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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故 박선욱 간호사 산재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19.3.6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故 박선욱 간호사 산재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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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서울아산병원 입사 후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가 된 사건이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 죽음을 산재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박선욱 간호사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SNS 메시지들을 읽어보면 그녀는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무섭다... 심장이 마구 떨린다...' 그녀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은 업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을까? 무엇이 박선욱 간호사를 죽음까지 선택하게 했을까? 나는 생전의 박선욱 간호사를 만난 적은 없지만 왜 그랬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가 박선욱 간호사를 알기 때문이 아니라, 병원의, 중환자실의 환경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박선욱 간호사와 똑같이 내과 중환자실이 첫 발령지였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관두면 될 것 아니냐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나 역시도 신규 간호사 시절 힘들어하면서도 사직이라는 옵션 자체를 고려하지 못 했다. 국내 최고라 손꼽히는 병원에 입사했을 때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기대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거는 기대, 그리고 사직이라는 엄청난 일을 선택해야 하는 부담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결국 출근이 두려운 지경에 이르러도 선뜻 병원을 그만두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그냥 매일 조금씩 시들어가면서 우울함과 싸워가며 버틸 뿐이었다. 하루살이처럼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기길 바라며 근무 스케줄대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두렵고 불안해도... 우리는 우울하게 버텼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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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욱 간호사가 아산병원을 지원할 때 썼던 자기소개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기댈 수 있는 버팀목과 같은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자기소개서에 적은 대로 박선욱 간호사는 꾸준히 노력했다. 유서에 나와 있던 것처럼 6개월간 매일 서너시간의 잠만 자고 끼니를 걸러 가면서 정말 꾸준히 노력했다. 무려 13kg이 빠질 정도로.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박선욱 간호사는 비쩍 마른 몸으로 매일 무거운 전공책 등을 가득 들고 다녔다고 한다. 계속 노력했을 것이다. 자기가 일을 못 하는 것이, 자기가 민폐인 것이 마치 잘못인 양 잠자는 시간과 밥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공부했을 것이다.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는 늘 민폐 취급을 받는다. 두 달 남짓한 신규 간호사의 교육이 끝나고 독립하는 날은 며칠 전부터 공지가 될 정도로 모두가 긴장하는 날이다. 신규들은 어떤 기상천외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며,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며 신규 간호사를 폭탄 취급하곤 했다. 유독 일을 못 하는 특정 신규간호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신규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모든 신규 간호사가 그러하다면 그건 신규 간호사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왜 충분한 교육을 해주지 않는가? 왜 업무가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채로 독립을 시키는가? 왜 갓 독립한 신규 간호사에게 연차가 오래된 간호사와 똑같은 업무량을 수행할 것을 강요하는가? 왜 신규 간호사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가?

지금까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아무도 병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혹독한 신규 간호사 시절을 견딘 사람들만 병원에 남아 관리자가 되기 때문일까? 힘들다고 얘기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그런 거다, 우리 때는 더 했다'처럼 꼰대 같은 말뿐이다.    

'우리 때는 더 했다?' 그렇게 모두가 시들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 성내천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8.3.24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 성내천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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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욱 간호사의 자살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긴박한 업무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여지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기 학습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여지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인의 정신적인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이상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이 되므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심의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박선욱 간호사의 경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 역시 업무상재해라고 인정한 것이다. 산재 인정에 있어서 까다로운 근로복지공단조차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병원의 신규 간호사 교육부족 및 과중한 업무 부담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간호사들이 똑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규 간호사들은 박선욱 간호사가 죽어간 그 자리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더는 감추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원영 기자는 '고 박선욱간호사 사망사건 진산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입니다.


태그:#박선욱간호사, #과로자살, #서울아산병원,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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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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