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영화 포스터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영화 포스터 ⓒ Universal Pictures

 
영화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선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 헌터 S. 톰슨에 대해서 우선 알아둘 필요가 있다. 레이벤 선글라스, 벙거지 모자, 반바지, 점퍼, 바짝 잡아 당겨 신은 양말, 입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담배와 위스키가 담긴 술잔.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헌터 S. 톰슨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마약, 총과 같이 자극적인 단어들이 그의 이름 뒤에 따라 붙는다.

평생을 괴짜로 살았던 그는 취재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글쓴이의 주관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곤조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1937년생인 그는 대학이 아닌 공군에 입대해 부대 신문의 스포츠 편집자로 일을 하면서 저널리즘계에 입문했고, 제대 후에는 프리랜서 기자로 일을 했다. 20대 초반 그는 뉴욕에서 비트 문학에 심취했고, 20대 후반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겨 히피 문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을 지배했던 반문화의 희망과 실패를 직접 체험한 그는 닉슨 정권이 들어서고 소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를 출간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라스베가스 사막에서 열리는 오토바이 경주에 대한 취재 의뢰를 받은 저널리스트 라울 듀크가 자신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곤조와 함께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수십 가지의 마약을 쉬지 않고 복용하며, 공포와 혐오가 범벅된 환각을 경험하는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약의 종류와 그 증상에 대한 묘사는 마치 생체 실험 보고서처럼 상세하고 생생해서 환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그 낯설고 괴이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소설은 1998년 테리 길리엄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헌터 S. 톰슨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주인공 라울 듀크는 톰슨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조니 뎁이, 변호사 곤조는 베네치오 델 토로가 연기했다. 영화는 소설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것은 기이한 상상력과 신랄한 풍자, 해학으로 시대의 모순을 표현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블랙 코메디의 대가, 테리 길리엄이 연출을 맡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영화의 첫 장면. 사막을 가르는 빨간색 컨버터블 운전석에 라울 듀크가 앉아있고, 그 옆에는 곤조가 셔츠를 풀어헤친 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약 기운이 오른 라울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박쥐 떼를 보고 위협을 느낀다. 그는 박쥐 떼가 약기운에 의한 환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라울과 곤조의 환각을 함께 체험하며 광적인 에너지의 발산과 그 후 찾아오는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라울의 얼굴은 땀과 기름으로 번들거리고, 힘을 잃은 두 다리는 휘청거리며 불안 가득한 두 눈은 쉬지 않고 주변을 경계한다. 목소리는 의자와 상관없이 높아졌다가 길게 늘어지고, 멀쩡한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괴물로 변해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줄 알고 주저앉아 버린다. 라스베가스는 도시가 아닌 동물원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인간들은 파충류의 탈을 쓰고 있다. 가축들의 분뇨로 축축한 바닥이 발을 적시고, 빙글빙글 도는 세상 속에서 원초적 욕망만 남은 파충류들이 곧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든다.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라울은 마약이 제공하는 환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오토바이 경주 취재는 뒷전이고, 두 사람은 잡지사가 제공하는 호텔 방에서 마약에 취해있을 생각뿐이다. 기분을 띄우는 약, 기분을 죽이는 약, 소리치게 하는 약, 웃게 하는 약, 등등 쾌락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이들의 감정과 상태는 그들이 복용하는 약에 의해 좌우되는데  마약에 취한 두 사람의 상태를 보고 있자면 마약은 쾌락의 도구가 아닌 몸과 정신을 학대하는 도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망상은 가학적인 행동으로 확대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욕조에 몸을 담군 상태에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196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사이키델릭 명곡으로 lsd 환각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을 듣고 있던 곤조가 라울에게 욕조 안으로 라디오를 던지라고 발악하는 장면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약에서 깨어나면 기억나지 않는 기행의 잔해들이 널려있다. 회복도, 극복도 불가능한 잔해들을 보면서 후회와 반성은 없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과격함과 산만함 속에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이 살아있는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는 1960년대 중후반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독특한 보고서다. 

한편의 광시곡과 다름없는 영화 사이사이, 화자 라울의 나레이션과 함께 베트남 전쟁, 반전 시위, 우드스탁 공연을 즐기는 히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불안과 광기가 팽배했던 1960년대 중반, 젊은이들은 자유와 평화를 꿈꾸면서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었다. LSD는 문화의 한 부분이었고, 그것이 안내하는 환각 속에서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리고 기성세대와의 싸움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정당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자신들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꿈은 부서져 버린다. 거대했던 꿈은 실패로 돌아가고, 실패의 잔해 속에서 작품의 원작자 톰슨은 라울 듀크의 입을 빌려 미국 사회 전체를 조롱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Universal Pictures

 
라울과 곤조, 그들은 겁에 질려있거나, 맨 정신(술이나 약에 취하지 않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니거나, 결국에는 더렵혀지고 좌절될 수밖에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이 모든 만남들이 쓴 웃음을 자아낸다. 라울과 곤조가 벌이는, 꿈에서나 가능할 기행의 과격함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따로 없고, 앙각으로 담긴 인물들의 모습은 기괴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며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는 이 독특한 코미디 안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사지 육신이 멀쩡해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는 라울의 모습을 보면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그 많은 마약을 하고도 무사하다니! 신기할 정도다.)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길, 라울이 탄 차 뒤로 성조기가 펄럭이고, 광적인 망각과 안전, 그리고 모호함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괴물 왕국에 사는 또 다른 괴물일 뿐이라고 말하는 나레이션과 함께 라울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과연 라스베가스에서의 광기는 끝난 걸까?

추신.
1. 영화 중반부, 라울이 1965년 샌프란시스코 클럽에서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카메오 출연을 한 헌터 S. 톰슨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2. 라울 듀크를 연기한 조니 뎁은 헌터 S. 톰슨의 절친한 친구로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럼 다이어리>에도 출연했고, 또한 제작을 맡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헌터 S. 톰슨 테리 길리엄 곤조 저널리즘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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