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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는 사진과 글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에 더해 사람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 등의 '국가폭력'을 경험한 분들의 기억 말입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던 사람들의 고통과 삶을 질감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억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는 탁본 모임에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지난 15일 금요일 저녁, 짙은 어둠이 깔리던 시각, 망원동의 한 카페에 청년들이 모였다. 저마다 한 주 동안의 일상과 노동으로 지친 몸으로 만났지만 이내 시작된 탁본 이야기에 지친 기색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에 눈빛이 빛났다.

판화가 좋아 무작정 일본에서 건너온 청년과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품을 병행하는 청년 예술가까지 언뜻 보기에 수상한 조합의 이들은 사실 지난달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탁본 모임을 하는 중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이들의 나이 차는 무려 40~50년 이상 난다. 이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사건이 났다.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경험하지 못한 기억을 가진 이 청년들이 대체 어떤 계기로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탁본이 가진 매력

다케시, 정확히는 히로카와 다케시(廣川毅)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같은 것도 하고 노숙자 운동이나 반 천황제 운동도 했어요. 그냥 좀 사회문제에 관심 있고 이것저것 많이 했던 것 같아요."

2013년 이철수 화백의 그림을 본 후 한국의 판화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양국을 오가며 판화와 그림 작업을 하다가 2년 전 '지금여기에'를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평화밥상'이라는 것을 보고 저녁 식사를 무료로 준다는 말에 가볍게 저녁을 먹자는 마음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저녁 밥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피해자들의 얼굴을 판화로 남겼다. 그의 기억 방식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탁본'이란 방식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를 기억하려고 한다.
 
 다케시가 만든 김순자의 판화
 다케시가 만든 김순자의 판화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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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문지른 경험이 있잖아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실제와 같은 크기의 탁본은 무언가 끌어당기는 게 있어요. 1엔, 5엔, 10엔, 100엔, 500엔... 모든 동전을 몇 번이나 그려보니 부자가 된 것 같았어요. 특히 눈에 익숙한 물건을 검은 색으로 종이에 그리면 신기하게 그림에 힘이 생기고 보는 사람한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요."

그의 말처럼 손재주가 부족해도 화선지와 목탄만 있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탁본은 고령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친근하고 또 친절했다. "평소에 지나치는 풍경도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히 살피며 종이에 옮기면 생명력을 갖고 나에게 말을 걸듯이 탁본을 통해 공간과 사건, 그것에 얽힌 기억과 여러 가지 감정들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던 다케시의 바람은 첫 모임 때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금방 질려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색할 만큼 탁본 모임에 참가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남기고 싶은 공간의 질감을 열심히 탁본으로 만들었다. 탁본 작업은 목탄을 문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탁본을 끝내고 왜 이 장소를 탁본했는지 그들 스스로 이야기한다. 그 장소가 어떻게 보였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때로는 북받친 감정을 드러냈으며 때로는 담담하게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탁본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일본에서도 탁본 전시회를 하면 좋겠어요. 피해자 선생님들 중에서 일본에서 일하다 한국에 들어와 고통 받은 분들도 계시니까요. 이런 역사를 일본에서도 알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케시는 탁본이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나아가 그것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길 희망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다케시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고 있다. 특히 40여 년 전 일본에서 일을 하다 간첩으로 몰린 최양준은 다케시와 만날 때마다 몇 십년간 쓰지 않던 일본어로 오사카에서 일하던 자신의 과거를 말했다. 언어도, 시간도, 국적도 고통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장벽이 되지 않았다. 여든을 넘긴 최양준이 삼십대의 일본 청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언어와 일본이라는 공유기억이 있었다.
 
 다케시가 만든 최양준의 판화
 다케시가 만든 최양준의 판화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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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는 것

한편으로 이 작업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탁본이 가진 의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비록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어도 과거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모임이라도 과거를 돌이키는 과정이 자칫 피해자의 상처를 건드리는 게 아닐까 우려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때는 기억하기도 싫다며 진저리를 친다. 그래도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의지로 매번 탁본 작업에 함께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하기 전 탁본을 설명하는 다케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하기 전 탁본을 설명하는 다케시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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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사진 작업을 해왔고 지금 탁본 모임에서 사진 촬영을 전담하고 있는 '한톨'은 그렇기에 순간순간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라는 틀에 맞춰 고정적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요동치는 그들을 이해하고 그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질감이 좀 더 강조되는 필름 카메라로 탁본의 순간을 찍고 있다. 그만의 마음을 다하는 방식인 셈이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하는 이유
 
 참가자들의 말을 기록하고 스케치 하는 한톨
 참가자들의 말을 기록하고 스케치 하는 한톨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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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청년 예술가가 지금 여기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탁본을 하는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 것을 넘어서 그들과 말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다. 40~50년의 터울을 넘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그러나 흔하지 않은 아픔을 함께 담아내고자 함이다.

[후원문의]
☞ 국가폭력의 기억을 질감으로 남기는 사람들 

[탁본에 남긴 잔혹한 기억]
그녀는 왜 남영동 대공분실 머릿돌을 탁본했나 http://omn.kr/1hjit
고문실의 문구멍은 거꾸로 뚫려 있구나 http://omn.kr/1hm1v
그가 고문 받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http://omn.kr/1hm1x
"앞 못보는 아버지가 북한 암호해독?" 참혹한 고문 흔적 http://omn.kr/1hs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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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지금여기에"라는 단체에서 일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