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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청와대 앞에선 전국 로스쿨 학생들의 총학생회인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이하 법학협) 주최로 천여 명의 로스쿨 학생들이 모여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당시 한 로스쿨 교수는 그간 나서지 못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함께 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대체 지금 로스쿨에선 무슨 일이 있어 학생들은 광장으로 나오고, 교수들은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함께하겠다고 하는 걸까?

20일 전북대 로스쿨 정영선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눈으로 현 로스쿨 교육을 들여다보았다. 특히 인권법 학자인 그를 통해 로스쿨의 '법조인 인성 교육'에 대해 들어본다. 다음은 정영선 교수와의 일문일답. [기자말] 

 
영화 <변호인>에는 속물 변호사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쩌면 지금처럼 로스쿨에서 인권교육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영화처럼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인권변호사, 인권검사, 인권판사는 줄게 되지 않을까?
 영화 <변호인>에는 속물 변호사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쩌면 지금처럼 로스쿨에서 인권교육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영화처럼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인권변호사, 인권검사, 인권판사는 줄게 되지 않을까?
ⓒ 위더스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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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법 수업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개강 첫날이었다. 강의실에선 단 1명의 학생이 민망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13년 교수 생활에서 처음이었다. 우린 진즉부터 폐강 대열에 합류했는데 용케 잘 버틴다며 다른 로스쿨 유사과목 담당 교수들의 부러움을 받아왔지만, 시간만 조금 늦추어졌을 뿐 '수강생 없는 비시험 과목' 폐강 현실이 어김없이 내게도 찾아온 거다. 그 수업이 인권법 수업이었다."

- 로스쿨 설립 초기의 인권법 수업은 어떤 모습이었나?
"그때는 인권법 수업이 폐강되는 일이 없었고, 40명에 이르는 로스쿨 학생들의 요구로 '현대사회와 인권'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그 강좌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현상을 '인권'에 비추어(그래서 나는 이 수업에 '인권의 프리즘'이란 별칭을 붙였다) '어떻게 판단해야 인권적으로 가장 타당한가'의 답을 발표와 토론을 통해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전통적 주제인 사형제도, 양심적 병역거부, 간통죄를 다시 해부하는 것은 물론, 노인 실업 및 성(性) 문제, 삼성 반도체 산업 재해와 백혈병 환자 문제, 외국인 노동자 및 결혼이주 여성의 인권, 동물 전염병과 매몰 처분 관련 해당 노동자의 인권 등 우리 사회의 최신 이슈들도 논쟁 테이블에 올라왔다. 수업 시간이 훌쩍 넘도록, 교수가 수업을 마치고 나간 뒤에도 늦도록, 학생들은 뜨겁게 토론을 벌이곤 했다." 
 
전북대 로스쿨 인권동아리 ‘퍼블리코’는 초기에 왕성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해당 동아리 지도교수인 정영선 교수의 설명이다.
 전북대 로스쿨 인권동아리 ‘퍼블리코’는 초기에 왕성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해당 동아리 지도교수인 정영선 교수의 설명이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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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의, 강의실 밖 인권 교육은 잘 되고 있는가?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로스쿨의 인권동아리, '퍼블리코'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외부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듣거나 선후배나 회원들끼리 몇 차례 친목다지기 정도만 하고, 법률지원 등의 봉사활동이나 전국대회 출전 등은 거의 포기한 상태다.

로스쿨 설립 초기엔 이렇지 않았다. '퍼블리코'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결혼이주자들을 위해 한국생활 적응 지원을 기획해 '해외이주여성들이 행복해지는 비밀'의 줄임말인 '해밀'이란 법률상담 매뉴얼을 만드는가 하면 (후에 이를 전국대회에 출품해 입상도 했다), 소년원 봉사,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봉사, 어린이도서관 인권도서 및 인권영화 봉사, 배리어 프리 공연 등의 활동도 했다. 또 전국 국제인권모의재판대회 등에서 수년 간 연속 입상했다. 당시 동아리 활동을 한 학생들은 법조인이 된 뒤 사회 곳곳에서 인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 인권법 수업 폐강이나 인권동아리 활동의 침체가 왜 문제인가?
"인권법 수업은 폐강되고 인권동아리는 문 닫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그 이유가 '변호사시험 합격률 지상주의의 거센 파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권법 수업 폐강은 올해부터 1학년부터 '족치는 것'을 위해 로스쿨 1학년 학사과정에서 '비시험 선택과목'을 아예 없애고 2~3학년 과목으로 이동 배치시키는 강수 속에서 발생했다.

이런 학사운영 변화에 학생들은 반발하지 않는다. 지금의 로스쿨에선 내 옆 동기들을 가상의 적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마음먹게 하는 '배틀로얄식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속에서 학생들은 인권'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비법조인인 로스쿨생의 인권감수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거다.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측은하고 안쓰러우면서도, 인권의 소중한 가치 대신 법률 지식을 몇 개 더 머리 속에 넣으려는 그 모습이 과연 올바른 예비법조인의 모습일까 싶다. 사회정의와 약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을 차단한 푸석한 대뇌 속에 메마른 법률 지식만을 차곡차곡 채우는 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예비법조인의 모습일까? 또 과연 이렇게 인권 교육에 소홀한 로스쿨을 두고 사법개혁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인권 교육과 사법개혁의 관계는?
"로스쿨의 설립 목적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법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질적으로 우수한 법률가 양성'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스쿨들이 각 로스쿨의 교육 목표로 '공익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인권에 이렇게도 무관심한 로스쿨생들이라면 이들이 법조인이 되었을 때 공익과 정의를 추구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금 상태로는 로스쿨 제도가 과연 종전의 사법시험 체제 보다 더 나은 제도인지, 과연 이것이 사법제도 개혁을 실현하는 법조인 양성 시스템인지 의문이 든다."

- 지금 로스쿨의 인권교육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가?
"로스쿨의 인권교육 붕괴는, '조그마한 여유조차 없는 것'에서, 이는 다시 '급격한 변호사시험 합격률 하락'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안정적 합격률에 기반한 여유로움 덕에,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여지가 있었고 나는 전공을 백분 발휘해 강의 및 관련 활동을 하며 보람된 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시험이 철저한 정원제 선발형 시험으로 운용되면서 3기 학생들부터는 여유가 사라졌고 정상적인 인권 교육이 불가능해졌다. 학생들은 가혹한 수험공부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해당 학교들은 비록 쉬쉬하고 있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까지 생겼다."

- 해결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나는 아직 로스쿨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로스쿨을 통해 사법시험체제에서보다 더 많은 '인권변호사', '인권 검사', '인권 판사' 들이 배출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이라는 수험공부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고 '처음처럼' 제대로 해나갈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물론 요즘의 로스쿨은 이런 기대를 자꾸만 무너지게 하지만, 모두가 합심하면 이룰 수 있다. 다만 한 두 사람의 절규와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로스쿨이 암흑 세계로 질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가능한 한 많은 로스쿨 학생과 교수, 그리고 많은 법조인들이 힘을 합쳐 이 로스쿨의 조종간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 한다. 그 중 하나로 새로이 출범하는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관련기사 - http://omn.kr/1hqva)'에 교수 회원으로 가입을 하였다. 다른 많은 회원들과 함께 법실련을 통해서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은선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http://lawschool.dothome.co.kr)소속이며, 기사의 수익금은 전액 법조문턱낮추기 및 로스쿨 정상화 운동에 기부합니다.


태그:#정영선 교수, #배틀로얄형 법조인, #로스쿨의 인권교육, #로스쿨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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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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