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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청와대 앞에선 전국 로스쿨 학생들의 총학생회인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이하 법학협) 주최로 천여명의 로스쿨 학생들이 모여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당시 한 로스쿨 교수는 그간 나서지 못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대체 지금 로스쿨에선 무슨 일이 있어 학생들은 광장으로 나오고, 교수는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함께하겠다고 하는 걸까?
 
20일 제주대 부근 한 커피숍에서 제주대 로스쿨 신용인 교수를 만나 '선생님'의 눈으로 현 로스쿨 교육을 들여다봤다. 특히 판사와 변호사 출신인 신 교수로부터 '로스쿨다운 실무 중심 교육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다음은 신용인 교수와의 일문일답. [기자말]


 
판사와 변호사 출신인 신용인 교수는,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 고시학원 강사 출신이 아니다. 이럴 거면 나 같은 실무가 출신 교수들 내보내고 고시학원 강사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사법시험을 거쳤던 그는 로스쿨의 실무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효과적인 법조인양성교육이 가능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로 치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판사와 변호사 출신인 신용인 교수는,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 고시학원 강사 출신이 아니다. 이럴 거면 나 같은 실무가 출신 교수들 내보내고 고시학원 강사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사법시험을 거쳤던 그는 로스쿨의 실무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효과적인 법조인양성교육이 가능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로 치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 출처 : 오마이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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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판사, 변호사였던 로스쿨 교수로서, 지금 로스쿨에서 '예비법조인을 양성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유감스럽게도 보람보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판사, 변호사였던 내가 교수가 된 건 그간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제자들을 '실무능력이 우수한 법조인으로 교육ㆍ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의 로스쿨은 사실상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 학생도 학교도 오로지 변호사시험 합격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강의도 수험 위주로 진행되고 실무능력 함양을 위한 교육은 사실상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 고시학원 강사 출신이 아니다. 차라리 나 같은 실무가 출신 교수들을 내보내고 고시학원 강사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 싶다. 우리(실무가 출신 교수들)의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이 크다."

-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우수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험을 위한 공부'와 '실무를 위한 공부'는 다르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었던 나는, 실무를 접하고 사법시험에 문제가 많음을 깨달았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려면 엄청난 양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실무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시험 합격만을 위해 필요한 공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실무에 필요한 지적 능력은 암기량이 아니라 '리걸마인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본법리를 충실히 이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혹시 자기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나올까 걱정되어 지엽적이고 순수 이론적인 부분까지 빠짐없이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공부량이 엄청나게 늘게 되고 그 공부량에 치이다 보니 막상 실무에 절대 필요한 기본법리는 소홀히 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빚게 된다.
 
또 실무에 대한 아무런 감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다 보니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한다.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 책에서 '준비서면'이라는 단어가 도대체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무조건 달달 암기했다. 사법연수원에서 준비서면을 처음 접하고는 허탈했다. 만일 내가 사법시험 공부할 때 준비서면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민사소송법 책을 훨씬 잘 이해했을 것이다. 다른 법과목들도 다 마찬가지다. 합격자 대부분은 합격 직후 시험용 법학지식은 풍부해도 실무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나 역시 사법시험 합격할 당시 등기부등본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래도 시험에는 합격했다.
 
변호사시험도 비슷하다. 시험의 속성상 실무를 몰라도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다. 따라서 변호사시험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우수한 법조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본다."

- 과거 사법시험체제에 실망한 만큼 로스쿨에서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로스쿨에선 종래 사법시험체제와 달리 실무교육이 이론교육과 함께 제도화되어 있다. 그 점만 보면 사법시험에 비해 상당히 선진적인 제도다. 하지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현행 변호사시험이 로스쿨의 실무 교육을 외면하게 만들고 형식화시키고 있다.
 
로스쿨에서는 '송무수행 지도'라는 실무 과목이 있다. 학생들이 실무변호사의 지도하에 실제 사건을 담당하면서 송무과정 전반을 직접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실무능력을 함양하도록 하는 실무과목이다. 내가 볼 때 로스쿨에서 가장 필요하고 정말 중요한 교과과정이다. 하지만 송무수행 지도는 형식화ㆍ최소화되고 있다. 당장 변호사시험에 직접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만일 로스쿨 학생이 실제 사건을 맡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며 씨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실무능력은 상당히 향상될 것이다. 그게 진짜 로스쿨 교육이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앞에서 학생들에게 그런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변호사시험에 유용한 판례의 요지 수백 개 이상을 외울 시간에 송무수행에 집중하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떨어지니 그렇다. 결국 송무수행 지도는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오직 변호사시험에만 매달리는 현실'에선 제대로 된 실무교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실무 교육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실무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로스쿨이 법학자가 아닌 실무가를 양성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실무가를 양성하는 기관에서 실무 교육이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왜 실무 교육이 중요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무에서는 '형식지(形式知)'보다도 '암묵지(暗黙知)'가 더 중요하다. 암묵지란 학습과 체험을 통해 습득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의 지식을 말한다. 암묵지는 대개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된다. 책을 열심히 읽고 강의를 충실히 듣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실무교육은 바로 그런 암묵지를 키우는 교육이다. 학생들은 송무수행지도와 같은 실무 교육을 통해 실무 현장을 직접 접하면서 문제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에서 암묵지를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실무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변호사시험 형태로는 암묵지의 수준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변호사시험은 형식지 평가에는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암묵지 평가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실무 교육은 변호사시험과 연관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실무 교육을 열심히 받아도 변호사시험 합격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은 실무교육을 도외시한다. 책도 실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무용 책이 아니라 변호사시험 합격에 도움이 되는 고시학원 교재를 읽고, 실무 실습을 하는 대신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는데 온통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날이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학생이 실무능력이 뛰어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어 실무교육에 충실하게 된다면 그만큼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지금 로스쿨의 현실이다."
 
2011년 제주대 로스쿨 학생들은 리걸클리닉 수업을 통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관하여 주민들을 위한 법률 법률 봉사 활동을 하고 관련한 논문을 집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제주대 로스쿨에서 이와 같은 활동은 없다. 지금의 로스쿨은 실무 교육이 사실상 붕괴된 고시학원의 모습이라고 교수와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이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다른 로스쿨들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제주대 로스쿨 학생들은 리걸클리닉 수업을 통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관하여 주민들을 위한 법률 법률 봉사 활동을 하고 관련한 논문을 집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제주대 로스쿨에서 이와 같은 활동은 없다. 지금의 로스쿨은 실무 교육이 사실상 붕괴된 고시학원의 모습이라고 교수와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이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다른 로스쿨들에서도 마찬가지다.
ⓒ 출저 : 헤드라인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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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이 이론과 실무를 결합한 교육기관이란 점에 대해, 이론공부도 부족한데 무슨 실무와의 접목이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론공부도 부족한데 무슨 실무와의 접목이냐는 비판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론과 실무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실무를 도외시한 이론 공부는 '죽은 공부'에 불과하고, 실무를 하다보면 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실무변호사의 지도하에 소제기부터 판결 선고까지 민사소송절차를 충실하게 경험한 학생이 민사소송법 책을 읽는 것'과 '준비서면이 뭔지도 전혀 모르는 학생이 민사소송법 책을 읽는 것'은 그 이해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 이론공부와 실무교육을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이론공부만으로는 6년 걸릴 것도 3년이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난 로스쿨에서 실무교육이 정상화된다면 3년의 교육과정이 결코 짧지는 않다고 본다."
  
- 실무와 접목된 제대로 된 로스쿨 교육을 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변호사시험이 기본법리만 충실히 이해하면 합격할 수 있도록 '절대평가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절반은 무조건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계속하면 학생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실무교육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로스쿨은 잡다한 법률지식을 갖추고는 있으나 실무능력은 형편없는 그런 법조인들을 양산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미 나와 있는 정답을 많이 기억하고 있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시대에 지금과 같은 변호사시험 위주의 로스쿨 교육이 과연 경쟁력 있는 양질의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변호사시험은 법조인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형식지를 갖추고 있는지만 평가하는 제도로 활용되어야 하고 로스쿨은 암묵지를 키우는 실무교육 위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21세기 인공지능시대에 경쟁력이 있는 양질의 법조인들을 배출할 수 있다."
 
- '양질의 변호사'를 배출하려면 변호사시험의 합격점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거듭 강조하지만 양질의 변호사를 배출하려면 실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나와 있는 정답을 달달 외우는데 능한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행 변호사시험 제도에서 그 합격점을 높이게 되면, 학생들은 더욱 실무교육을 외면할 것이고 학원 교재와 강의에만 몰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질의 변호사가 배출될 수 있을까? 주입식 교육이 통하던 20세기에서는 모르겠지만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하는 21세기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따라서 양질의 변호사를 배출하려면 변시 합격점을 오히려 낮춰야 한다. 법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지식을 갖추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실무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또 그래야 고시학원 강사가 아니라 나 같은 실무가가 유용한 로스쿨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은선은 현재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소속으로, 기사의 수익금은 전액 로스쿨 정상화와 법조문턱 낮추기 활동에 후원됩니다.


태그:#신용인 교수,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주대 로스쿨, #로스쿨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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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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