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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부활을 원하는 이는 ‘고시체제’만이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고, 그래야 수입이 보장되니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피라미드가 뒤집히길 원치 않는 누군가들의 목소리와 닮아 있다. 어쩐 일인지 말이다. 사진은  드라마 ‘SKY 캐슬’에서 피라미드를 신봉하는 전직 법조인 차민혁 교수
 사법시험 부활을 원하는 이는 ‘고시체제’만이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고, 그래야 수입이 보장되니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피라미드가 뒤집히길 원치 않는 누군가들의 목소리와 닮아 있다. 어쩐 일인지 말이다. 사진은 드라마 ‘SKY 캐슬’에서 피라미드를 신봉하는 전직 법조인 차민혁 교수
ⓒ 출처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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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로스쿨의 아픈 손가락들

지금까지 로스쿨에서 공부 중이거나 로스쿨 졸업 뒤 변호사시험(이하 변시) 공부를 하는 이, 그리고 이른바 '변시 낭인'이나 '오탈'이 된 이 등을 만나보았다.

이들은 '지금 로스쿨은 고시학원'이고 '로스쿨생은 고시생'이라며 어서 로스쿨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은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진짜 법조인 교육을 받고 싶어서"라고 했다. 강원대 로스쿨 재학생은 "현재의 변시 합격률은 법으로 명문화된 것도 아니고 단지 법무부의 일방적 지침에 불과"하다면서 "만일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제라도 변호사의 자격 기준은 다시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교 로스쿨의 학생회장이자 전국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이석훈 의장의 책임 있는 후속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로스쿨을 최근 졸업한 이는, 연세대 로스쿨이 의료법 특화 로스쿨이란 것은 '거짓'이며 지금 전국의 어느 로스쿨에도 '특성화 교육', '전문적 법조인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원광대 로스쿨을 졸업한 이는 자신이 경험한 또 다른 전문교육기관인 수의대와 로스쿨의 교육을 비교하며 똑같이 실습, 실무 중심의 전문교육기관인데 수의대와 달리 로스쿨에선 필기시험 위주의 고시 공부에만 열을 올리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로스쿨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오탈'이다. 변호사시험 응시금지자들은 오탈이라 불리는 응시금지는 위헌을 넘어 기네스북에 오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로스쿨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오탈"이다. 변호사시험 응시금지자들은 오탈이라 불리는 응시금지는 위헌을 넘어 기네스북에 오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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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저'란 오명이 무색한 아픔들도 있었다.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로서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입학한 이들은, 자신들은 로스쿨에 입학은 가능했어도 고시학원화된 로스쿨에서 막대한 사교육비 등 때문에 실질적으로 변호사가 될 수는 없었다며 "더이상 특별전형자들을 뽑지 말라"고 이는 "희망고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법조인 자격 없이 배출되는 로스쿨은 '전문법조인양성기관' 아닌 '전문실업자양성기관'이라며, "로스쿨은 청년실업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또 "졸업년도부터 5년이 지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더 이상 변시에 응시할 수 없게 하는 응시금지제도는 위헌을 넘어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라며 눈물 흘리는 일명 '오탈자'들도 있었다.

처지가 저마다 조금은 다르고 주장과 호소하는 괴로움의 종류도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모두가 '비정상적인 변시 합격률'에서 비롯했다. 해마다 로스쿨엔 2천 여 명의 학생들이 입학한다. 로스쿨 입학생들 중 법조인의 푸른 꿈을 품고 입학하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러나 3년 뒤 이들 중 과반수는 법조인이 될 수 없다. 20% 정도는 평생 법조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법조인이 될 수 없는 비율은 더 늘어난다.

다시 사법시험체제로 돌아가야 하나 
 
지난달 19일 전국 로스쿨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총궐기대회에서 천여명의 학생들이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외쳤다.
 지난달 19일 전국 로스쿨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총궐기대회에서 천여명의 학생들이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외쳤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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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학생들은 위와 같은 이유로 지난달 18일 청와대 앞에서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외치는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관련 기사들엔 사법시험을 부활해야 한다, 로스쿨을 폐지해야 한다는 댓글들이 적지 않았다. 기자는 그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한 명의 연락처를 어렵게 구해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어쩌면 정말 로스쿨 폐지가 답이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익명을 조건으로 기사화 하는 것을 허락받아 통화 내용을 소개한다).

"나는 로스쿨 설립 취지에는 공감한다"

사법시험 존치론자가 처음 꺼낸 말은 의외였다. 그는, 실무와 결합되고 특성화된, 또 전인적인 법조인양성교육기관을 만들겠단 그 취지는 훌륭하다고 했다. 다만 그것은 우리나라에선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그래서 로스쿨도 결국 '변시 학원화' 된 것이 아니냐고 했다. 또 로스쿨 학생들은 '로스쿨의 변시 학원화'에 거리로 나와 '정상화'를 외쳤지만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로스쿨이 지금이라도 제 모습을 찾는 것, 로스쿨이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로스쿨에서 학생들이 변시에만 매진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통과하기 너무 어려운 시험, 고시형 시험을 공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죠. 지금이라도 그냥 시험만 두고 로스쿨을 없애야 합니다."

이에 법조인이 되려면 고시공부 외엔 답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면서 "본래 변호사가 되려면 시험 공부를 오래 하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실무에서 이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 암기형 공부는 불필요하단 얘기가 있지 않느냐고 하자 돌아온 답은 "그래야 가릴 수 있으니까" 였다.

"만 명이 법조인 되고 싶어도 나는 한 1천명, 양보해서 1500명까지만 법조인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선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여기서 사시나 변시 이런 시험이 제일 공정한 방법인 거죠."

결국, 선발을 위해 소수를 뽑고, 소수를 뽑으려니 시험이 어려워지는 거란 설명이었다. 좀 더 듣고 싶었다. 이번엔 "그럼 왜 소수만 선발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그래야 (법조인의) 수입이 보장되는 것 아니냐" 였다. 소수로서의 법조인이 수입 등에서 혜택을 누리는 것은 인재를 등용하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로스쿨생 울리는 '변시의 사시화', 그리고 '수입의 보장'

사법시험존치론자는, 변시로 소수만 선발하고 다수를 잘라내는 현행 로스쿨 제도의 변호사 자격 취득 방식에 관하여 '그것이 얼마나 법조인의 능력과 자질 함양에 효과적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선발'과 '공정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수입의 보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사실 로스쿨생들도 피해자라고 본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고액의 등록금을 내고도 많은 이들이 법조인이 될 수 없는 점을 말한 것이다. 기자도 생각한다. 로스쿨생들은 피해자다. 하지만 왜 피해자인지에 대한 생각은 그와 다르다. 로스쿨 입학의 높은 관문을 통과해 많은 등록금을 내고 3년의 시간을 보냈어도 로스쿨생들은 '실무와 결합되고 특성화된, 또 전인적인 법조인 양성교육'을 받지 못했다. 로스쿨 설립의 이유가 된 구시대적 '사시형 공부'에 따로 학원비를 들여 매달려야 했다. 그래서 피해자다.

그렇게 공부해도 다수의 수준이 어떠하든 무조건 일정 수만 법조인이 되는 '사법시험형 법조인 선발 방식'으로 많은 이들이 변시 낭인이 되고 변시 응시금지자가 됐다. 그래서 또 피해자다.

사법시험존치론자는 사법시험 부활이 대안이라며 로스쿨생이 피해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미 사법시험은 변호사시험의 모습으로 부활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로스쿨생이 피해자인 진짜 이유다. '변시의 사시화', 바로 그 때문에 로스쿨생들은 거리에 나가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하라"고 외친 것이다.

사법시험 부활을 꿈꾸는 이는 '고시체제'만이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으며, 그래야 수입이 보장되어 우수한 인재들이 몰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피라미드가 뒤집히길 원치 않는 누군가들의 목소리와 닮아도 참 많이 닮아 있다. 어쩐 일인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은선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소속으로, 본 기사의 수익금은 전액 법조문턱낮추기 및 로스쿨 정상화 운동에 기부합니다.


태그:#사법시험부활, #법조문턱낮추기, #로스쿨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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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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