날씨가 이래서야 아무것도 안 보이겠구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숙소에서 준비해준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에 과일에 주스 등등. 호텔도 아니고 모텔 급의 에어비앤비에서 제공해주는 한 끼 식사로는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후에의 숙소에서 주인이 직접 정성스럽게 해준 가정식을 먹었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먹는다 한들 그때처럼 맛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자본과 정성의 차이인 듯했다.
 
정성 대신 자본
▲ 호이안의 아침 정성 대신 자본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짐을 챙기고 밖에 나가자 곧바로 택시가 왔다. 전날 밤 숙소로 돌아오면서 택시 기사에게 내일 다낭까지 가자고 예약을 했었는데, 같은 회사의 다른 기사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20대의 더 젊고 친절한, 다만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이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에게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실제로 스마트폰의 번역앱은 여행 도중 간간히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베트남 사람을 만나도 스마트폰만 갖다 대면 최소한 그가 지금 어떤 맥락의 말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기술이 발달하면 더 편리하게 되겠지.

그러고 보면 왜 굳이 영어를 공부해야 되냐고 반문하는 아이들의 말이 옳다. 어쨌든 의사통의 벽은 더 낮아질 것이며, 그만큼 어학을 배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나 시간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혹자의 말대로 이미 그런 기술이 존재하는데, 어학 시장 등의 자본 때문에 아직까지도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아이들에게 꼭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잔소리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러한 걸. 

어라? 창밖의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아내와 상의한 뒤 기사에게 다낭 가기 전 잠시 오행산을 들르자고 했다. 대리석이 많다고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불리는 산이었는데, 때마침 비가 그치니 그래도 한 번 들러야 하지 않겠는가.

다낭 오행산
 
다낭 오행산
 다낭 오행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오행산은 바닷가 평평한 땅에 다섯 개의 돌산이 불쑥 솟아 있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평지에 바위가 솟아 있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호남의 월출산을 떠올렸는데, 그 당당한 위용 때문에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월출산과 마찬가지로 오행산 역시 수많은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왕조 건립설화부터 시작해서, 손오공이 갇힌 이야기와 동양 오행의 정수와 관련된 전설 등등.

아이들은 그 중에서도 역시나 손오공 이야기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고, 덕분에 부슬부슬 비가 흩뿌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열심히 올랐다. 혹시나 손오공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기대. 평소 같았으면 분명 힘들다고 징얼거렸을 텐데 그것은 분명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오행산 입구의 사찰
 오행산 입구의 사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오행산의 동굴
 오행산의 동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오행산 입구에는 꽤 볼 만한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행산 자체가 크지 않은 탓에 우리네 산사처럼 고즈넉한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사찰이 많은 대리석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는 만큼 화려하고 강렬했다.

그러나 오행산의 백미는 산중 구석구석에 위치한 적지 않은 규모의 동굴들이었다. 그 동굴들은 대게가 종교와 관련된 공간이었는데, 특히 천장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날씨가 좋아 햇살이 비출 때면 더욱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다고 했다.

하필 오늘 비가 온다면 아쉬워하는 관광객들. 그러나 책자를 읽어보니 그것은 베트남의 아픈 상처였다. 구멍 자체가 베트남전 미군 공습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 한반도는 물론이요, 1970년대 베트남에서도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준 미군의 폭격. 베트남 사람들도 북한 인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에 진저리를 쳤을 것이며 집단적으로 꽤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굴 천장의 구멍
 동굴 천장의 구멍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롯데마트의 익숙함

오행산에서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다낭으로 향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가 식민시대 때 휴양지로 만들었다고 하는 바나힐. 그러나 우리는 우선 다낭의 롯데마트를 들르기로 했다. 인터넷을 보니 롯데마트는 다낭을 들르는 한국 관광객의 성지였고, 우리도 귀국할 때 필요한 선물들을 그곳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오행산에 이어서 롯데마트에서도 2시간 정도 대기할 수 있냐는 나의 제안에 택시 기사는 본사와 전화하더니 기꺼이 알겠다고 했다. 우리 같았으면 돈을 얼마나 더 줄 수 있느냐고 흥정부터 했을 텐데 기사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바나힐까지 가는 요금이 장거리에 꽤 비싼 금액이어서 그런가? 그만큼 남는 장사인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고마운 마음에 장을 다 본 뒤 점심을 사다 주었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베트남의 롯데마트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베트남의 롯데마트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택시에서 내려 들어간 롯데마트. 그곳은 분명 베트남 다낭이었지만 여느 한국의 마트와 다를 바 없었다. 시스템이며 제품 진열이며 모든 게 한국과 똑같았다. 아이들은 익숙함에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에 온 것 같다며, 뭔가 안정되고 편리하다며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쓴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것은 자본이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해 만든 분위기일 텐데, 아이들은 그것을 익숙함과 편리함으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이런 아이들이 크면 마트를 당연한 것으로 느낄 테고, 그곳에서 자신의 유년의 추억을 발견하게 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이들에게 다시금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거래 방식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다. 재래시장에서 흥정을 할 때 느끼는 밀당의 긴장감, 단골 가게에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등을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다. 그게 사람 사는 맛이요,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 아니던가.

아이들의 천국 바나힐
 
바나산 오르는 중
 바나산 오르는 중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내일은 볼 수 있을까?
 내일은 볼 수 있을까?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롯데마트를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바나힐로 향했다. 바나힐은 다낭 서쪽의 바나산(1487m)에 위치한 곳으로서 150년여 전 프랑스가 식민지 베트남에 기온이 선선한 높은 곳을 찾아 건설한 휴양지였다. 요즘은 세계에서 두 번째 긴 케이블카로 올라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도 했다.

수속을 마친 뒤 케이블카 탑승. 날씨가 좋지 않아 저 멀리 풍광은 보이지 않았지만, 케이블카 밑으로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장관이었다. 비가 왔던 터라 계곡이 폭포가 되어 흐르고 있었고, 바나산의 깊은 숲은 원시림처럼 보전되고 있는 듯했다.

150여 년 전 프랑스는 자기들의 휴양지를 만들기 위해 식민지 사람들을 부려 이 깊은 숲을 지나 꼭대기까지 자재를 옮겼겠지. 광활한 자연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식민지의 아픔이 더 느껴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나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나힐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30분 정도 지나 케이블카에서 내렸지만 꼭대기 바나힐의 날씨는 더 엉망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안개까지 자욱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나힐의 상징이라는 지구 모형도, 성당도 간신히 형체만 알아볼 뿐이었다. 부디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방에 짐을 풀고 바나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후에에서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유적지를 답사했고, 호이안에서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예쁜 거리를 돌아다니며 유유자적했으니, 다낭에서는 너희가 주인공이란다.
 
아이들의 천국 바나힐
 아이들의 천국 바나힐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바나힐의 놀이동산은 서울의 롯데월드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지만, 모든 것이 공짜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아이들은 열심히 놀이기구를 타고 오락을 했다.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내와 나 역시도 넋을 읽고 놀이동산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많이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마음껏 놀이기구를 타 본적이 있던가. 아마도 아이들은 베트남을 이곳 바나힐 놀이동산으로 기억하게 되겠지.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태그:#베트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