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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에 살면 문화적인 생활에서 어느 정도 불편하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인근 다른 도시로 가야 된다. 음악회, 미술전시장, 또는 다양한 공연을 만날 기회가 적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울을 빼면 여타 다른 고장들도 여기나 마찬가지니 이 정도 불편함은 서울을 떠날 때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
  
봄눈 내린 숲길 강원도 양양에서 봄눈을 만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다. 문화생활의 궁핍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또 다른 양양살이의 문화를 창작할 소재를 얻는다. ⓒ 정덕수
     
봄눈 속의 매화 설중화를 촬영하겠다며 응달의 눈을 가져다 꽃에 뿌리는 등 연출을 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사진을 얻으려면 좀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 정덕수
  
상대적으로 좋은 점도 많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은 요즘처럼 환경문제가 민감한 시기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산과 바다가 지척이라 시내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만 이용해도 언제든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마주한다. 거기에 덤으로 어제처럼 다른 볼일이 있어 나선 길에 때 아닌 폭설을 만나 꿈같은 풍경을 감상할 기회도 어렵지 않게 얻는다.
 
강원도는 설악산과 오대산을 비롯해 22개 국립공원 가운데 17개 산악형 국립공원 중 4곳의 국립공원을 지녔다. 그런 만큼 제법 걸출한 산악인도 여럿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강원도 원정대가 히말라야에 나가지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이 경제적 이유다. 하지만 2019년 4월 2일 최초로 강원도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출발한다.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 있는 '체로금풍'에서 원정대의 출정식이 3월 23일 있어 들렀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하나 둘 날렸지만 그러다 말겠거니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먼저 도착한 이들과 방으로 들어가 곡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다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눈발이 제법 굵어졌다.
  
봄눈 양양군 서면 갈천리로 일곱 살에 더부살이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분교에 입학을 하고 갈천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던 큰집에서 분교까지 걸어 다녔던 세 곳의 길 중에 가장 많이 이용했던 길목에 체로금풍이 있다. 그곳에서 봄눈을 만났다. ⓒ 정덕수
   
산수유꽃과 봄눈 눈발이 날리더니 제법 굵어져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산수유꽃에 쌓이기 시작하는 눈을 스마트폰으로라도 담을 기회 얻기 쉽지 않으니 더 좋은 화면을 만들려면 더 많이 촬영할 수밖에 없다. ⓒ 정덕수
   
산수유꽃과 봄눈 여린 산수유 꽃자루에 눈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쌓여간다. 용케도 저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 정덕수
 
이쯤 되니 원래 목적은 뒷전이고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 촬영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풍경도 좋고, 구룡령 아랫마을까지 피기 시작한 산수유꽃에 쌓이는 눈도 좋은 소재 아닌가. 입으로야 모두 "원정대 출정식 축하하려고 눈도 다 내리고"라 하지만, 함박눈으로 변한 봄눈에 정신들이 빼앗기긴 마찬가지였다. 강원도에 살면 봄눈이 낯설지는 않으나 온전히 그 과정을 지켜볼 기회는 많지 않다.
  
봄눈 속의 풍경 산수유꽃에 쌓이는 눈을 촬영하다 30분가량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그새 세상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했다. ⓒ 정덕수
   
산수유꽃과 봄눈 점차 봄눈은 의도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움직임이 빨라졌다. 세상의 어떤 작가도 이보다 빠르게 온누리를 일시에 채색할 수는 없다. ⓒ 정덕수
   
산수유꽃과 봄눈 스마트폰으로 접사를 하면 초점 외의 부분은 카메라와는 다른 느낌으로 뭉그러진다. 마치 얼음 속에 세상을 가두기라도 한 거 같은 이미지가 된다. ⓒ 정덕수
 
먼저 하늘이 굳게 잠기기 시작하고, 이어 산과 숲이 구름에 잠기면 온누리를 가득 채우려는 듯 눈이 날리기 시작하고 어느덧 쌓여간다. 어느 아침, 잠에서 깨 밖으로 나서다 문득 만나는 하얀 세상과는 다른 자연의 창작 시간 중심에 선 기분이다.

암갈색도 연초록이나 노란색도 모두 하얗게 칠되어 가는 자연이 그려내는 화폭은 단순하면서도 장중하다. 단 하나의 색으로 온누리를 그려낼 수 있음이 놀랍고 경이롭다.
산수유꽃과 봄눈 정선아리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왜 생겼나 왜 생겼나 / 네가 왜 생겼나 / 남의 눈에 꽃이 되도록 네가 왜 생겼나” 마치 봄눈과 산수유꽃이 서로를 연모해 이런 노래 한 구절 부르기라도 하지는 않을까. ⓒ 정덕수
   
봄눈 내린 풍경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무수한 정선아리랑엔 “세월아 네월아 나달 봄철아 오고가지 말아라 / 알뜰한 이팔청춘이 다 늙어를 간다”는 대목이 있다. 계절이 바꾸는 무언가의 발목을 붙잡아 둘 의도는 아닐까. 봄눈은 그렇게 잠간동안만이라도 떠나는 겨울로 봄날의 한 순간을 돌려세운다. ⓒ 정덕수
 
1시간 반가량 퍼붓던 눈발이 잦아들고 서서히 견고하게 닫혔던 하늘이 빗장을 풀고 열린다. 그 순간 자연은 또 다른 화면으로 바뀐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정지된 그대로로 보이지만 서서히 화면에서는 세상 본연의 색들이 깨어난다.
 
창망한 우주의 끝까지 비칠 듯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태양은 빛살을 뿌리기 시작한다. 이때, 대지를 뚫고 파랗게 싹을 올린 달래와 명이도 더 맑고 투명한 색으로 빛난다. 산수유꽃은 땅의 온기를 끌어올려 몸을 풀기라도 하는지 쌓인 눈을 사그라지게 한다. 영화 한 편 잘 감상한 느낌, 아니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출연할 기회를 얻어 썩 좋은 연기를 한 기분이다.
 
"강원도 동해안엔 5mm 정도 비가 내리고 영동 산간마을엔 5에서 10cm 정도 눈이 내릴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이렇게 말하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거리는 국도를 따라 한계령이나 구룡령을 찾을 일이다. 틀림없이 아주 근사한 연출자를 만나 세상이라는 화면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태그:#봄눈, #산수유꽃, #양양군, #구룡령, #양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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