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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에서 열리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대 여섯 명의 주민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사는 이웃들과 유대감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며 함께 글쓰기를 배우고, 계속 글을 써나가고 있다. 우리는 매달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마을을 보는 시선이 넓어짐을 경험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을 우리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기록하여 '마을 소식지'를 출간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서울시 마을 공동체 종합 지원 센터' 홈페이지에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은 마을의 다양한 문제와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들을 지원하고, 주민이 스스로 제안서를 작성, 접수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누구나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실행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 모임이 마을 소식지를 발간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2018년 3월 '강서구 마을 공동체 통합공모사업' 중 '우리 마을 활동 지원 사업' 부문에 '마을에서 읽고 쓰는 모임'으로 제안서를 냈고, 면접심사 자리에 갔다. 퀼트 작품을 만드는 팀, 장애인의 시선으로 보는 불편한 세상을 사진 찍는 팀, 악기 연주 팀, 작은 도서관 만들기 팀, 강서구 굿즈 만들기 팀, 이발 봉사를 하는 팀 등 다양한 주제로 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심사위원은 전문가들과 공무원 3명이었다. 그들의 점수 50점, 나머지 팀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점수가 50점이었다. 각자 제출한 제안서를 3분 이내에 발표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가 모인 배경과 왜 활동지원 사업에 지원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발표가 끝나자 한 명의 심사위원이 물었다. "마을박람회는 공란이네요? 안 하겠다는 겁니까?" 나는 사실 마을 박람회의 목적과 그 방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비워 둔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마을 소식지를 지원금을 받는 6개월 안에 어떻게 만들 거냐는 질문에는 발표시간 3분, 질의응답 3분 동안 가능한 답변만 생각하다 결국 답을 못하고 시간이 지나버렸다.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했고,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 그 질문의 의도에 부합하는 답을 하려고 애썼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심사위원과 모든 지원자들은 공동체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이미지인 강강수월래를 할 때처럼 둥글게 둘러서 앉아 있었다. "모두가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모두를 향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선과 귀와 두 손을 온전히 타인에게 내어주는 이 열린 자세"(<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201쪽)는'마을 공동체'이미지와 잘 맞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어떠한 소통도, 소통의 가능성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다시 질문하고 싶거나 감정적으로 불편해져도, 곧바로 어떤 이견을 제기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들과, 거기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지원자들이 준 점수에 따라 우리 모임이 지원금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 공동체 지원 사업은 시민의 세금인 서울시의 보조금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예산은 한정되었으나 지원 단체 수는 많으니 적절한 곳에 적절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공모사업 형태가 그 답일지는 의문이다. 공모 사업의 공고가 나오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모여서 계획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심사 일정에 맞춰 자료를 정리하고 작성하며 시간을 쓴다. 전문가들도 어딘가에 모여서 중요한 정책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심사 기준들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것이다.

둘은 그렇게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위해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동안 만들어진 생각과 가치를 연결할 수 있는 단계는 없이, 그저 둥글게 모여 앉아 결과물만을 가지고 누군가는 심사를 하고, 누군가는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구조에서 어떤 의미의'마을 공동체'가 생겨날 수 있을까.

올해도 3월이 되자 각종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들의 공고와 설명회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섣불리 지원하지 못했다. 작년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공모사업에 제안서를 내기 전 방향성을 논하는 워크숍을 일주일씩 하면서 우리가 동의하는 가치를 만들고, 마을 공동체로 확장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로부터 개인의 취미 생활일 뿐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우리의 방향성이 그들이 평가의 기준이라 말하는 '자발성, 공공성, 호혜성'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평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을 공동체 통합 공모사업 설명회에서도 정확한 기준의 내용에 대한 안내는 없다. 그들에게도 기준이 두루뭉술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A-Z까지 상세한 기준이 있으나 비밀이기 때문일까? 둘 다 '마을 공동체'와는 멀기만 하다. 공동체는 본디 무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무모하게 쓰는 소통의 과정에서 동력을 얻어 굴러가는 것이기에.

덧붙이는 글 | 월간 소셜워커 4월호에 기고하였습니다.


태그:#마을 공동체,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ㅂ, #활동 지원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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