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시범경기'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9회초 KIA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문경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9.3.12

12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시범경기'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9회초 KIA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문경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9.3.12 ⓒ 연합뉴스

 
9회말 2아웃. 타석에는 타자가 아닌 투수가 배트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배트를 한 번 휘둘러보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루킹 삼진'을 당하고 타석에서 내려갔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26일 광주KIA챔피언십필드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신한은행 MYCAR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시즌 1차전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쩌다 이런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진 걸까.

지난 2012년 9월 12일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는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한창이었다. 9회까지 3-0으로 SK가 앞선 가운데, LG는 한 점이라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했다. 이에 이만수 당시 SK 감독은 3점 리드를 지키기 위해 박희수에 이어 이재영을 투입해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재영이 2사 이후 정성훈에게 2루타를 허용하자 바로 마무리 정우람을 투입해, 경기를 끝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상대팀이 확실한 승리를 위해 마무리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LG에게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루에는 정성훈을 대신하여 발 빠른 대주자 양영동이 있었고, 타석에 들어설 타자는 2012 시즌을 152안타(타율 0.305)로 마감한 '미스터 LG' 박용택이었다. 2사 이후 상대팀이 마무리를 투입한 만큼 분명 역전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야구 팬들이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선언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7 대 13으로 한화에 진 KIA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9.3.26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7 대 13으로 한화에 진 KIA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9.3.26 ⓒ 연합뉴스

 
그러나 이 순간, 김기태 당시 LG 감독은 상당히 의아한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용택 대신 신동훈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KBSN의 이용철 해설위원이나 중계진도 신동훈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바빴다. LG 야수진 가운데 그 어디에도 '신동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투수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야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동훈이 투수인지도 몰랐던 일부 팬들만 목이 터져라 "신동훈 안타"를 외쳤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타석에서 방망이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 채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 해야 했다. 다소 허무한 상황에서 경기가 종료됐다.

"가장 마지막까지 야구하겠다"던 약속

당시 타석에 투수가 선 '이상한 장면'의 파장은 컸다. 상대팀 마운드 운용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면서 무언의 항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야구 팬들은 김기태 감독을 향해 "프로의식이 없는 선수 기용이었다"고 비난했다. 무엇보다도 신인 투수의 데뷔를 타석에서 맞이하게 했다는 점, 홈 팬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KBO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김기태 감독에게 제제금 500만 원의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7년 전의 이야기는 김 감독의 징계로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당시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당시 SK 선수였던 정우람은 FA 이적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고, 김기태 감독 역시 고향팀 KIA로 발걸음을 옮겼다. '투수 대타'였던 신동훈도 SK로 이적 이후 첫 승을 신고하는 등 옛 일은 그저 한 조각 추억으로 남게 됐다. 적어도 26일 전까지는 그러했다.

이번 시즌 KIA는 광주 챔피언스필드 홈 개막 2연전에서 LG에 불의의 2연패를 당하며 다소 분위기가 침체되어 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포수 김민식 외에 주말 2연전과 동일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승리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김기태 감독의 용병술은 경기 초반까지 잘 먹히는 듯 싶었다. 초반 6실점 이후 5득점 추격에 성공하며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후 분위기가 한화 쪽으로 기울면서 9회까지 13-7로 점수 차이가 벌어진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9회말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한화 정우람 투수가 역투하고 있다. 2019.3.26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9회말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한화 정우람 투수가 역투하고 있다. 2019.3.26 ⓒ 연합뉴스

 
그런데 9회 말 2아웃 이후 한화가 마무리 정우람을 투입하자 분위기는 또 다시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KIA 김기태 감독은 또 다시 7년 전과 똑같은 용병술을 선보였다. 투수 문경찬을 타석에 내보낸 것이다. 정우람으로서는 7년 만에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것. 정우람은 스트라이크 3개를 던졌고 문경찬은 그 공을 가만히 바라보다 '루킹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물론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9회말 2아웃을 잡고 난 이후에 마무리 투수를 기용한 것에 대해 항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화 한용덕 감독의 결정에 대해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기용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용덕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정우람이 개막 후 실전 등판 기회가 없어서 점검 차 등판시켰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김기태 감독은 또 다시 홈 팬들 앞에서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각 구단 상황이나 사정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는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도 프로다워야 존재 가치가 있다. 더구나 김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미디어 데이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야구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약속이 지난 26일 경기에서도 지켜졌다고 할 수 있을까?

비록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NC와 kt의 창원 경기에서는 NC가 패색이 짙던 11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양의지와 모창민이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면서 극적인 역전을 일궈냈다. 어떤 게 프로다운 것인지 양팀 감독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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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타이거즈 LG트윈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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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데일리안, 마니아리포트를 거쳐 문화뉴스에서 스포테인먼트 팀장을 역임한 김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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