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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KT 건물(왼쪽).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KT 건물(왼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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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가 2014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정치권 인사, 고위 공무원, 군·경찰 출신들에게 고액의 급여를 주고 각종 로비에 이들을 활용했다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민주)이 24일 주장했다. 이 의원은 2014년 1월 취임한 황창규 대표이사 체제에서 14명의 외부 인사가 받은 돈이 총 20억 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14명의 면모를 보면 한국당 국회의원과 그의 정책특보, 청와대(박근혜 시절) 행정관, 행정안전부 정보화전략실장, 경기도지사 특보, 육군정보통신학교장, 강원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 분실장 등이 눈에 띈다.

KT는 경영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로비 활동 명목으로 지급한 것이라며 이철희 의원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군·공무원 출신 경영고문은 정부사업 수주를 도운 것으로 보인다. 2016년  KT가 수주한 '국방 광대역 통합망 사업' 입찰 제안서에는 경영고문 남◯◯이 등장한다.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육군정보통신학교장 등 군 통신 분야 주요 보직을 거친 예비역 소장이다. 국방부의 사업심사위원장은 남◯◯이 거쳐간 지휘통신참모부 간부였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KT가 남◯◯을 내세워 750억짜리 사업을 수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KT와 직접적 업무 관련성이 있는 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국민안전처·행정안전부 고위 공무원 출신도 경영고문에 위촉됐다. 이들은 2015년 '긴급 신고전화 통합체계 구축사업'을 비롯한 정부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 이철희 의원실이 24일 낸 보도자료에서

정경유착 경계한 왕들, 그러나...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내용이 맞는지는 수사를 해봐야 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해야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가기관이 민간 기업 '경영고문'들의 로비에 좌우돼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의 돈으로, 국가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할 국가기관이 민간기업의 돈과 뜻에 따라 움직인다면, 국가기관이 일정 정도는 그 기업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정경유착은 오늘날뿐 아니라 옛날에도 당연히 죄악이었다. 그러면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국가가 주는 봉급보다 더 많은 '봉급'을 제시하는 민간 기업 앞에서 상당수 공직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역사 속의 정경유착에 등장하는 상인들은 봇짐 지고 홀로 전국을 유랑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중앙정부 고관들에게 뇌물을 제공할 정도면, 자금력도 자금력이지만 상당 규모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했다. 사료(역사기록물)에서는 '상인'으로 언급되지만, 실상은 기업체 사장 정도의 위상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인'들이 돈의 힘을 앞세워 관료들을 매수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군주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할 신하들이 '상인'들의 신하가 돼 국가재정과 행정을 좀먹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 군주들은 정경유착에 고도의 경계심을 품었다.

명나라 사신단에 들어가려고 로비
 
 특권 기업들이 모여 있었던 육의전 터. 탑공공원 앞에서 찍은 사진.
 특권 기업들이 모여 있었던 육의전 터. 탑공공원 앞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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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정경유착은 사신단 구성 때 특히 잘 나타났다. 옛날에는 사신단이 방문하는 기회에 국가 간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약한 나라가 조공 명목으로 상품을 제공하면, 강한 나라는 회사(回賜, 답례) 명목으로 상품을 제공했다.

이런 공식 무역 외에 사신단원들의 개별 무역도 허용됐다. 사신단에 포함된 외교관·통역관·군관·행정직원 등은 장사할 물건도 함께 갖고 갔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짐을 운반하고 현지에서 물건을 매매할 개인 하인들을 사신단에 포함했다.

궁녀 출신인 장희빈(희빈 장씨)이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 장희빈 가문에는 통역관들이 많았다. 이들은 통역관 신분을 이용해 중국에 갈 때마다 장사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조정과 궁궐 사람들을 움직여 장희빈과 숙종이 자연스레 만날 기회를 만들어줬다.

변광석 부산대 HK전임연구원은 <우리 역사 속 부정부패 스캔들>에서 "희빈 장씨는 궁중의 나인으로 대궐에 들어왔다가 자의대비의 추천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면서 "인동 장씨 역관 가문의 자금력과 결탁한 남인(당) 세력들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신단에 끼면 큰돈을 벌 수 있었기에, 거기 들어가기 위한 정경유착이 벌어지곤 했다. 연산군 아버지인 성종(재위 1469~1494년) 때 있었던 변처녕 스캔들도 그런 사건이었다.

1492년, 변처녕이 명나라에 가는 사신단의 부사(2인자)로 임명됐다. 음력으로 성종 23년 4월 17일자(양력 1492년 5월 13일자) <성종실록>에 따르면,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 대상인인 조복중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는 조복중의 신분을 무관으로 위조해 사신단 명단에 넣어줬다.

조복중은 '대기업 사장'이라는 점 외에도 정부 고위층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있었다. 그는 성종의 총애를 받아 궁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궁녀 조씨의 조카였다. 그런 이유로 변처녕이 사신단에 넣어줬던 것이다.

하지만 사신단 출발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조복중이 무관 신분으로 위장하고 사신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사헌부(검찰청)에 의해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은 약 50명이 처벌받는 대규모 '게이트'로 번졌다. 하지만 조복중은 처벌받지 않았다. 돈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궁녀 조씨가 구명운동을 펼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달 업무에서 터진 대형 비리

정부 조달 업무에서도 정경유착이 일어나곤 했다. 지금 소개할 사례도 성종 때 사건이다. 당시까지 조선 최대의 비리 스캔들로 회자된 사건이다. 주로 옷감을 조달하는 제용감이란 관청에서 종4품 첨정 벼슬을 하던 김정광이 벌인 정경유착 사건이다.

제용감 4인자인 김정광은 상인들의 뇌물을 받고 추포(하급 피륙)를 세포(고급 피륙)로 속여 입고했다. 리베이트를 받고 조달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연루된 상인이 330명이 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광은 황당한 범죄까지 함께 저질렀다. 뇌물수수죄가 발각될 기미가 보이자 공범자인 상인 20명을 데리고 창고에 들어가 증거를 없애는 대담함까지 발휘했다. 상인 20명과 함께 창고에 잠입해 피륙 양쪽에 붙은 식별표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 반입 경로를 숨기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김정광을 비롯한 주요 연루자들은 곤장 100대를 받고 지방 공노비(관노)로 전락했다. 김정광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성종은 수용하지 않았다. 곤장 100대를 제대로 맞으면 사람이 죽지만, 형리가 살살 때리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금전이 연루된 비리 사건은 법정형보다 낮은 형벌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았다.

말발굽에 값어치 있는 금속 넣어 주기도 
 
 내몽골초원에서 찍은 풍경.
 내몽골초원에서 찍은 풍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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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자동차 트렁크에 돈 가방이나 '과일상자'를 넣어주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풍경이 있었다. 자동차 '뒷바퀴'에 뇌물을 붙여두는 것이었다.

성종 8년 10월 5일자(1477년 11월 10일자) <성종실록>에는 '쇠붙이를 말발굽에 붙여 뇌물로 주는 방식'이 소개돼 있다. 돈이 될 만한 금속을 말발굽에 몰래 붙여두는 식으로 뇌물을 준 것이다. <성종실록>에 따르면 이런 일은 그보다 옛날에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오늘날뿐 아니라 옛날에도 뇌물 수수와 정경유착이 매우 은밀하게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 사극에서는 뇌물 제공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재물 보따리를 들고 가서 고관대작 앞에 탁 내놓지만 실제로는 훨씬 은밀한 방법으로 뇌물을 주고받은 것이다.

정경유착은 100% 왕의 사람이 돼야 할 신하를 일정 정도는 '상인의 신하'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왕들은 바짝 신경을 썼지만 막상 범인을 잡은 뒤에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는 일이 많았다. 경제력을 가진 상인들이 관련된 사건은 함부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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