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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씩은 오름에 올라가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그래놓고 실제로 올라간 건 2년 동안 두어 번 정도 밖에 안 된다. 이번 주에는 꼭 가자 해놓고 토요일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용기를 냈다. 체오름으로 정했다. 전에 한 번 가봤으나 굼부리 안엔 들어가보지 못했다. 산굼부리가 항상 궁금했다. 
 
체오름은 제주 동부지역, 송당에 있다.
▲ 체오름 지도 체오름은 제주 동부지역, 송당에 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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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오름은 제주도 동부 지역에 있다. 대천동 사거리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비자림로를 따라 평대로 조금 내려가다 왼쪽으로 돌아, 거슨새미 오름과 안돌오름, 밭돌오름을 지나면 나타난다.

23일 11시경 표선 세화리집에서 출발한다. 번영로를 따라 대천동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비자림로다. 중간에 도로확장공사를 다시 시작했는지 언론들 차량이 많았다. 현지민들은 재공사를 찬성하고 환경단체들은 반대하는 것 같았다. 
 
체오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본다. 한라산이 저 멀리 보인다.
▲ 체오름 능선에서 본 한라산 체오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본다. 한라산이 저 멀리 보인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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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네비게이션을 따라 체오름과 가장 가까운 길에 차를 대고 숲으로 들어갔다. 오름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오름 입구를 찾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로 가는 방법과 오름 부근에 가서 막무가내로 올라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나는 막무가내로 올라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정해진 입구가 없는 오름도 많기 때문이다. 길이 잘못되면 아내에게 혼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등산 단체가 올라갔는지 중간중간 빨간 리본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매우 좋은 안내표이다.

숲이 끝나고 가시덤불길이 나타난다. 이때 길을 잘 찾아야 한다. 다행히 좋은 길을 찾아 능선에 올랐다. 사방이 툭 트였다.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앞엔 오름들이 줄줄이 나열하고 있다.
 
체오름 능선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매우 반갑다.
▲ 체오름 삼각점 체오름 능선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매우 반갑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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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웬만한 오름에 올라가면 이런 표지판이 있다. 체오름의 경도와 위도는 위와 같다. 해발고도가 382미터로 제법 높다. 체오름은 한쪽이 툭 트인 능선을 가지고 있다. 생김이 체('키'가 표준말인 듯)를 담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단다.

키(체)는 곡식을 까부리는 데 사용하는 농사 도구다. 앞이 트여 있어 알곡을 남기고 껍질을 날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어릴 때 밤에 오줌 싸면 키를 뒤집어 씌워 소금을 얻으러 다니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능선에서 터진 입구쪽을 보면 이렇다. 남동쪽이 터여 키처럼 생겼다.
▲ 능선에서 본 체오름 입구 능선에서 터진 입구쪽을 보면 이렇다. 남동쪽이 터여 키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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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렇게 능선이 늘어져 있다. 반대쪽 능선으로 걸어간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길은 그 사이로 좁게 나 있다. 중간쯤 왔더니 시야가 확 트였다. 터진 앞쪽이 제대로 보이고 산굼부리도 잘 보인다. 발 아래로는 절벽이다. 사진 찍으려고 절벽 가까이 가면 아내는 고함친다. "조심해." 그만큼 절벽이 가파르다는 뜻이다. 
  
체오름 능선 절벽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
▲ 체오름의 진달래 체오름 능선 절벽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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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벌써 저렿게 되었나? 봄이 아직 덜 온 것 같은데, 진달래를 보니 봄이 다 와 버린 것 같았다. 아내에게 꺾어 바치기엔 절벽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체오름에서 내려가면 성산 일출봉이 정면에 보인다.
▲ 체오름에서 본 성산일출봉 체오름에서 내려가면 성산 일출봉이 정면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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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려간다. 제주 동남부 지역이 훤히 다 보인다.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왼쪽의 높은 오름은 아마도 다랑쉬오름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 옆에 고사리가 순을 내밀고 있다. 4월 초순부터 본격적으로 고사리를 꺾을 수 있다. 올해도 5월 중순까지 고사리를 꺾을 거다. 말려서 제사 있는 친척에게 한 봉지씩 보내줄 예정이다.

다 내려가니 제법 넓은 벌판이 나타난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지만 능선이 이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폭발 당시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을까. 그래서 바람 부는 쪽으론 능선이 생기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은 벌판이 되어 버렸을까? 얼마나 전에 폭발했을까? 성산 일출봉이 5천년 전, 다른 것은 300만 년에서 600만 년쯤 된다는데.
  
체오름 곳곳에 산자고가 피었다. 지금이 산자고의 철인가 보다,
▲ 산자고 체오름 곳곳에 산자고가 피었다. 지금이 산자고의 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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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가보지 못한 곳이 바로 산굼부리다. 안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약간 무섭단다. 가시밭길을 한참 걸었더니 좋은 길이 나타났다. 곳곳에 산자고가 이쁘게 피었다. 요즘 오름 올라가면 잘 볼 수 있는 꽃이다. 오름 꼭대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산자고가 요즘 대세다.

무슨 심원같은 데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안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르는 깊은 내부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바깥에서 불던 심한 바람도 여기선 잠잠해졌다. 햇빛은 쨍쨍, 바람은 잠잠,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드는 분위기, 그리고 아내와 나 외엔 아무도 없다. 더 들어간다. 
 
산굼부리 안쪽에 푸짐한 후박나무 한 그루 멋지게 서 있다.
▲ 체오름 산굼부리 가장 안쪽 산굼부리 안쪽에 푸짐한 후박나무 한 그루 멋지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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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들어왔다. 중간에 멋진 후박나무 하나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대한 팔을 벌리고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행복한 나무이기도 하다.

나무로 태어나서 혼자서 저렇게 좋은 조건에서 맘대로 팔다리를 벌리고 살 수 있다는 건 나무로선 최고의 행복일 거다. 여름에 왔더라면 저 나무 그늘 아래로 주저없이 들어갔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햇볕이 좋다.
 
굼부리 후박나무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넓긴 하지만 키는 낮은 편이다.
▲ 굼부리 후박나무 굼부리 후박나무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넓긴 하지만 키는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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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아래에서 보는 모습도 멋졌다. 정말 좋은 그늘이다. 단지 여름이 아니어서 빛을 발하지 못할 뿐이다. 오름지기 여성 두 분이 와서 옆에서 쉬고 있다.

우리도 나무 저쪽에서 나란히 다정히 앉아 쉰다. 빵과 과일을 나눠 먹는다. 난 요즘 외우고 있는 상령산을 단소로 분다. 3장 가서 자꾸 헷갈린다. 몇 번을 되풀이 해 본다. 독하게도 외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 안으로 다 외우고 말거다. 
  
체오름 굼부리에서 나오는 길에 현호색밭을 만났다. 파란색꽃이 제일 이쁘다.
▲ 현호색 체오름 굼부리에서 나오는 길에 현호색밭을 만났다. 파란색꽃이 제일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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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지고 있는 복수초들을 안타까이 바라본다. 내년 봄, 지금보다 조금만 일찍 오면 저 화려한 복수초를 만날 수 있을 텐데. 꽃 중에서 가장 완벽한 꽃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현호색도 만났다. 파란 현호색이 더 좋다. 왜냐고? 그냥 내가 그렇다. 파란 색은 약간 신비한 색이다. 파란 색 꽃은 어쩐지 연민이 든다. 왜냐고? 답은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현호색 밭에서 한참을 봄을 느꼈다.

더 나오니 길 가운데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옆엔 사유지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도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많이 어지럽혔나 보다. 들어가면 형사고발하겠단다. 올라가겠다는 시민과 들어가지 말라는 소유자간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체오름 산굼부리는 참으로 아늑하다. 능선보다 훨씬 낫다.
▲ 체오름 산굼부리 체오름 산굼부리는 참으로 아늑하다. 능선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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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으로 들어오면 입구의 넓은 벌판이 사실은 낮은 분화구 능선임을 알 수 있다. 입구 벌판보다 분화구는 더 낮았고 그래서 더 아늑했다.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체오름의 분화구는 거대한 자궁같은 거란 느낌이 든다. 그 한가운데 활짝 팔을 벌린 후박나무 한그루가 너무나 편안하게 앉아 있으니 더욱 편안한 느낌이 든다.

체오름은 능선 걸어다니기보다 산굼부리 안에서 놀고 쉬는 게 훨씬 좋다. 복잡한 일이 있나요? 어려운 일이 있나요? 짜증나는 일이 있나요? 그러면 체오름 산굼부리 안에 들어가 보세요.

태그:#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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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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