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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정준영-승리, 시간차 경찰 출석 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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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성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내가 기억하는 한 남성의 성욕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여고생 시절부터 발목을 드러내고 다니면 남학생들이 쳐다볼 수 있다며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훈계를 들었다. 스무 살 넘어 사귄 남자친구가 잠자리를 원했을 때, 나는 내키지 않아 거부하면서도 그의 성욕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한편으론, 사건 기사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며 성폭행은 범죄지만 이 사회의 범죄 피해자는 '그러게 왜 그런 옷차림을...' 이라는 식의 '원인 제공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여성은 오랫동안 '너무 밝혀도 안 되지만, 남자와의 잠자리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는 모순된 말을 들으며 성욕을 억압받아온 반면, 남성의 성욕은 언제나 '원래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자꾸 가해자의 범행을 '자연스러운 욕구의 결과'라거나 '남성이니까 할 수 있는 장난이자 혈기 넘치는 청춘의 실수'라고 표현하며 공감하려 든다. 

여성과의 성관계를 몰래 영상으로 찍어 단톡방에서 공유했던 이번 '정준영 사건'은 중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단에 올라오기도 했다. 명백히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동영상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 영상을 찾는 것일까.

사람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관심을 쏟았다. 피해자 리스트를 추측하고, 공유했다. 심지어 한쪽에선 여전히 '솔직히 건장한 남성이면 공감할 것이다. 정준영이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너무한 것 아니냐. 저러다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동정론이 공공연하게 돌기도 한다.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유 

우리는 '내가 경험했던 일' 혹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었던 일'에 더 쉽게 공감한다. 작년에 PC방에 간 남성이 사소한 시비에 휘말렸다가 죽임을 당해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칼로 찌르는 방식이 잔혹해서 담당 의사가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는 울분을 토했을 정도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의 남편은 "PC방 가는 게 괜히 무섭다"고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그는 예전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던 사람이다. 홀로 밤길을 걷는 일이, 혼자 사는 여자의 자취방 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일이, 어쩌면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있을지도 모를 낯선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이 왜 공포인지 자연스레 알 만한 데이터가 그에게는 부족했다. 

여성들은 누구나 숨 쉬듯이 안고 사는 공포가 그에겐 '알긴 하지만 실감 나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PC방 사건의 경우, 일상적 공간에서 남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실질적인 두려움과 분노를 안겼다. 

이른바 '성별 갈등'이 있을 때 남성들이 무고죄에 반응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성희롱을 가벼운 장난처럼 넘기고 성폭행에 대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던 남성들도 무고죄에 대한 처벌만은 강화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했다. '내가 할 수도 있었던 일'과 '내가 당할 수도 있었던 일'의 차이라고 말한다면 과한 걸까. 

내가 겪은 적 없는 고통에 공감하는 법 

남성의 성욕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범죄를 합리화하거나 두둔하는 건 잘못됐다.

불법 음란물을 제지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일부 남성들은 태연하게 협박했다. '그러다 성범죄 위험이 더 높아지면 어떡할래?' 남성의 성욕을 억누르면, 현실의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성욕을 해소할 수도 있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 안에서 '여성 역시 하나의 인격체'라는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탓일까. 실제 성범죄가 일어나면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관점에서) '왜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꾸 생각하려 한다. 그건 결국 '그 행동을 내심 이해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내가 침묵했던 비슷한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없기에, 가해자 쪽에서 더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나와 심리적으로 가까운 가해자의 입장을 먼저 대입해보는 것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피해자의 공포에 공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일, 나에게 생길 리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해서 그 공포를 '존재하지 않는 일'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늘 자신에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유기동물 보호소에 후원하고,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으면 그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자 하고, 내가 어릴 때 학대를 당했다면 아동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나는 동물이 아니라서 동물 학대를 겪을 일이 없고, 아이가 아니라서 아동 학대를 당할 일은 없지만, 나 역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 일부 남성들이 성범죄를 대하는 방식 역시, 내가 겪을 가능성이 적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에 공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그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한 이유를 찾으며 가해자를 감싸줄 필요는 전혀 없다. 피해자를 색출하고 범죄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문제 요소를 알고도 침묵함으로써 누구나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태그:#성범죄, #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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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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