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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 100년,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며 3.1운동의 정신과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를 잊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루지 못한 역사의 정의,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친일 청산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원죄이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잘못 끼운 첫 단추의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심지어 일제협력자가 독립운동가로 둔갑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1년 전인 2018년 3월 1일 충주문화회관에서는 삼일절 99주년 기념 <100년의 재회>라는 공연이 있었다. 충주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공연인 줄 알았으나 그 실상은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정운익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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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00년의 재회>
 연극 <100년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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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못 본 분들을 위해 이 촌극을 짧게나마 설명해야겠다. 연극 <100년의 재회>는 세 명의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삼일절 99주년을 맞이해 저승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는 짧은 상황극이다. 그 세 명의 역사 속 실존 인물은 류자명 선생, 권애라 선생, 그리고 촌극의 주인공인 정운익이다.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이야 워낙 유명하니 이 자리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정운익이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정운익은 충주 출신으로 1924년과 1927년 두 번 충북도평의원에 당선돼 활동한 인물이다. 도평의원을 지금의 도의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도평의회는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도청의 자문기관이며,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은 만 18세 이상의 성인으로 불령선인 등 독립운동가, 중범죄자, 공산주의자에게는 입후보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도 국세 5원 이상을 납부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충주 지역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합하여 약 300명 정도가 선거에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매일신보 1927년 4월 3일자. 도의원 이름에 정운익이 있다.
 매일신보 1927년 4월 3일자. 도의원 이름에 정운익이 있다.
ⓒ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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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운익은 충청북도 농회 특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조선농회는 일제가 조선농민을 착취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다. 1926년 1월 25일 조선농회령과 조선산업조합령이 공포되어 같은 해 3월 1일부터 시행되었고, 민간에서 지방행정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로 농산물 공출을 담당했다.
 
매일신보 1927년 3월 19일자
▲ 정운익 농회 특별위원 매일신보 1927년 3월 19일자
ⓒ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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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들어 충주지역 이주 일본인들과 일부 조선인을 중심으로 실업학교 설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정운익은 일본인 실력자였던 하라구치 카즈지(原口一二), 나카가와 류조(中川龍藏) 등과 함께 실업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업학교는 식민통치기구나 그 하부 조직에서 일제의 식민지배와 수탈의 하부종사자로 활동할 인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일 뿐,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학교는 아니었다.
 
정운익이 실업학교 설립에 나섰다고 보도한 조선신문 1924년 2월 22일자.
 정운익이 실업학교 설립에 나섰다고 보도한 조선신문 1924년 2월 22일자.
ⓒ 조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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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1924년 3월 29일자
▲ 정운익 실업교기성회 대한매일신보 1924년 3월 29일자
ⓒ 대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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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 변화상을 소개한 <충주발전사(忠州發展史)>(1933)에는 정운익이 식민세력을 대표하는 하라구치 카즈지(原口一二), 다카무라 진이치(高村甚一), 스즈키 마사이치(鈴木政一), 우노 사헤이(宇野佐平) 등의 일본인들과 윤정구, 피해붕, 홍몽화 등의 조선인들과 함께 충주의 유력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
 
일제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적 변화상을 소개한 충주발전사
▲ 이영 충주발전사 일제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적 변화상을 소개한 충주발전사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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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적 변화상 소개 충주발전사
▲ 충주발전사 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적 변화상 소개 충주발전사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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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일제협력자'가 독립운동가로 둔갑

사정이 이러한데도 촌극 <100년의 재회>에서 정운익은 마치 민족운동가처럼 그려진다. 그것도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의 입을 통해서 정운익은 훌륭한 일을 하신 분으로 묘사되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 같은 독립운동가로 이 분들과 동등한 충주의 위인으로 나온다.

안타깝게도 지면이 부족해 문제가 된 연극의 대본을 다 올릴 수는 없으나 일부만 보더라도 정운익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촌극의 대본에 의하면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은 끊임없이 정운익에게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한다. 게다가 중학교 설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충주시민의 만장이 10리에 걸쳐 늘어섰다는 말까지 나온다.

권애라 선생의 대사 중엔 "독립운동을 한 충주 분들이 많이 계시는 걸로 아는데, 왜 우리만 여기에..."라며 권애라 선생의 입을 통해 정운익을 독립운동가로 슬쩍 끼워넣는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정운익이 현장에서 이 촌극을 관람하던 조길형 충주시장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시장님, 내년이 3·1운동 100년입니다. 내년에는 우리 세 사람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을 보태셨던 충주 출신 독립운동가분들을 모두 충주로 모셔보면 어떨는지요?"

이 부분에 이르면 정운익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운동가가 된다. 

연극은 창작의 영역이고 상상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창작이니까 괜찮다고 포장될 수는 없다. 특히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그릴 때는 더욱 철저히 사실에 기초해야만 한다. 근래의 작품들 중 <청연>, <미스터 션샤인>, <야인시대>, <명성황후> 등 역사 왜곡으로 인한 논란은 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적극적 일제협력자'를 독립운동가로 둔갑한 사례는 흔치 않다.

충주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충주에서는 2016년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 있었다. 그때의 주인공은 마라토너 '권태하'였다.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닌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대동아성에서 근무했고, 협화회, 계림회 등의 친일협력단체에서 활동했던 자를 독립운동가로 만들려던 시도가 있었다. 2016년 7월 신동아에 <총도, 칼도 없이 민족명예 위해 싸워보라!>라는 제목 아래 '마라톤 개척자 권태하의 '스포츠 독립운동''이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올려 마치 권태하가 독립운동가인 양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 연극의 대본을 썼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00년의 재회> 연극이 문제가 되자(팸플릿에는 작가 이름이 안 나와 있다) 대본을 쓴 사실을 부인해 오던 김희찬씨는 자신이 대본을 썼다는 사실과 함께 그 증거로 대본과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글에서 "정운익이 1922년에 충청북도 평의회 충주군 평의원으로 시작해 1927년 갑자기 죽기까지 만 5년을 평의원을 했으니 일단 대상자 명단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을 펼쳐보라, 거기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가를"이라며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았으니 그는 친일인물이 아니라며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도회 의원을 역임한 국회의원 김무성씨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논란 사례에서 보듯 <친일인명사전>은 증거 자료가 더 필요할 경우 수록하지 않고 추가 조사를 한다. 대상 인물의 행위와 지위를 엄격히 확인한 후에야 수록하는 것이다. 이렇듯 친일인물을 계속 조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없다고 해서 친일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도의원을 두 번이나 역임하고, 농회 특별위원이었으며, 일제강점기 충주 일본인 사회의 최고 실력자들과 함께 지역의 유력인사로 소개될 정도의 각종 활동에 참여한 사실이 친일협력이라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 친일협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점은 하나다. 정운익은 그의 활동상을 볼 때, 친일협력자일 뿐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충주시의 황당한 행보

이런 말도 안 되는 촌극의 극본을 쓴 김희찬, 총연출이었던 김수희 등은 이 연극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 또 문제의 연극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선명하게 찍힌 충주시 후원에 대해서도 충주시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충주시는 예기치 못한 행보를 보였다.

이 문제의 연극을 만들어 공연했던 핵심인물들이 또 다시 연극을 준비하고, 이 연극을 충주시가 후원한다는 소식이 2018년 12월 중순에 전해졌다. 2018년 12월 말 이 연극이 역사 왜곡의 문제가 있음을 알았던 충주지역사회연구소는 증빙자료와 함께 충주시 문화예술과를 찾아 내용을 설명하고 지원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충주시는 연극 내용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알겠으나 내용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고, 후원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이 연극에 대한 지원 여부 결정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2월 20일 경 페이스북에 충주시에서 진행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중 연극이 있었고 이를 충주시가 지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충주중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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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목도 바뀌고 내용도 바뀌었다. 문제의 정운익은 빠지고, 류자명 선생이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연극을 한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총감독도 그대로요, 주연배우도 그대로였다. 대본을 쓴 작가는 이번에도 팸플릿에 나와 있지 않아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충주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첫째, 2018년 연극 <100년의 재회>에 대해 관계자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
둘째, 충주시의 후원 철회

하지만 정운익의 후손은 이 문제를 제기했던 학자와 취재했던 기자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주시는 2018년 연극의 잘못은 충분히 알고 있으나, 제목과 내용을 수정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후원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해의 연극은 충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을 선양하는 내용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3.1운동 99주년이었던 2018년에는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을 모욕하고, 100주년인 2019년엔 류자명 선생을 선양한다? 이런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 되묻고 싶다.

더 어이없는 것은 충주시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이며,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가 있는 충주시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가 공연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주최하고 후원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충주시는 이 단체와 2018년에 공연된 연극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친일협력자를 독립운동가로 만들어 역사를 왜곡한 이들에게 3.1운동 100주년 기념공연을 맡김으로써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마찬가지다. 

3.1운동 100년, 임정수립 100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친일청산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크나큰 병폐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이때, 충주시에서 벌어진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누가 독립운동가를 모욕하고, 누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냉철하게 따져보고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야 할 것이다.
 
충주 근현대인물 특별전. 좌상단부터 정경원, 류자명, 유석현, 권태하, 정상희, 허문회. 이 중 권태하, 정상희는 친일협력 논란이 있다.
 충주 근현대인물 특별전. 좌상단부터 정경원, 류자명, 유석현, 권태하, 정상희, 허문회. 이 중 권태하, 정상희는 친일협력 논란이 있다.
ⓒ 충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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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협화회 
계림회  
권태하 논란 관련기사     

덧붙이는 글 | 김일한 기자는 충주지역사회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친일협력자, #정운익, #충주시, #연극,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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