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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간직하고 있는 애양원선교유적지 입구의 안내 비석
 버림 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간직하고 있는 애양원선교유적지 입구의 안내 비석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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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이었던 1909년, 목포에서 활동했던 포사이트 선교사는 급성 폐렴으로 위독했던 오웬 선교사를 치료하기 위해 광주로 향하던 도중, 길가에 쓰러진 한센병 여인을 광주까지 데려와서 당시 제중원 원장이었던 윌슨과 함께 이 여인을 가마터에서 치료했습니다.

이 사건이 지금의 애양원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나병원이 설립되는 계기인 것입니다. 이후 애양원은 1926년에 여수로 이전되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활동을 도와주었고, 지금도 성업 중인 병원을 비롯해 애양원 교회, 과거 병원으로 사용된 곳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역사박물관, 그리고 환자들을 보살피며 목회 활동을 했던 손양원 목사를 기리기 위한 손양원 목사 선교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을 향해 베풀었던 사랑을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인 애양원, 그곳을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향해 베풀었던 사랑 간직한 곳
 
과거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애양원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과거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애양원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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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은 열악했지만,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애양원이 천국과 같은 곳임을 보여준 아더 핸슨의 시 '버림받은 소녀'
 시설은 열악했지만,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애양원이 천국과 같은 곳임을 보여준 아더 핸슨의 시 "버림받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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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병원으로서는 국내 최초였던 광주 나병원, 1926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비더울프 나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35년에 '사랑으로 기른다'는 뜻을 지닌 애양원으로 또 한 번 이름을 바꿉니다.

애양병원은 지금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옮겼지만, 옛 건물은 선교사들의 사역과 병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박물관과 한센병 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죠. 박물관 입구에는 애양원장을 맡았던 윌슨의 친구인 아더 핸슨이 쓴 시(버림받은 소녀)가 적혀 있습니다.

당시 애양원은 재정상의 이유로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기 어려워서 문지기가 문을 닫고 출입을 통제했고, 환자들을 자비로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병원에 들어가지 못한 환자들은 바깥에 움막을 짓고 살며 입원을 기다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굶거나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수술실 천장에 빛이 들어오게끔 해서 수술해야 했고, 수도가 없어서 물을 길러다가 썼을 정도로 열악했던 시설이었지만, 한센병 환자들이 굶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문'과 같았던 애양원에 들어 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죠.

여수의 역사와 함께해온 애양원교회와 역사박물관(舊 애양병원)
 
애양원의 역사와 함께 이곳의 환자들을 위한 의료선교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애양원의 역사와 함께 이곳의 환자들을 위한 의료선교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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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한센병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애양원 역사박물관에 위치한 한센병 자료관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한센병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애양원 역사박물관에 위치한 한센병 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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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양원 역사박물관에는 애양원의 역사와 그곳에서의 의료활동을 담은 사진들, 과거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들, 그리고 과거에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료기구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 원형을 그대로 잘 간직하면서 선교사들이 남겼던 기록과 유산들, 그리고 애양원에서의 한센병 의료선교 역사를 잘 보여줍니다. 애양원의 역사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의료 선교사들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과 함께 위치해 있는 한센병 자료관은 한센병의 역사와 변천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들과 각종 의료기구들을 통해 한센병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인류가 한센병과 맞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데요.

그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중점으로 치료해 왔던 애양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곳이죠.
 
1926년 여수로 이전했던 애양원과 함께 해왔고, 손양원 목사가 전도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인 애양원교회
 1926년 여수로 이전했던 애양원과 함께 해왔고, 손양원 목사가 전도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인 애양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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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역사박물관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이 존재하는데요, 애양원교회(現 성산교회)와 토플하우스(舊 한성신학교)가 바로 그곳입니다. 먼저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미국 선교사들이 건축했던 애양원교회는 2층 석조 건축물에 종탑이 있는 단순하고 투박한 형태의 교회당이지만, 역사박물관 못지 않게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손양원 목사가 이곳에 1939년 전도사로 부임하여 6.25 전쟁 당시 사망할 때까지 목회 활동을 했던 곳이면서 일제의 핍박과 투옥을 무릅쓰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시골 교회 같아도 역사적으로는 꽤 중요한 교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센병 환자를 기독교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숙박공간으로 개조한 토플하우스
 한센병 환자를 기독교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숙박공간으로 개조한 토플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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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과거 애양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의료선교활동을 전개했던 스탠리 토플 원장의 이름을 딴 토플하우스도 이 선교유적지 내부에 위치해 있는데요. 사실 이 건물은 알고 보면 은근히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손양원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서 한센병 환자를 기독교 목회자로 양성하고자 1955년에 한성신학교가 설립되어 자리잡았지만, 1963년에 22명의 제2회 졸업생을 배출한 후 폐교되는 안타까운 일이 생깁니다.

그 후에는 병원 물품 창고와 의자제작실로 사용되었지만, 1986년 수양관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토플하우스라고 불리면서 숙박공간과 쉼터로 활용되고 있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난 수십 년의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보냈던 토플하우스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애양원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가지 않고 복음을 지키다 순교한 손양원 목사를 기리기 위한 사랑의 열매탑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애양원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가지 않고 복음을 지키다 순교한 손양원 목사를 기리기 위한 사랑의 열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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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교기념관

세습과 부패, 성추문으로 얼룩진 지금의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939년부터 애양원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던 손 목사는 한센병 환자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서 피고름을 빼냈고, 여순사건 당시 안재선이 자신의 두 아들(동인, 동신)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주고 도리어 양아들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25 전쟁 당시 애양원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여수에 남았으나 북한군에 의해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또한 손 목사가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이를 비판하다 감옥에 투옥되었을 당시 남들이 꺼려하는 화장실 옆에 자리했고, 수감자의 발을 가슴에 품고 잤으며, 주먹밥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일화도 존재합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었던 손양원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애양원 근처에 만들어진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었던 손양원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애양원 근처에 만들어진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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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었던 손양원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애양원 근처에 만들어진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었던 손양원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애양원 근처에 만들어진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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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병자들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한 손 목사를 기리기 위한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은 그가 환자들을 섬기며 사랑했던 애양원과 가까이 있는 기념공원에 위치해 있어서 지금도 그 정신을 우리에게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내부에는 손 목사 내외와 두 아들이 안장된 묘와 함께 손 목사의 두 아들이 사망한 후 올렸던 아홉 가지 감사제목과 3부자의 순교를 계기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을 모티브 삼아서 만들어진 사랑의 열매탑이 자리잡고 있죠.

최근 들어 발생한 여러가지 논란들로 기독교가 비난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가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 목사가 복수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군림보다는 섬김을 우선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했기에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3533847)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애양원을 가실 때는 순천터미널에서 순천 버스 96번을, 여수터미널에서 여수 버스 35번을 타고 가시면 편하게 가실 수 있습니다.


태그:#애양원, #손양원목사, #애양원역사박물관,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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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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