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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2014년 1월, 교학사의 우편향 역사 교과서 논란이 뜨거웠던 당시 교학사 양철우 회장은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했다. 출판계 원로인 양 회장은 인터뷰 서두에서 교과서 출판업자로서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1951년 창립한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만큼, 그의 자부심은 대단해 보였다.

"교과서(출판)를 강행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출판을 하는 데 있어서는 국민에게 지식을 보급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들한테 좋은 교과서를 보급해줄 수 있는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명감을 띠고 출판을 하는 거죠."
  
JTBC에 등장한 양철우 교학사 사장
 JTBC에 등장한 양철우 교학사 사장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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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좋은 교과서'란 무엇인가 물을 수 있겠다. 그건 차후에 묻기로 하자. 이날 인터뷰는 급기야 '막말' 논란으로 번졌다. 당시 손석희 앵커는 "교학사 교과서가 단순 오류보다 사관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다"며 "교과서로서의 신뢰감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현장에서 결국 채택률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물었다. 그러자 양 회장이 발끈했다. 그는 언론 탓, 심지어 '좌파 교원노조' 탓을 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건요, 매스컴이 꼽은 것을 6개월 동안 시다, 시다 하면 신 걸로 보이는 것과 같이 7월 달부터 계속 교학사 교과서가 어떻다 뭐다 그냥 매스컴에서 지지고 볶았어요. 또 역사 담당 선생은 대부분이 교원노조의 좌파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채택을 안 한 거죠. 내용을, 제대로 양심 있는 교장들은 다 그 교원 노조 놈들이 막 하니까 귀찮아서 아이구~ 맡겨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도 제대로 된 학교에서는 저한테 연락이 와요. 책을 다섯 부만 보내 달라, 검토해서 괜찮으면 쓰겠다. 그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손 앵커께서 교학사를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진짜 어디다 내놔도 8종 중 제일 잘 된 교과서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교원노조 놈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양 회장에게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교과서'란 무엇인가, 출판계 원로로서, 교과서 출판업자로서의 사명감은 무엇인가. 국정교과서 발간을 꿈꾸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함께 좌절한 전력의 교학사. 이들이 발간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수험서에 실렸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하 사진을 보면서, 양 회장의 막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한국사 교재에 실어 물의를 일으킨 교학사가 21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편집자의 단순 실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한국사 교재에 실어 물의를 일으킨 교학사가 21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편집자의 단순 실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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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고됐던 교학사의 사고

"교학사가 2018년 8월 20일에 출간한 한국사 능력검정(1,2급) 참고서에 실린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 사진은 편집자의 단순 실수로 발생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검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학사는 이미 온오프라인에 배포된 교재를 전량 수거하여 폐기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모든 분들께 지면을 통해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가족분과 노무현 재단에는 직접 찾아뵙고 사죄의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학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한 사과문이다. 교학사 측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입 직원이 구글 이미지를 단순 검색해서 넣으면서 실수한 것"이란 해명을 내놨다. 과거 SBS 등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간 베스트'(이하 일베) 이미지를 사용,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던 방송사의 해명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니, 그 해명을 고대로 따라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해당 사진을 보면, 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확연하다. 책과 잡지 등 출판물을 한 권이라도 직접 편집해 본 이라면 알 것이다. 저 해명이 얼마나 성의 없는 답인지를.

납득이 가는 것 하나는 있다. 교학사의 이런 '사고'가 예고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교학사는 이미 구글 및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교과서용 자료 사진을 공수했다는 사실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2013년 9월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자.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는 외부 인용사진의 58.3%(561개 중 327개)를 인터넷 포털에서 인용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근현대사 4~5단원에서는 각각 무려 67.5%(148개중 100개), 82.7%(87개중 72개)를 인용했다."
 

우편향 사관만 문제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가 양철우 회장에게 지적한 부분 역시 이 같은 오류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김태년 의원 측은 "현대사 부분을 집필한 권희영 교수의 경우 인용사진 87개 중 86개가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진이었고 단 1건만 교과서포럼이 집필한 대안교과서에서 인용됐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중 출처를 외교통상부로 표기한 통계의 경우도 실제 외교통상부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전혀 다른 여러 연도의 데이터를 저자가 연결해 만들어낸 것이었다"며 "사료탐구 자료도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있는 이승만 단파방송문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지적했다.

다른 교과서의 경우, 대부분 박물관이나 정부기관, 전문서적, 신문기사 등 공신력 있는 곳에서 사진을 인용했다. 헌데, 교학사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게시판에 올라온 검증 안 된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썼던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해 문제된 교학사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고급(1.2급) 최신기본서> 페이지
 고 노무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해 문제된 교학사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고급(1.2급) 최신기본서> 페이지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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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의 진심 안 보이는 사후약방문
 

단순 실수라는 교학사의 변명을, 과연 누가 곧이곧대로 수긍할 수 있을까. 국정교과서 출간을 꿈꿨던 출판사라면, 이미 지적돼 왔던 오류나 잘못된 관행은 제거했어야 옳지 않나. 편집자의 실수라는 해명 역시 꼼꼼함이 최우선인 출판 편집과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교학사가 공언한대로 전량 회수 폐기나 노무현 재단에 대한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교학사는 노무현 재단과 유족 측에 사죄하고 문제가 된 교재를 전량 회수 폐기한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이로는 부족하다. 내부적으로 철저한 징계와 문책은 물론이며 응분의 법적 책임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교학사는 이전에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보수 편향 국사 교과서를 집필해서 학부모들에게 지탄받고 어느 학교에서도 채택되지 못하는 불명예를 얻은 바 있다. 교학사는 다른 곳도 아니고 국민들의 지식 함양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습 교재를 만드는 곳이다. 잘못이 거듭된다면 회사의 근본적 신뢰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데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1일 정의당 김동균 부대변인의 논평 중 일부다. 김 부대변인은 "교학사, 사죄로는 부족하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를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엔 교학사 구성원들의 역사 인식과 윤리적 감수성이 근본적으로 고장나 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논란과 비판을 자처한 것이 아니고서야, 교학사와 해당 직원이 상식적으로 분간이 가능한 사진으로 고인을 모독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해당 사진의 내용과 맥락 때문이다. 해당 사진은 KBS2 드라마 <추노>에서 노비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화면에 고인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고의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교학사의 이후 대응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22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교학사 측 관계자가 이날 오전 아무런 연락도 없이 노무현재단 사무실에 방문했다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무턱대고 와서 사과를 하겠다는 태도에 (일단)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며 "(교학사 측에)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다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재단은 이날 오후 재단의 입장이 담긴 성명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교학사는 향후 한국사 교재 제작 사업을 일절 중단한다고 알렸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미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면서 교학사가 내렸어야 할 결정이 아닌가 싶다.

우편향도 우편향이지만, 제대로 된 검증도 없고, 제대로 된 자료 사진조차 싣지 못하는 교과서가 "아이들한테 좋은 교과서"일 리 만무하다. 이번 논란은 어쩌면 박근혜 정부 때 폐기돼야 했던 교학사 한국 교과서가 폐기되지 못하고 연명돼 왔기에 일어난, 예고된 사고라 할 수 있다. 교학사의 사과와 향후 조치들조차 진심 없는 사후약방문으로 보이는 이유다. 교학사는 이번엔 누구 탓할 것인가.

태그:#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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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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